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진실 -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다의 이유 2
에밀 졸라 지음, 이진희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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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실이 온전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밝혀지지 않을까 두렵다. 이것이 내 유일한 근심이다. 비밀리에 치러진 예심에 이어 비공개 재판이 진행되어도 종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러면 비로소 사건이 시작될 것이다. 침묵은 곧 공범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기록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자가 있을까! 역사는, 이 사건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 책임이란 없다.       p.107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이어 <에밀 졸라의 진실>을 만나 보았다. 이 책은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쓴 글들을 묶은 <멈추지 않은 진실>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국내에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최초로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젊은 유대인 장교가 군사기밀을 적국에 넘겼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 받고, 프랑스령 악마의 섬에 유배되었다. 드레퓌스는 자신의 무죄를 외쳤지만, 사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였다. 그가 정말 적국에 기밀문서를 보냈느냐 보다 그가 유대인이며 독일계였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2년 뒤 진범이 밝혀 졌지만, 새로운 증거는 모두 묵살된 채 오히려 혐의자가 석방되었고, 프랑스 군 당국은 사실이 알려졌을 때의 파문이 두려워 오히려 입을 막고 진상을 덮기에 바빴다. 이 사건을 지켜 본 에밀 졸라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펜을 들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어쩌면 여러분이 이렇게 정의를 질식시킴으로써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국의 제단 위에 정직한 입법자로서의 양심을 바친 것은 그토록 나라의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은 가엾을 만큼 순진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미숙한 이기주의자겠지요. 여러분은 또다시 완벽하게 패배하며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힐 것입니다. 우리의 적들에게 침묵을 사는 대가로 공화국을 한 조각씩 떼어 팔아넘기며 정국을 안정시키려 하다니,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p.253

 

사실 드레퓌스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에밀 졸라는 굳이 세상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언젠가 진실을 말할 사람이 있을 테고, 나서서 자기 이름에 흠을 낼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을 비롯한 작품으로 작가로서 거의 모든 것을 이룬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에밀 졸라는 자신의 명성을 내려놓고,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세상에 설 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정의 역시 자리매김한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에밀 졸라를 비롯해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선 이들의 노력으로 결국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프랑스 최고재판소가 '드레퓌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오류였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이 책 속에 수록되어 있다. 기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수록된 글이 11편이었는데, 이 책에는 거기서 제외되었던 두 편의 글들을 포함해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과 에밀 졸라의 주장,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의 모든 진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에밀 졸라는 이 사건에 대한 첫 번째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 얼마나 비통한 드라마이며, 이 얼마나 기막힌 등장인물들이 아닌가! 우리 앞에 펼쳐진 이토록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 한 사람의 소설가로서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감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이보다 더한 심리적인 사건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 행동하는 지성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업 소설가로서도 흥분하고 끌릴만한 극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를 행동하게 했던 결정적인 것은 연민과 신념,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지나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발걸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밀 졸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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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방 - 성을 넘어 자기가 되는 삶 이다의 이유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지소강 옮김 / 이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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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할지라도 소설은 삶의 네 모서리를 붙인 거미줄과 같습니다. 소설이 삶에 붙어 있다는 사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온전히 자기 힘으로 그곳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미줄이 모서리에 걸려 비스듬히 당겨지고 가운데가 찢어지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거미줄이 실체가 없는 존재의 힘으로 허공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고생스러운 노동과 건강과 돈과 우리가 사는 집과 같은 지극히 물질적인 것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p.90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선정해 출간되는 '이다의 이유'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과 <에밀 졸라의 진실>이 출간되었고, <나혜석의 고백>과 <정조의 공부>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출간된 것은 1929년이다. 그로부터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들의 삶은 과연 자유로워졌을까. 여성들의 위상이야 확실히 당시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와 불평등, 억압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나 기혼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는 경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며, 매년 500파운드에 해당되는 금전적인 지원 역시 전무할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의 목소리는 당대의 현실을 통과해서 빛을 발한다. 

 

 

 

우리 각자가 1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을 소유한다면, 우리가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글로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습득한다면, 우리가 가족 공용 거실을 조금 벗어나 사람 사이의 관계로만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실재와의 관계 안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다면, 하늘과 나무와 그 무엇이라도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사람의 시야를 가로막는 일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기에 밀턴의 겁박을 가볍게 무시한다면,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고 우리는 홀로 가야만 하며 우리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의 세계일 뿐 아니라 실재 세계와의 관계라는 사실을(그것이 사실이므로) 직시한다면 기회는 올 것이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이자 죽은 시인은 줄곧 내려놓았던 육신을 입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p.222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가 1928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쓴 에세이집이다. 그리고 <3기니>는 그 후속편으로 구상된 작품으로, 보통 두 작품을 함께 묶어서 출간되곤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은 <자기만의 방>만 수록하고 있어 분량 면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관련 주제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긴다면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도 찾아서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글을 쓸 당시나 이전까지, 여성은 돈을 벌 기회가 적었고 그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여성의 자유를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를 펼칠 공간도 당연히 없었다.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는 이처럼 자유가 억압당한 공간과 현실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역사상 성 논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에 여성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올렸다. 강연 내용을 그대로 정리해 그 형식 그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라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구어체 형식으로 진행되어 기존의 권위적인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 독자가 스스로 사유하게 만들어 준다는 장점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 책에서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를 지칭해 '나'라는 화자를 만들고, 자신이 말하는 것 중에는 거짓말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 진실이 섞여 있다고 단언한다. 그 진실을 찾아내고 그중 어떤 부분이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이야기를 듣고 (읽는) 우리의 몫이라고 말이다. 이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여전한 지금,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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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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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네를 타는 그 사람의 표정이 말이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거예요. 환한, 세상을 손에 넣은 것 같은 얼굴. 그런 표정은 다른 때의 히사코 아가씨한테서도, 다른 사람한테서도 본 적이 없어요. 그 얼굴을 봤을 때, 전 죄의식 같은 걸 느꼈어요. 어쩐지 인간이 보면 안 되는 걸 본 것 같았어요. 문득 발밑이 푹 꺼지는 것 같았어요. 한순간, 그 사람이 그네를 타면서 느끼는 세계를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거든요.     p.134

 

이 책을 처음 만났던 것이 벌써 14년 전이지만, 나는 여름이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떠올렸었다. 계절과 함께 기억되는 이유는 내가 무더운 여름에 이 책을 읽었던 것도 있지만, 극중 이야기의 배경이 도시 전체가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한여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 옷으로 갈아입고 만나게 된 개정판은 한겨울이라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이 작품은 한 저택의 잔칫날 벌어진 독살 사건을 배경으로, 무려 열일곱 명의 희생자를 낸 끔찍한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눈먼 소녀와 현장에 남겨진 편지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이다. 기존에 출간되었던 버전의 표지에서는 소녀와 하얀색 백일홍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다면, 전면 개정판에서는 붉은 빛 백일홍과 하얀 손의 이미지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는 온다리쿠 특유의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와 미스터리로서의 독특한 긴장감이 더해져 굉장히 매혹적이다. 사람들의 기억은 각기 조금씩 달랐고, 증언들 또한 같은 상황에 대해 묘하게 엇갈리면서 진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은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 가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이야기라 한 동안 이 작품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오랜 만에 읽으면서 과연 그때의 그 임팩트가 여전할까 기대도 되었는데, 다시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다니 감탄하면서 읽었다. 아직도 포스트잇 플래그를 가득 붙여 놓고 싶을 만큼 좋은 문장들이 가득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의 여운도 여전했다. 온다 리쿠는 <유지니아> 이후에도 최근작까지 수많은 작품을 써왔지만, 이 작품은 정말 독보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새하얀 꽃이 잔뜩 피어 있었어요. 백일홍 꽃. 압도당할 것처럼 하얗더군요. 이렇게 꽃을 많이 피우는구나 싶을 정도로, 나무가 새하얗게 보일 정도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죠. 어쩐지 오싹했어요.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등골이 오싹했어요. 실제로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 느낀 그 한기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군요.       p.267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시점을 볼 수 있는 인터뷰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작품이라 재미있는 것은 피해자와 목격자 모두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하지만, 같은 시간, 공간에 있었던 그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보고, 느끼고 그렇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 '실제 벌어진 사실' 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인터뷰는 조각조각 모아져서 하나의 퍼즐로 완성이 되지만, 완성된 퍼즐의 그림은 모호하기만 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는 미스터리는 온다 리쿠만의 독특한 색깔이자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한 여름을 배경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는 여러 명의 목소리이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여름에 대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이다. '도시 전체가 찜통에 들어 있는 것 같은, 후끈한 열기를 동반한 더위'라던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 같은 하얀 여름', 그리고 '사우나에 들어앉은 것 같은 피부의 감촉'과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하늘' 등등.. 마치 글을 눈으로만 읽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주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여름이 아닌 다른 계절에, 이렇게 춥고 건조한 겨울에 읽으면 이야기 속으로 더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온다 리쿠의 반전 매력은 섬뜩하게 느껴지는 공포도 아무렇지 않게 그려내고, 너무도 적나라한 표현으로 당황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분명 미스터리 추리물 같은데 완벽하게 열린 결말 때문에 어딘가 모호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이중성'에 있기도 하다. 거기서 오는 막연함과 불안감의 끝판왕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온다 리쿠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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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산타 웅진 세계그림책 218
나가오 레이코 지음, 강방화 옮김 / 웅진주니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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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어른도 모두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에 가장 설레이는 것은 아마도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어린 시절 잠들기 전 머리맡에 양말 주머니를 걸어 두고,, 올해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줄까 기대해 본 적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정말 산타가 있다고 믿다가, 어느 순간 우리의 산타가 엄마와 아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믿고 싶어 진다.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위해 선물을 줄 산타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느 봄날, 산타 할아버지가 양털로 목도리를 만들어 하나에게 선물해야겠다고 생각 한다. 양털을 빨고, 말리고, 풀고, 실을 뽑아서 긴 털실을 만들고, 그것을 예쁘게 물들이고 말린 다음 동그랗게 감아서 목도리를 짜기 시작하는 거다.

 

그렇게 여름이 찾아 오고, 가을이 지나고.. 어느새 겨울이 온다. 과연 산타 할아버지는 목도리를 완성해서 하나에게 제 시간에 갖다 줄 수 있을까?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일 년 내내 선물을 준비하고, 정성껏 만들어 전해주는 '나만의 산타'가 있다면 어떨까.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만큼, 선물을 만드는 시간 또한 너무도 사랑스럽다.

 

이 책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설정을 자수로 수놓은 귀여운 그림으로 표현해낸다. 자수 그림책이라니 다소 낯선 방식이지만, 아기자기한 자수 그림들이 너무도 귀엽고 재미있었다. 자수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서 페이지를 뜯어서 액자에 넣어두면 그대로 작품이 될 것만 같은 예쁜 그림책이다.

 

 

선물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의 모습도 정성스럽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자수로 표현해낸 숲과 나무, 다리, 산, 바다와 도심의 자동차와 건물들까지..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 우리가 산타클로스를 떠올리는 것은 보통 12월이지만, 사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내내 산타가 선물을 준비해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뭉클한 기분이 들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는 12월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그림책이다.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에게도, 이제는 진실을 알지만 아직은 믿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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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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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동생은 내가 코트를 벗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해결책을 생각해내려고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활동으로 저녁을 보낸다. 가끔은 그 애의 해결책이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봐 두렵다. 내가 동생에게서 무언가를 가져와버릴까 봐.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직 욕망이 있는 한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밭에 두엄을 뿌린 날 풍기는 숨 막히는 냄새처럼 우리는 목장의 어깨에 늘어뜨려져 있는 것이다. 내 붉은 코트의 빛이 바래는 것과 동시에 기억 속 맛히스 오빠의 모습도 흐려져간다.       p.97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날, 네덜란드의 작은 농장에 사는 열 살 야스는 오빠와 동생, 가족들과 함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식사를 한다. 그날 아침 큰오빠인 맛히스는 친구 두어 명과 함께 동네 스케이트 대회에 나가기로 되어 있어서 먼저 호수에 갈 예정이었다. 20마일짜리 경주였는데, 우승자에게는 겨자를 넣은 소 젖통 스튜 한 그릇과 2000년이라는 올해 연도가 박힌 금메달이 수여되는 대회였다. 야스는 오빠를 따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는 야스가 더 크면 데려가 주겠다며, 털모자를 쓰고 미소 지었다. 오빠는 어두워지기 전에 오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호수 반대쪽 얼음이 너무 약했고, 사람들이 호수에 빠진 오빠를 꺼냈을 때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 소식을 듣는 엄마, 아빠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고, 야스는 그 모든 일이 착오였다고 누군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집에 있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치워졌고, 가족들의 삶은 칠흑 같은 암흑이 되어 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 야스를 비롯한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그저 죽음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덮쳐 온다는 것, 그리고 다시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는 걸 막연하게 느꼈을 뿐이다. 어른들이라고 어린 아들의 죽음을 쉽사리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식사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함께 미소 지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남겨진 아이들을 보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야스는 오빠가 죽던 그날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되어도 벗지 못한다. 마치 입고 있는 코트가 세상의 모든 상실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내 안의 폭력만이 소음을 일으킨다. 소음은 점점 커져간다. 마치 슬픔처럼. 벨러의 말마따나 오로지 슬픔만이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 폭력은 공간을 그냥 차지한다. 나는 죽은 나방을 손에서 떼어내 눈밭에 떨어트린다. 그리고 장화 신은 발로 그 위에 눈을 밀어 덮는다. 싸늘한 무덤이다. 화가 난 나는 축사 벽에 주먹을 휘둘러 손마디가 까지도록 후려친다. 이를 악물고서 축사 칸막이들을 바라본다.         p.326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가 스물일곱 살에 발표한 첫 소설이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연소 수상작가가 되었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중 야스의 가족처럼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의 가족도 농사를 짓고 목축을 했으며 네덜란드 개혁교회 신자인 부모님 아래 성경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 역시 세 살 때 오빠를 잃었고, 그 상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려 6년에 걸쳐 집필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다. '글을 쓴다고 치유되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쓸 때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도 공감되는 그런 작품이기도 했다.

 

열살 소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라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죽음을 이해하고 싶은 어린 소녀가 경험하는 폭력성과 성적 욕구, 그리고 결국 자신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게 되는 과정은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야스는 엄마의 등이 점점 더 굽어가는 모습을 보며 슬픔은 사람의 척추에까지 올라오는 거라고 이해하고, 아빠에게서 흘러나오는 슬픔이 죽은 소들에게서 나오는 묽은 똥과 피와 닮았다고 느낀다. 구제역으로 인해 애지중지 키운 소들이 죄다 살처분되는 현장에서도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과 어른들의 보살핌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무심코 벌이는 행동들이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어쩐지 그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고통과 상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경험하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죽음과 맞닥뜨릴 만큼 강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죽음을 상대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그 잔상과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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