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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이는 것에는 식물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의 정성도 포함된다. 심어만 두면 알아서 잘 자랄 것 같아 보이는 꽃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철마다 새로운 꽃이 피는 화초를 심어주고, 시든 꽃대는 잘라내고, 잡초는 크기 전에 솎아낸다... 뒤돌아서면 떨어지는 낙엽을 치워 오솔길을 정리하고, 이끼가 낀 연못은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사람들이 잠깐 걸터앉아 쉬어 가는 벤치의 먼지를 닦는다. 그제야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수목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p.104
한국 최초 민간 수목원이자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된 천리포수목원의 나무의사 황금비가 쓴 첫 책이다. 저자는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목원 입사해 두 번의 사계절을 겪으며 이 책을 썼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가꾸는 1만 7,000여 분류군의 식물 가운데 극히 일부인 서른세 종을 계절별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도 독특하다. 세상을 바꿀 특종 기사를 쓰겠다는 포부를 갖고 기자라는 첫 직업을 가졌었는데, 10년이 지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수목원 화단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고 서문을 시작한다. 기자와 수목원의 나무의사는 간극이 참 큰데 말이다. 재미있는 이력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페이지 곳곳에서 식물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봄에는 목련, 벚나무, 산딸나무 등이, 여름에는 무궁화, 빅토리아수련, 배롱나무 등이, 가을에는 목서, 화살나무, 팜파스그래스, 칠엽수 등이,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동백, 호랑가시나무, 풍년화, 삼나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식물들을 생동감 가득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보다 숲과 나무와 바다와 새가 더 자주 보이는 삶이라니, 하루가 다르게 짙게 물드는 가을날 단풍의 색깔이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보다 더 자극적이라니... 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수많은 식물이 계절에 맞게 피고 지고 얽히고 부대끼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도심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초록의 순간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봄의 초입에는 항상 호들갑을 떨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복수초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대다수가 매년 입춘 즈음 전국 각지의 복수초 개회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인데, 매년 똑같아 보여도 또 매년 새롭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는 따스한 계절의 감각이 날서고 긴장했던 사람의 마음까지 유연하게 녹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p.274
탐방객들에게 수목원은 번잡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가드너들에게는 말 그대로 현실 직장이자 생업의 현장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뒤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를 뽑느라 하루가 다 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엔 심어도 심어도 끝나지 않는 구근 심기를 무한 반복해야 하니 말이다. 나름 식집사로 수년 째 지내다보니 식물을 돌본다는 게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어느 정도는 체감하고 있다. 고작 집에서 키우는 식물을 돌보는 데도 이리 힘이 드는데, 방대한 규모의 수목원을 돌보는 가드너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벌레에 물리고, 벌에 쏘이는 일도 예사라고 하니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목련이 약 1억 4,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처음 등장한 식물이라는 사실부터 각종 작품에서 가장 외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표현할 때 벚꽃이 등장하는 이유, 알록달록한 꽃이 피는 여름철 주목받는 배롱나무의 진가는 사시사철 드러난다는 사실 등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식물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도 가득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수목원 곳곳에 뿌리를 내린 오래된 목련을 보다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 나무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 위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을 보며 오직 자연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해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지름 3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꽃 빅토리아수련의 개화와 수분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고, 죽은 우산고로쇠로 만든 벤치 사진을 보며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르기도 했다. 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수목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목원이 얼마나 예쁜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