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흑인 소년이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이언은 무언가 바뀌는 느낌을 받았다. 지진이 나면 이런 기분일까, 땅이 재배치되면서 믿을 수 없게 변했다. 학생들은 거의 1년을 함께하며 무리를 확고히 짓고 지도자와
추종자의 위계를 이루었다. 그
조직은 원활히 굴러갔다. 한
소년이 나타나서 모든 것을 뒤흔들기 전까지는.
단 한 번 공을 어마어마하게 멀리 차고, 단 한 번 소녀의 뺨을 만진 것만으로 질서가 바뀌었다.
1974년 워싱턴 교외의 한
초등학교. 백인 아이들로
가득한 그곳에 검은 피부를 가진 소년이 전학을 온다.
아버지가 가나 외교관인 그 소년의 이름은 오세이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흑인 남자애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반응인 것에 반해, 교내 최고의 인기 여학생인 다니엘라는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오세이는
자신을 '오'라고 부르라고
했고, 다니엘라 역시 친구들
모두 자신을 '디'라 부른다고
했다. 그 단순한 유대 덕분에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디는
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힘으로 아이들을 지배해온 이언
역시 새로운 전학생의 존재를 금방 알아본다.
이언은 가장 키가 크지도,
가장 빠르지도 않았고,
운동을 제일 잘하는 것도,
공부를 잘하지도,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있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가장 계산적이고 가장 교활한 아이였다. 새로운 상황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줄 아는 아이였다. 그래서 늘 운동장을 지배했고, 자기 영역에 들어선 새로운 사람의 존재는 늘 바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이언은 디가 오와 금방 가까워지는 걸 보고는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흑인 소년과
금발 소녀의 우정을 파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렇게 그들의 아주 길고도 끔찍한 하루가 시작된다.
이언은 더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슬슬 들었다.
독은 효과를 보이고 있었고,
이언은 이제 뒤로 물러나서 퍼지는 걸 구경만 하면 되었다. 그저 초연한 척 보이도록 조심하면서 관련이 있다는
걸 부인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이제 홈런을 차 줄 거야. 내가 이곳을 얼마나 확실히 지배하는지 똑똑히 보여 주지.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현대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그의 작품을 자신만의
문학관으로 재해석하여 다시 쓰는 기획이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원작자 트레이시
슈발리에이다. 그녀가 선택한
작품은 셰익스피어 전성기의 대표작인 <오셀로>이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선정적이고 격정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가 이아고가 꾸민 계략에 의해 죄 없고 고결한 자신의 젊은 아내
데스데모나를 냉혹하게 살해하는 이야기는 트레이스 슈발리에에 의해 인종차별이 만연했던 70년대 워싱턴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좀 더 색다르고 신선하게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오셀로는 가나 출신의
소년 오가 되고, 데스데모나는
미국인 소녀 디, 책략가
이아고는 교활한 소년 이언이 되고,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소녀 미미가 된다.
이렇게 오셀로의 인물과 플롯을 고스란히 가져왔지만, 이 무시무시한 플롯이 초등학생들의 우정과
질투, 사랑이라는 관계로
변주되면서 독특한 재미를 발산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훨씬 더 술술 쉽게 읽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짧은 탄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17세기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그것은 현대에도
여전히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현재 총 다섯 권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지넷
윈터슨의 <겨울
이야기>, 하워드
제이컵슨의 <베니스의
상인>, 앤
타일러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템페스트>,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오셀로>이다. 그리고
출간 예정인 작품들로는 에드워드 세인트오빈의
<리어왕>,
요 네스뵈의
<맥베스>,
길리언 플린의
<햄릿>이 있다.
특히 요 네스뵈와 길리언 플린이 어떻게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이야기를 그려낼지 너무
기대가 된다. 특히나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가장 두려움이 가득한 작품이기도 하고,
가장 잔혹하게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해서 북유럽 스릴러 작가가 새롭게 창조해낼 이미지가 너무
기대가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고전을 고스란히 무대에 올려도 훌륭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거나 공연 외에 음악이나
발레, 영화 등으로 변주되어도
여전히 그 가치가 있다. 그
중에서도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여러 작가가 자신만의 색깔로 작품을 직접 고르고,
원작 희곡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시킨다는 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마치 시리즈처럼 기획되어 이어지고
있으니,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것 같다.
에드워드 세인트오빈의
<리어왕>이 올해
5월,
요 네스뵈의
<맥베스>가 올해
7월 출간예정이라고 하니 손꼽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