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열여섯 살 이후부터는 자기를 보면 꺅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을 숱하게 봐왔다.
아까 공작새랑 같이 집 안에
있을 때는 아침에 저지른 무례한 행동을 파자마 아가씨가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테이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딴 판이었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추리 소설에 푹 빠져 살았던 터라,
내가 로맨스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학창 시절 잠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유는 당시 반
친구들 사이에서 할리퀸 로맨스가 인기였기 때문인데,
그때는 누군가 책을 한 권 사면 순서를 정해서 친구들끼리 돌려서 읽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책을 빌려주는
중심에 항상 내가 있었기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와 당시 유행하던 장르를 적절하게 섞어서 읽었던 시기였다. 대부분 등장인물만 약간 다르고, 기본적인 스토리는 거의 똑같은 로맨스
물이었는데, 주드 데브루는
할리퀸 로맨스계의 대모라고 불리는 작가였다.
그래서 이번 신작의 작가 이름을 보고는 우와, 이 분이 아직도 작품을 쓰고 계셨구나 싶은 마음에 반갑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 장르를 떠올리면
바로 머릿속에 연상될 정도로 주드 데브루는 독보적인 할리퀸 로맨스의 여제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마흔세 권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썼고, 1980~90년대 할리퀸 열풍을 이끌며 전
세계 6천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녀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거의 90년대
후반부터였으니, 20년 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무려 불후의 고전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21세기 감성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게 세련된 표지
이미지와 감각적인 스토리 라인이 더해져 '할리퀸 로맨스'라는 다소 케케묵은 장르가
2018년 지금에도 여전히 읽히는 세련된 이야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케이시는 돌아서서 오솔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더뎠다. 지금껏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테이트 랜더스는 나랑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 남자는
스포트라이트에 둘러싸여 레드 카펫을 밟으면서
‘오스카’를 입에 올리는 사람이야. 집에 다 왔을 무렵 케이시는 깨달았다. … 자신과 테이트 랜더스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절대 ‘진지한
사이’가 될 리 없다는
것이다. 둘의 세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녀는
요리사고, 그는
슈퍼스타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남자 친구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충격을 받은 케이시는 휴가를 내고 변방의 작은 마을 서머힐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베란다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젊은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경찰을 부르거나 적어도 비명이라도 질러야 했지만, 남자가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지만
그와의 만남은 서로에게 불쾌한 기억만을 남기게 된다.
테이트는 지역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 잠깐 들른 유명 배우였던 탓에 케이시가 자신을 몰래 촬영하는
파파라치라고 생각해 언성을 높이고, 케이시는 그를 무례하고 거만한 연예인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테이트는 로맨스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인기 배우였지만, 케이시는 그가 나온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을에서는
연극 '오만과
편견'을 공연하기 위한 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려던 참이었고, 케이시는 그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요리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형편없는 연기 실력 덕분에 연출인 키트는 케이시가 실제로 테이트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을 무대에서 표현해 줄 것을 제안하게 된다.
테이트를 오만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라 치부하고 그를 싫어하는 케이시의 감정은 극중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생각하는 것과 같아 묘하게 연기에 설득력을 부여하게
되고, 케이시는 얼떨결에
연극에 캐스팅되고 만다. 그것도 테이트가 연기하는 다아시의 상대역인 엘리자베스 역할에 말이다. 자,
서로에 대해 오해와 편견으로 시작된 남녀 주인공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어느 정도
상상이 될 것이다. 자존심과
오해, 미묘한 감정싸움과
남녀간의 은밀한 밀당에 주드 데브루 특유의 유머와 따스함이 더해져 사랑스러운 작품이 만들어진다. 잘생긴 남자 주인공, 솔직하고 당돌한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 사이를 훼방하는 방해꾼의
등장, 이야기는 적절한
탐색전과 클라이막스를 거쳐 위기에 흔들리다 결국 해피엔딩으로 이어진다.
너무 뻔하지 않으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읽기 시작하면 페이지를 쉽게 놓을 수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 장르만의
중독성있는 매력이 아닐까. 유치하고 오글거리지 않느냐고? 로맨스 장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내가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유쾌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라 책을 읽는 동안 멋진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았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할리퀸
로맨스의 부활을 반기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