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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기쁨과 슬픔 - 인간이 꿈꾼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
올리비아 랭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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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많은 이들이 낙원을 잃어버렸고, 또 그런 경험이 없다 해도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야기는 울림을 갖는다. 우리 대부분은 세상이 너무나 새롭고 놀랄 일이 가득한 어린이의 인식이라는 낙원을, 또 몸 자체가 정원이 되는 첫사랑의 달콤하고 풍성한 낙원을 잃어버리거나, 포기하거나, 잊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세속적인 에덴동산 이야기가 문학에 그토록 많은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게 열렸다가 다시 잠기는 정원, 우연히 발견했지만 두번 다시 찾을 수 없는 낙원.              p.53~54



올리비아 랭은 마흔 살에 뒤늦게 집을 살 때까지 줄곧 세 들어 살았고, 야외 공간이 있는 아파트에 산 적은 드물었다. 그러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했다. 애초에 정원 가꾸기라는 공동의 취미 때문에 친구가 되었고, 그의 은퇴 후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들이 서퍽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고 얼마 뒤 코로나로 인해 영국에서 봉쇄 조치가 실시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집에 갇혔고, 야외 운동은 하루에 한 시간만 허락되면서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던 세상이 딱 멈추게 된 것이다. 


그 시기 동안 올리비아 랭은 집의 오래된 정원에 매료되어, 옛 모습을 복원하고, 식물을 살리기 위해 애쓴다. 전염병의 공포가 커질수록, 정원을 드나들며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실제로 전 세계 사람들은 팬데믹 기간 동안 식물과 열병 같은 사랑에 빠졌다. 정원 가꾸기는 발을 땅에 붙이게 하고, 마음을 달래고, 유용하고,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이었기에 사람들 모두가 갇혀버린 현재의 순간에 순응하는 방법이 되어준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의 문턱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그때, 씨앗이 펴지고, 싹이 움트고, 나팔 수선화가 흙을 밀며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이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기다릴 수 있게 되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 올리비아 랭의 새로운 집에는 유명 정원사 마크 루머리가 디자인한 오래된 정원이 있었기에, 정원을 복원하는 동시에 그것이 역사와 어떻게 교차되는지 추적하기로 한다. '모든 식물은 공간과 시간의 여행자이므로 아무리 작은 정원도 역사와 교차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싹을 틔우거나 이상하게 성장할 수 있는 요소들이 파묻혀 있던 정원의 비밀은 세기를 거스르는 여행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짐을 진 채 어른이 된다. 그 짐의 일부는 개인적이고 개별적이고 독특할 수밖에 없지만 일부는 정치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같은 환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역사와 관련이 있다. 어른이 때로 방사능 물질처럼 위험한 자신의 과거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 덕분에 안전하고, 야생적이고, 어지럽고, 풍요롭고, 무엇보다도 공개되지 않은 공간에 대한 갈망을, 끈질기게 계속되는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물론 집을 갖고 싶었지만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원이었다.                p.236~237


'제2의 리베카 솔닛'이라 불리는 올리비아 랭의 신작이다. <외로운 도시>, <이상한 날씨>, <에브리바디>까지 차근차근 읽어왔는데, 매번 인문학적인 사유와 빛나는 통찰력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다. 개인의 고독을 사회적 소외로 확장한 <외로운 도시>, 혼란스러운 시대에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색한 <이상한 날씨>, 그리고 질병과 성, 저항과 감옥 등 몸의 여러 다른 측면들을 살펴보았던 <에브리바디> 모두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특히나 이번 신작은 '정원'을 다룬다고 해서 더 기대가 되었다. 나 역시 나만의 정원을 가지는 것이 오랜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심에서 단독주택이 아닌 이상 정원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서재가 실내 정원처럼 되어버렸는데, 나름 온실도 있고, 천장까지 닿는 식물들도 몇 있어서 정원이나 다름없는 공간이긴 하다. 이렇게 식물이 주는 위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독자로서, 올리비아 랭의 정원 이야기는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팬데믹, 브렉시트, 극우 세력의 부상 등 시대의 어두운 분위기와 새어머니의 죽음 같은 개인적 문제에 짓눌려 있던 올리비아 랭은 정원에 탐닉하며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간다. 또한 정원에서 존 밀턴의 《실낙원》을 탐독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낙원》을 시작으로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 데릭 저먼의 퀴어 유토피아 등 예술, 역사, 사회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정원을 돌보는 방법에서 ‘정원’이라는 개념 그 자체로 확장되는 사유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대정원의 매끄러운 아름다움에 어떤 희생이 담겨 있는지도 놀라웠다. 18세기 영국에서 진행된 대정원화 작업에서는 상류 지배 계층을 위해 오소길, 농장, 때로는 마을 전체를 옮기기도 했다니 말이다. 농지를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진행된 인클로저 역시 대정원화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대대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숨겨진 비용, 권력 및 배제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가 정원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해보면, 정원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개인의 것과 공공의 것의 경계가 희미해진 공간에 대한 올리비아 랭의 사유는 혐오와 배제, 기후위기와 파국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예쁜 책표지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책이었다. 자, 올리비아 랭의 아주 특별한 정원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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