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로써의 글쓰기 - 작가로 먹고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33가지 조언
록산 게이 외 지음, 만줄라 마틴 엮음, 정미화 옮김 / 북라이프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지금 내게는 대략 3,000권의 책이 있다. 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빚을 내서 책을 산다. 책에 대해서라면 언제나 경제적으로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했다. 밀린 공과금을 납부하는 대신 표지가 화려한 소설집 세트를 구매하고, 아이들의 대학 학비를 저축하는 대신 소문난 소설책 열두 권을 주저 없이 주문한다. 매년 연간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가 오고 연말 정산을 준비할 때면 책을 구매하는 데 들어간 엄청난 돈에 놀라면서 전산상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순진한 생각을 한다. 왜 이 책들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이 책들을 소유해야만 하는 걸까?

인생이란 대부분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다. 마법 같은 일이란 동화 속에서나 벌어질 뿐이고,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우리는 성공한 작가들의 삶과 작업에 대한 인터뷰나 에세이 등의 글들을 많이 만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실제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작가들의 돈과 수입에 관해 적나라하게 밝힌 적이 없다. 작가이자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만줄라 마틴은 글쓰기와 돈의 본질적 관계에 대해 툭 터 놓고 말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온라인 문학잡지 [스크래치](Scratch)를 창간했고 이를 바탕으로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이 책에는 록산 게이, 셰릴 스트레이드, 닉 혼비 등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 33명의 인터뷰와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작가들이 실제로 매일같이 일상에서 겪어내고 있는 예술적인 투쟁과 경제적인 투쟁에 대해 거침없이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돈과 생계에 대해 어떤 직업을 전전하고, 책을 출간하기 위해 어떤 수모를 겪는 지에 대한 가감 없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이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엄청난 애정을 품고 있는 지에 대해서 공감하게 되고 그들의 창작에 대한 영감과 작가가 되기 위한 인내의 과정에 감탄하게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진심에서 비롯된 경험담들이기 때문이다.

만줄라 마틴은 말한다. '누구에게나 꿈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랑이 현실인 것처럼 작가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 모두는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 당연하지 않은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말은, 사실 사회, 경제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일 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출판 업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작가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기술 또한 점점 진화해 요즘은 프리랜서로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광고 카피를 쓰거나, 강의를 맡아 학생을 가르치는 작가들도 있지만 말이다.

 

나이가 있는 저명한 작가들은 젊은 작가들에게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하는 타협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난을 감수해야 한다, 글쓰기를 목숨처럼 여겨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쓸 수 있도록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한다, 창의력만 갉아먹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서빙을 하라, 개를 산책시키는 일을 하라, 베이비시터를 하라, 라테를 만들어라, 모델 일을 하라, 난자를 기증하라, 집 짓는 일을 하라, 빵 굽는 일을 하라, 프리랜서로 글을 써라, 어떤 프리랜서 일이든 하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와일드>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는 그 작품이 출간되고 한 달이 되었을 때 책 홍보를 위한 북 투어 중에 남편의 문자를 받는다. 집세를 내야 하는데 수표가 부도가 났다고. 왜냐하면 당시 그들의 예금계좌에 돈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인 로라 구드는 본업이 따로 있는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생계를 꾸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술을 인생의 맨 앞에 놓으려면 어떤 오만함이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모든 걸 쏟아 부어 최선을 다한 다고 해서 그것이 매번 달콤한 결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현실 속에서 도전하고 있다. 작가 워크숍을 세워 3,000명이 넘는 작가들을 배출한 소설가 줄리아 피에로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빚을 내서 책을 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첫 번째 소설이 6개월 동안 뉴욕의 모든 편집장에서 퇴짜를 맞았고, 남편은 생계 유지를 위해 여러 일자리를 전전했으며, 매달 겨우 집세를 낼 정도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서점 가는 일을 그만두었고, 글을 쓸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소설가 알렉산더 지는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착각하는 성공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가 더 이상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이란, 애초에 돈 걱정을 아예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한쪽에는 글쓰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상업성이 있다. 그 사이에는 두께를 측정하기 어려운 단단한 방탄유리벽이 있고 말이다. 아마도 작가의 반대편에는 에이전트, 편집자, 홍보 담당자들이 있을 것이다. 문학성과 상업성은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서로 맞지 않는 불편한 동료 관계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은 문학성과 상업성을 뛰어넘어 글쓰기, , , 출판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들의 이야기는 글 쓰는 방법에 대한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된 이들의 성공담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일하는 삶이 글 쓰는 삶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경험담들은 작가라는 존재를 허공 위에 떠 있는 상태에서 현실이라는 바닥으로 내린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작가라는 존재를 더욱 가치 있고, 대단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글쓰기로 먹고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현실적인 조언들도 가득하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의 그 치열한 삶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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