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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크하기 올리버 색스가 남긴 마지막 편지 (공감4 댓글0 먼댓글0)
<디어 올리버>
2025-09-07
북마크하기 아름다운 것이 이런 곳에도 있다! (공감2 댓글0 먼댓글0)
<가라앉는 프랜시스>
2025-09-06
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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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평소 책을 읽을 때, 손에 연필을 쥐고 여백에 메모나 느낌표 같은 표시를 남기는 식으로 저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나는 색스의 책들이 마음에 꼭 들었고, 시력이 변하기 시작한 이후로 머릿속에서 줄기차게 그와 대화를 했다. 그러다 보니 살아 있는 올리버 색스와 나누는 대화가 종이 위에서 나누던 대화와 사뭇 다를까 걱정스러웠다. 알고 보니 거만하고 우쭐대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색스 박사는 수줍어하며 쭈뼛댔고 호기심이 많았다.             p.42


이 책은 올리버 색스와 수전 배리, 두 신경 과학자가 10년간 15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눈 것을 기록한 서간집이자 남겨진 이가 먼저 떠난 이를 추억하며 써 내려간 회고록이다. 수전은 마흔여덟 살까지 사시에 입체맹이었기에 오로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몇 달간 시력 훈련을 받은 끝에 입체의 깊이를 볼 수 있게 되며 납작한 세상이 아니라 3차원의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고, 그 놀라운 변화를 일지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시각의 변화는 엄청났다. 이제 수전에게 세상은 더 둥글고, 더 넓고, 더 깊고, 더 질감이 살아 있고, 더 세밀했다. 사물의 가장자리가 전처럼 흐릿하지 않고 또렷하고 명료했으며, 모든 것이 더 선명해졌다.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수전은 어린아이 같은 환희를 만끽한다. 하지만 평생을 사시로 살다가 마흔여덟 살의 나이에 입체시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시각 발달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반세기간의 연구 결과를 뒤집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연구들에 따르면 입체시는 오직 유아기에만 발달할 수 있었다. 수전은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로서 이러한 연구들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이 3차원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색스 박사와 편지를 나누는 과정은 이렇게 수전의 시력에 일어난 변화가 얼마나 새롭고 경이로운지에 대해 타인을 이해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수전은 영원히 '납작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운명을 이미 오래전에 어느 정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례가 희망이 되어주길 바랐다. 




대화를 나누던 중 내가 편두통을 겪었을 때 올리버의 책 <편두통>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머리가 너무 지끈거려서 통증을 가라앉히려고 냉동 블루베리 봉지를 머리에 얹었다. 블루베리가 녹기 시작하면서 책이 파랗게 물든 모습이 책의 주제를 잘 보여 주는 듯했다. 이 말을 듣고 올리버는 자신이 욕조에 들어가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한번은 욕조에서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읽다가 책을 물에 빠뜨리고 말았는데, 나중에 그린을 만났을 때 물에 쫄딱 젖었던 그 책에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p.187~188


두 사람의 편지가 시작되었을 때 신경생물학과 교수인 수전은 50대였고, 유명한 신경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올리버는 70대였다. 만년의 우정은 꽤 긴 시간 이어졌고, 마지막 편지는 올리버가 세상을 떠나기 3주 전에 주고받은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사람의 우정이 싹트고 얼마 뒤, 올리버가 안구 흑색종을 진단받고 점점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수전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동안, 올리버는 익숙하던 자신의 세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지적 교류를 멈추지 않는다. 수전은 올리버가 자신이 얻은 입체시를 잃어 갈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왜곡되고 뒤틀린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슬펐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회복의 힘을 굳게 믿었기에, 올리버는 투병 중에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고, 수전은 갑각류 봉제 인형을 선물하거나 음악을 찾아내는 식으로 그를 위로할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 도구를 커다란 상자에 한가득 담아서 보내기도 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에 대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에 대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자체도 흥미진진했지만, 색스 박사의 상징이기도 한 갑오징어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에 쓴 편지 원문부터 그가 친필로 쓴 편지들까지 수록되어 있어 더 좋았다. 올리버의 첫사랑은 원소와 주기율표였는데, 심지어 사람들의 나이도 원자 번호로 세곤 했다. 올리버가 곧 74세가 되는 그해의 원소가 텅스텐이면, 자신의 텅스텐 생일이라고 말하곤 했으니 말이다. 올리버의 집은 부엌을 포함한 모든 방에 책꽂이가 늘어서 있고 선반마다 책 주제를 나타내는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 치우는 다독가였는데, 이는 그가 병을 얻어 시력이 점점 나빠졌을 때도 계속 되었다. 심지어 그는 마지막 즈음까지 연구하고, 자신의 책을 집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20년이라는 나이 차를 훌쩍 뛰어 넘는 두 사람의 우정과 과학과 의학에 대한 사유까지 가슴 뭉클한 책이었다. 올리버 색스의 책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꼭 놓치지 말고 읽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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