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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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반복이다. 수정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몇 달 동안 머릿속에서 반복하던 질문들. 만약 수정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만약 수정을 데리러 갔었다면. 만약, 만약......만약.

하지만 '만약'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되돌리지도 못할 시간을 붙잡고 후회와 자책을 해봐야 남는 것은 더 깊은 우울뿐이다.

우진은 정비소에서 아내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가지만, 아파트 팔 층 높이의 옥상 난가 위에 서 있는 아내는 그가 보는 앞에서 추락한다. 3년 전 열 여섯 살의 딸 수정이 살해 당했을 때도 그들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이겨냈다. 아내는 재작년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힘든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을 이겨냈고, 겨우 몸을 추스린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는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한 것일까. 절망 속에서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우진은 며칠 동안 입고 있던 검은 양복을 벗다 편지를 발견한다. 종이에는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있었다. 진범이라니. 딸 수정을 죽인 범인들은 모두 잡혀서 재판을 받았고, 재판정에서 그들은 자백을 했고, 현장의 증거도 그들이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진범이라니.

우진의 아내는 매일 자신의 상처를 헤집고 수정의 부재를 확인하며 고통으로 자신을 몰아넣곤 했다. 그에 비해 우진은 고통을 애써 피하고 외면하려고 도망치기만 했었다. 이제 아이도, 아내도 떠나 보내고 나니 더 이상 살아갈 마음이 모두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아내의 자살과 딸의 죽음에 대한 진범이 따로 있다는 편지는 그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이제는 풀어야 할 때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우진은 편지를 넣은 사람을 찾아내고, 아내가 목숨을 끊기 전에 다녀온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침묵하던 진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체 3년 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빠, 그거 알아? 저 별은 몇만 년 전에 이미 사라져버린 별인지도 몰라."

"정말? 저렇게 반짝이는데?"

", 마지막으로 반짝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빛나는 거지. 우주 끝 우리가 사는 은하까지 달려와서 자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거 같아.... 아빠도 나 기억해줄 거야?"

모든 범죄 소설에서 피해자의 가족, 친구, 주변인물들은 항상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머릿속에서 '만약'이라는 단어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 속 우진 역시 그렇다. 만약 수정에게 전화를 했더라면, 만약 수정을 데리러 갔었더라면. 만약, 만약.......만약. 하지만 '만약'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과거를 바꾸거나 고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되돌리지 못할 시간을 붙잡고 후회와 자책을 해봐야 남는 것은 더 깊은 우울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평생 동안 '범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 간다. 게다가 범죄 대상이 내 가족이나 친구가 될 일은 극도로 드문 경우이다. 그러나 그 드문 경우의 수에 해당되는 소수의 사람이, 바로 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삶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체감하는 공포와 회환, 슬픔과 후회의 감정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시종일관 인물들이 안고 있는 회한과 후회, 남겨진 자의 슬픔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아이의 목숨을 빼앗은 벌이 봉사 활동 몇 시간에 교육 몇 시간이라고? 그걸 당신은 법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건가?”

또한 이 작품은 청소년 범죄로 인한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고 있다. 미성년이라 온전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그 처벌에 대한 기준은 계속 문제가 되어 왔다. 그래서 소년법 개정 혹은 폐지를 둘러싼 문제 혹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도 많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제 청소년 범죄가 일어나면 법의 보호를 받는 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는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며 가벼운 보호 처분으로 적당히 마무리되고, 가해자들은 이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당하게 생활한다. 하지만 피해자는 평생을 아픈 기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곤 한다. 우리가 만약 피해자의 부모라면 극중 딸을 잃은 그처럼, 범인에게 복수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숱한 영화나 소설에서 미성년자 처벌의 맹점과 개인의 사적인 복수에 대해서 다루어지곤 했었다. 그에 비해 서미애 작가의 이 작품에서는 분노하지만 그것을 복수로 되갚아 주는 데는 관심이 없다. 진범을 찾는 미스터리로서의 플롯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사건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감정적인 공감과 슬픔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그러면 잘못된 일들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야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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