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살인."
구마고로의 표정이 흐려지자
요하야는 말했다.
"참으로 구제할 길 없는 놈을 죽이는 거야. 아는 사이라면 마음이 편치
않겠지만, 그쪽은 법도를
어기고 사람을 죽인 악당이다. 우리가 신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셈이지."
"신벌인가요?"
"그래.
사람들이 모를 뿐,
인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신의 조화야."
이 작품은 독특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걸로 유명한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이다. 에도시대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들을 통해서 처음 만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덕분에 에도시대가 사람들의 소소한 드라마를 펼치기에도 훌륭하고, 신과 요괴가 등장하기에도 그럴듯하게 어울린다는 걸
알고 있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 작품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을 근세의 산촌을 무대로 설정하고,
훗날 옛날 이야기의 원천이 될 법한 소재가 사방에 널려 있는 그곳에서 부조리한 운명에 항거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정말
인권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라 너무 쉽게 사람들을 죽이는 풍경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신처럼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 독자들의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일곱 살 소년 고헤는 어느 날
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탁탁 튀고,
몸에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피어 오르는 것을 발견한다. 불꽃과 연기는 고헤에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강에 가자고 해놓고는 동네 강가가 아니라 인기척이 없는 지류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전 집에 온 아버지의 새 여자가 자신을 못마땅하듯 쳐다보던
것도, 축하할 일도 없는데
어제 저녁 진수성찬을 먹었던 것도 떠올랐다.
직감이 번갯불처럼 번쩍였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신이 곧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고헤는 두 번 다시
집에 돌아가지 않고 산적 패거리에 거두어져,
구마고로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다. 그의 심안은 상대의 살의를 읽어내는 능력으로 동료들과 그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회자되었고, 그는 이
특별한 능력으로 거대한 유곽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계절이란 재미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해가 점점 힘을
잃고 산이 천천히 입을 다뭅니다.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들었다가 한꺼번에 떨어집니다.
겨울은 마치 죽음에 다가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침내 얼어붙은 듯한 정적이 찾아옵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가 느슨하게
풀어집니다. 그러면 눈과
얼음이 녹고 새싹이 돋습니다.
그 후에 피어나는 신록은 어찌나
눈부신지.
아홉 살 소녀 하루카는 집 밖에서 옆구리에 화살이 박혀 죽어가는 사슴을
발견한다. 딱한 마음에 연민의
정이 솟아 달래듯이 사슴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하루카의 손바닥으로 특별한 감각이 전해졌고,
계속 쓰다듬자 사슴의 눈빛이 편안해지더니 얌전하게 눈을 감았다. 고양이를 기르다 품에 안고 노는 사이에 고양이가
죽게 되는 일도 생겼다. 하루카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그녀의 특별한 재주를 남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이른다.
그런데 어느 날 진료를 갔다 심한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노파가 더 이상 손쓸 방도가 없어
편안히 죽을 길을 찾고 있다며, 하루카의 재주를 사용하도록 한다.
하루카가 가슴에 손을 얹기만 해도 아픔이 싹 가시고, 기분이 편안해져 마치 잠에 빠지듯이 세상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소녀에겐
죽음의 손이었지만, 고통으로
죽어가는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구원의 손이었다.
하지만 소녀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고, 어느 날 자신을 해하려던 무사를 얼떨결에 죽이고 만다. 자신의 능력과 존재에 대한 회의감에 하루카는 집을
떠나고, 산속에서 '금색님'이라
불리는 신과 같은 존재를 찾아가게 된다.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는 손을 대는 것만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녀, 타인의 살의를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년, 백성들 사이에서 마치
설화처럼 알려져 있는 산속 궁궐에 사는 도깨비들까지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특별한 '금색' 존재가 예사롭지 않다. 대체 시대물에 이런 존재가 등장해도 되는 것인가
싶을 만큼 독특하다. 온몸이
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을 보면 불상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보면 투구와 갑옷,
즉 갑주였다.
눈 부분에 녹색의 유리 같은 것이 박혀 있었고, 위잉,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인간의 말을
하고 다리를 움직이며, 힘도
세고, 무술 실력도
뛰어나다. 어떻게 보더라도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신'보다는 '로봇'에 가까운
존재가 에도시대에 등장한다니... 쓰네카와 고타로의 기발한 발상은 놀랍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 속에서 풀어나가고 배치하는 그 능력에 더 감탄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 듣던 옛날
이야기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신비로우면서도,
너무도 공감 가고 이해되는 인간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나 시간대를 현재와 과거, 더 오래 전의 과거에서 현재와 가까운 과거로 종횡무진 옮겨가면서 여러 인물들이
엮이고 섞이도록 만들고 있어 읽으면 읽을수록 더 시선을 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중에 쉽게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난
페이지터너이기도 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뭔가 아련하고 감상적인 기분이 들어 책을 덮을 수 없도록 여운을 남겨주기도 한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정말로 옛날이야기가 된다." 라고. 이 문장만큼 이 특별한 작품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으며, 뭉클한 뭔가도 남겨주는 엄청난
작품이다. 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향연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완벽하게 새로운 세계,
세상에서 벗어나 옛날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던 세계가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