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소년
오타 아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죄를 지은 사람은 교도소에 간다. 교도소에 가서 죗값을 치른다. 이십삼 년 전 그 여름, 소마와 나오는 세계를 믿고 있었다. 죄를 지은 인간이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은 후 죗값을 치르는 세계를.

그러나, 그 세계는 옳지 않았다.

방송국 직원, 고스트 라이터 시절을 거쳐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는 야리미즈에게 어느 날 23년 전 사라진 아들을 찾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야리미즈는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가 싶어서 의뢰를 거절하려다 300만 엔이라는 착수금을 덥썩 받아버려 일을 맡게 된다. 그런데 일을 의뢰한 여인은 그 길로 집 열쇠를 그에게 맡기고는 사라져 버린다. 이십삼 년 전에 열세 살 나이로 실종된 미즈사와 나오는 초등학교 정문 근처에서 깜박 두고 온 게 있다면서 돌아갔는데, 그 뒤로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집에도 들르지 않았으며, 당일 오후 집에서 한참 떨어진 강가의 상점에서 잠깐 목격되고, 강가에 서 있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오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에서 조난을 당했을 경우 혹은 사고의 경우 시체가 발견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유괴라고 보기에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남겨진 나오의 책가방에는 실종 당일은 금요일 시간표가 아니라 토요일 시간표대로 책이 들어 있었다. 야리미즈는 조사원 슈지와 함께 실종 당시 나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건 때문에 형사과에서 교통과로 좌천된 소마는 주택가를 돌며 수상한 차량 목격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며칠 전 열세 살 난 소녀가 도서관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몇 분 사이에 없어진 것이다. 그는 아이가 사라진 현장을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근처를 둘러보다 소녀가 기대어 있었다는 나무에서 무슨 딱딱한 것으로 새긴듯한 표시를 발견한다. 그것은 이십삼 년 전 여름, 나오가 실종되던 장소에서도 있었던 표시였다. 그는 본부로 달려서 담당 순사부장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만, 본부에서 이미 용의자에 대해 세운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는 말만 듣는다. 유괴 당한 아이가 최고검찰청 차장검사였던 이의 손녀라 이번 사건은 속전속결이 지상명령이었고, 벌써 용의자 체포를 전제로 공개 수사로 전환될 거라는 거였다. 사실 소마는 이십삼 년 전 여름, 나오와 같은 동네에서 그의 세살 터울 동생 다쿠와 셋이 친하게 지냈었다.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형사가 된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던 소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녀의 실종 사건과 과거 친구 나오의 사건에 연관성이 있음을 직감하고, 두 사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 동창인 야리미즈가 자신과 같은 사건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소마와 야리미즈, 슈지 세 사람은 정보를 교환하며 힘을 합치기로 한다.

 

", 현재 일본의 재판 현장에서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격언은 그림의 떡이지. 수사관은 자신이 세운 가설에 맞춰 용의자를 체포하려고 혈안이고, 검찰관은 기소한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을 얻어 내려고 기를 쓰고, 재판관은 사건 처리 선수를 올리는 데 급급하고. 그 결과 어쩌다 원죄가 발생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묻지도 않아."

이십삼 년 전 열세 살 소년의 실종과 현재 열두 살 소녀의 유괴 사건이 하나로 겹쳐지는 순간, 과거에 있었던 원죄 사건이 그 중심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원죄 사건'이란 죄를 짓지 않은 무고한 사람이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재판부의 유기적인 범죄 조작으로 죄를 뒤집어쓴 경우를 말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은 단 한 순간도 페이지를 놓을 수 없도록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 사법체계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가의 예리함으로 공감과 이해를 넘어 분노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형사재판의 대원칙, '열 명의 진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라'는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사회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공정하게 조사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판단해, 제대로 처벌하고 있는 것일까. 극중 한 인물의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도는 기분이다.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를 지키기 위해 열 명의 진범을 놓쳐도 상관없는 그런 사회를, 정말 세상이 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말. 그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회를 세상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지 묻는다면, 글쎄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잇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대 사회는 과연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위해 열 명의 범인을 포기할 수 있는가.

현대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꽤 만나왔지만, 오타 아이의 이 작품은 단순히 원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마도 일본 최고의 형사드라마 시리즈의 각본가로서의 경력 때문이겠지만 구성도 훌륭하고, 캐릭터, 반전, 드라마 모두 흠잡을 데 없이 멋진 작품이다. '열 명의 진범을 잡기 위해 한 명의 무고한 피해자가 희생되어도 아무 상관없는 사회'를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어 그 무고한 희생이라는 것이 시스템 속에서 필연적으로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을 누구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세계가 그런 사회라면, 사회도 그 한 명의 피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드라마는 너무도 이해가 되어 함께 분노하고, 공감하고, 그러다 먹먹한 감정으로 슬픔에 휩싸이고 말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1 10은 균형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의 제대로 된 의미가 보여지는 후반부에 이르면 마음이 아프고, 씁쓸해지고 만다. 특히나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를 위협하는 원죄 사건이 단지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픽션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사회의 부조리에 맞선 소년의 마음이 허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실화보다 더 사실처럼 리얼하게 그려진 이 작품을 통해서 진실 뒤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이 사회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