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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자부심 - 상실감, 수치심 그리고 새로운 우파의 탄생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종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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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미국인들이 물질 경제뿐만 아니라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자부심 경제' 속에서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부심과 수치심은 언제나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뿌리는 더 넓은 사회적 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양한 자부심의 기반을 발견했다. 지역적 자부심, 직업윤리에 대한 자부심, 아웃사이더로서의 자부심, 회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인 고임금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p.28~29


이 책의 저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감정노동'을 최초로 개념화한 '감정사회학'의 선구자이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감정노동>이란 책에서 그는 감정이라는 개인적인 행위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했었다. 이번에 그는 '자부심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미국 정치를 뒤흔들었는지 탐구한다. 한 공동체의 주요한 자부심의 원천이 사라지고, 실제 문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상실감과 수치심이 정치인들이 캐내려는 '광석'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실감과 수치심을 정치적 서사로 이용한 결과는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하나의 주장이 강렬한 전류처럼 미국 우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것이다


겉보기에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부심을 되찾아주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미국인이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들에게 제공했고, 그 거짓을 한 가지 진실과 결합했다. 바로 '잃어버린 자부심'이라는 진실이었다. 덕분에 그는 지지자들과 강하게 결속했고 심지어 하나가 됐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이 '도둑맞은 것'으로 바뀌면서 수치심도 차츰 비난으로 바뀌었다. 2019년 무렵 증오 범죄와 증오 발언이 급증했던 이유에 대해 대다수의 미국인이 "정치인들이 조장하거나 부추겼기 때문"이라며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이 이를 더욱 증폭시켰다고 답했다. 분노의 이면에 '정치를 움직인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자부심과 수치심의 이야기 아래에 어떠한 보상도 애도도 받지 못한 끔찍한 상실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졌고 그 장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연처럼 겹친 상실 속에서 수치심은 자부심의 역설 속으로, 마치 문화적 분쇄기에 고기를 집어넣듯 밀어 넣어졌다. 강한 자부심의 문화와 개인주의 윤리가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에서 '성공하면 내 공, 실패해도 내 잘못'이라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 그 고통스러운 결과는 수치심일 수밖에 없다. 지역 사회의 몰락은 개인의 수치심으로 전이되고 이는 다른 형태의 수치심까지 끌어들이는 자석이 된다. 수치심은 가장 자주 겪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p.333


저자는 애팔래치아의 작은 도시에 사는 남성에게 초점을 맞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 지역은 미국에서 백인 비율이 가장 높고 두 번째로 가난한 선거구에 속했는데, 중도적 정치의 중심지에서 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트럼프를 지지하며 대표적인 보수 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저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대인 난민, 무슬림 이민자 출신 의사, 주지사, 시장, 사업가, 교사, 정원사, 예술가, 중범죄자, 마약 중독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과도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위에서 아래까지, 좌에서 우까지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전 세계적인 우경화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감정적인 기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공감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이 책에 대해 '문화적,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경청의 기술의 진수를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었는지, 개인이 느끼는 상실감이 어떻게 '도둑맞았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전환되는지, 자부심과 수치심은 사회와 정치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념'이 아니라 '감정'에 집중한 것도 흥미로웠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와 7년에 걸친 심층 취재의 결과 답게 새롭게 부상한 우파의 도덕과 정치 심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선정한 ‘2024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북리뷰〉가 뽑은 ‘2024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리리고 했는데, 그만큼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는 것은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적 양극화와 우경화 현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경제적 박탈감과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우파 정치세력에 열광하고 있는 요즘, 이념보다 빠르게 확산하는 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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