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롭 - 위기의 남자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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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위원회가 연장 신청을 받아주지 않기로 결정하면 그 즉시 짐을 싸야 했기에 그 동안 보슈는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연장 허가가 났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틀림없었지만, 이제 경찰 배지를 지니고 다닐 기한이 정해졌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좋은 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경찰위원회가 보내올 공식 통지서에는 그가 경찰로 지낼 마지막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적혀 있을 것이다. 보슈는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그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미래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추 형사처럼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슈는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에서 근무하다 1년 전부터 미제 사건 전담반에서 근무 중이다. 그들은 지난 50년간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미제 살인 사건을 재수사했는데, 오랫동안 잊혔던 증거들을 현대의 과학기술로 재분석해 DNA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누군가와 일치하는 것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 이번에 1989년 살인사건에서 채취한 DNA 29세 성폭행범으로 밝혀 졌는데, 문제는 콜드 히트 통지서에 나온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그가 겨우 여덟 살이었다는 거다. 과연 범인은 고작 여덟 살 때 사람을 죽이고 무사히 빠져나간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경찰국 동료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듀발 경위는 보슈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작스레 보슈에게 새로 발생한 사건을 맡아 달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시의원의 아들이 고급 호텔에서 추락사했는데, 보슈의 오랜 숙적인 어빙 의원이 자신의 아들 사건을 보슈에게 맡길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렇게 22년 전 살인사건에서 발견된 의문의 DNA, 그리고 시의원 아들의 알 수 없는 자살 사건을 동시에 좇는 해리 보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작이었던 <나인 드래곤>에서 전처가 죽고, 보슈가 딸과 함께 살게 된 것도 그렇고, 파트너도 죽게 되어 다음 시리즈에선 보슈의 신상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아 더 기다렸던 작품이다. 보슈는 거의 10년전쯤 퇴직연금을 전부 수령하고 경찰국에서 퇴직했다. 그리고 2년 후에 퇴직유예제도(드롭) 덕분에 경찰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7년 계약을 맺고 다시 돌아온 보슈는 1년 전에 재계약을 신청했었다. 드롭은 한 차례의 계약 연장을 허용했고 연장 가능한 햇수는 3년에서 5, 그 후에는 반드시 퇴직하는 걸로 규정되어 있었다.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인 <로스트 라이트>에서 부터 사립 탐정인 보슈를 만나왔고, 열한 번째 작품인 <클로저>에서 보슈는 3년간의 탐정직을 마감하고 경찰로 다시 복귀했었다. 그리고 지금 15번째 작품에서 드롭 1차 계약 만료일이 한참 지나서야 연장 허가가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앞으로 보슈에게 남은 기간은 39개월, 하지만 해리 보슈 시리즈는 2018년 현재도 신간이 출간되고 있어 21번째 작품이 나오니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아빠가 배지를 반납할까 생각 중이야. 은퇴하려고. 때가 된 것 같아.”

......“그런데 왜?” 마침내 매디가 물었다.

“차츰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무엇이든, 운동이든, 사격술이든, 음악 연주든, 심지어 창의적인 사고까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실력이 점차 떨어지기 마련이야. 잘은 모르겠지만 아빠가 지금 그런 순간을 맞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경찰국을 나오려는 거야.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력과 판단력이 떨어져서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되는 걸 많이 봤거든. 그리고 네가 커서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든 지금 쑥쑥 크면서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LAPD 미제사건 전담반으로 복귀한 형사 해리 보슈의 직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에서 영감 받았다고 하는 이번 작품은 코넬리에게도 크나큰 도전이자 모험이었다고 한다. 연결 지점이 없는 두 사건, 그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엮어 치밀하게 교차시키는 플롯은 빈틈없는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보슈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추가 전편에서와는 달라진 비중으로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더해주는데, 그들이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과정 또한 이 작품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특히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알 수 있는 '드롭'이라는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중의적인 뜻 또한 단순하지 않아 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하이 징고사건은 너무도 빤히 보이는 자살 같지만 뭔가 내막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긴장감을 부여하고, 과거에 벌어졌던 강간살인사건에서 채취한 DNA를 이용해 진짜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 또한 굉장히 기발해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해리 보슈 시리즈>

시리즈 출간년도 원제 국내출간
1 1992 The Black Echo 블랙 에코(2010)
2 1993 The Black Ice 블랙 아이스(2010)
3 1994 The Concrete Blonde 콘크리트 블론드(2010)
4 1995 The Last Coyote 라스트 코요테(2010)
5 1997 Trunk Music 트렁크 뮤직(2011)
6 1999 Angels Flight 엔젤스 플라이트(2011)
7 2001 A Darkness More Than Night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2011)
8 2002 City of Bones 유골의 도시(2010)
9 2003 Lost Light  로스트 라이트(2013)
10 2004 The Narrows  시인의 계곡(2009)
11 2005 The Closers  클로저(2013)
12 2006 Echo Park 에코파크(2013)
13 2007 The Overlook 혼돈의 도시(2014)
14 2009 Nine Dragons 나인 드래곤(2015)
15 2011 The Drop 드롭:위기의 남자(2018)
16 2012 The Black Box  
17 2014 The Burning Room  
18 2015 The Crossing  
19 2016 The Wrong Side of Goodbye  
20 2017 Two Kinds of Truth  
21 2018 Dark Sacred Night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 마흔 살로 등장했던 해리 보슈는 어느 새 오십 대 중반이 넘어섰고, 시리즈도 열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그 동안 보슈는 언제나 거대한 적과 맞서는 정의의 수호자같은 이미지였는데, 이번 작품에선 수사의 방향을 잘못 잡고 헤매는 모습을 보이는 등 뭐랄까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더 좋았던 것 같다. 오랜 전부터 알고 지낸 인물과 세월을 함께 겪어 나가는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이런 게 바로 거듭되는 시리즈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그래서 기대했던 것만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뛰어난 실력과는 별개로 아웃사이더이자 고독한 인물인 보슈에게 딸 매디로 인해 가정이 생겼으니, 아마도 이후 시리즈를 거듭하며 조금씩 더 변화하지 않을까 싶다. 15세의 딸을 홀로 키우게 된 형사 해리 보슈라니, 예전 그의 성격만 보자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도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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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3-26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느끼지만 사진을 너무 잘찍으십니다ㅎㅎ

피오나 2018-03-27 14:42   좋아요 1 | URL
하핫..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