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이자 회고록 작가 애니 딜러드는 그녀의 저서
<창조적 글쓰기>에서 모든 이야기를 쓸 때는 이것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치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처럼 글을 쓰라고
권했다. "이와
동시에, 불치병 환자들로만
이루어진 청중에게 글을 쓰는 거라고 가정하자.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무슨 글을 쓸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을
분노하게 만들지 않도록, 어떤
사소치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
다행히 그 동안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이라고는 몇 년전 회사 동료가 부모상을 당했을 때 딱 한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작년 말에
그 일을 직접 겪게 되고 보니.. 죽음이라는 것은 내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것 만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과거의
삶을 돌아보게 마련이고,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며 이제 곧 사라질 미래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작가인 에드위지 당티카는 어머니의 암 투병과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나.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영원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부모님도 언젠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고,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휴한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이는 나 역시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족의
죽음, 혹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나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은 그 동안 많이 있어왔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사유하고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언제나 죽음을 소재로 한 글을 써왔고,
글쓰기를 상실과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
책에서 그 동안 자신이 읽어온 문학 작품 속에 드러난 여러 가지 죽음의 형태를 분석하고 있다. 토니 모리슨,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레프 톨스토이,
알베르 카뮈,
무라카미 하루키,
손턴 와일더 등 거장들의 문학 작품에서는 죽음이 어떻게 그려지고, 어떻게 사유되고 있을까. 그렇게 문학에서 죽음이 어떻게 다뤄지는지를
탐구하고 있는 이 책은 예리한 비평이자 대가의 문학수업으로 읽힌다.
"모든 내러티브 식의 글쓰기, 아니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승으로 내려가 죽은 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어 하는 욕망-에 의한 것이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죽은 이들과의 협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글을 쓸
때조차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죽음이란 결국 모든 일의 종국적인 결과이자 모든 이야기의 최종 결말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정말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라고 말했다. 토니 모리슨의 소설 <술라>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퇴역 군인이 삶을 감당할 길이 없어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실제 그의 이웃이었던 한 내연녀가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기차역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던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내기>는 사형 제도를 주제로 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고, 또 가장 자주
언급되는 소설이다. 마이클
온다체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죽음의
문턱'을 가장 인상 깊게
묘사한 책이다. 이 책은
문학계 거장들의 영원한 화두가 '죽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작가들이
죽음과 대면하는 방식을 그리고 있다. 에드위지 당티카는 거장들의 작품을 거론하며,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한다.
만약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고 나서 매 순간 살아 있을 때 하지 못한 것들이 가슴에 사무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들은 그럴 때 글을 쓴다. 에드위지 당티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가장
적극적인 애도 방법은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이제 없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기억을 더 깊게 새긴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비록 죽음을 어찌할 수는
없어도, 글쓰기를 통해 이
모든 것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길 희망한다고.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는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