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본 영화에서 어떤 책에 쓰여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어. 인간의 조상은 나무
같은 죽음을 선택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나한테 선택권이 있다면,
난 달처럼 죽는 쪽을 택할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이."
"그래.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거야.
그래서 아키히코 군 앞에 계속 나타나는 거야."
오전 11시,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곳의 열차 역에서 길을 찾느라 한참 헤매는 한 남자 오사나이.
겨우 호텔
2층의 카페에 도착해 약속된 예약석으로 들어선다. 벽을 등지고 한 쌍의 모녀가 나란히 앉아
있다. 유명 여배우와 그녀의
조숙한 일곱 살 초등학생 딸이다. 소녀는 오사나이를 잘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말을 건넨다.
언젠가 도리야키를 먹는 걸 본 적이 있다. 커피는 블랙으로 마시지 않았나. 등등. 오사나이의 죽은 딸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소녀는 과연 그의 죽었던 딸이 다시 돌아온 걸까.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한꺼번에 잃었다. 세 사람은 함께 만나기로 약속한 또 다른 남자를
기다리며 두서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오사나이가 기억 조차 하지 못하는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의 딸 루리는 일곱 살 때 의문의 열병을 앓고
나서, 옛날 유행가를
흥얼거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에 대해 잘 아는 듯이 말해 아내를 걱정시킨 적이 있었다.
그러다 급기야 혼자 학교를 빠져나와 전철로 낯선 곳을 찾아 경찰의 연락으로 찾게 된
날, 혼자서 멀리 가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하기로 약속을 하는데,
약속한 해에 졸업식을 마치고는 불행한 사고를 당하고 만다. 차를 운전했던 것은 아내였고, 둘 다 즉사였다.
이야기는 오사나이가 자신이 딸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소녀와 두 시간여 동안 나누는 시간을 순서대로 구성하고,
그 사이사이 과거의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서술되며 서로 만나고 벌어지기를
반복한다. 15년 전 아내와
딸 장례식을 마치고 만났던 아내의 친구 동생 미스미,
그와 얼마 전에 만나 듯게된
30여 년에 걸친 긴 이야기.
오사나이의 아내와 딸은 사고 당시 자신을 만나로 도쿄로 오는 도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미스미의 이야기는, 오래 전
딸이 어렸을 때 했던 이상한 행동에 대해 아내가 걱정했던 그것처럼,
과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을 따라 현재까지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과거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스무 살 청년과 스물
일곱 살 유부녀, 그들의
설레는 만남과 가슴 아픈 이별 속에 여자는 남자에게 말한다.
나는 몇 번 죽어도 다시 태어날 거야. 달처럼 죽었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 남자 앞에
나타나겠다고.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겠다고.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달의 영휴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
환생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이쯤되면 죽은 딸의 환생에 대한 오사나이의 이야기에서 이들 비극적인 연인의 사랑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옮겨진 뒤이다.
결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 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도
들었다가, 어느 순간 퍼즐이
맞춰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가, 다시 또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으로 반복되며 펼쳐진다.
"미스미 씨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사람이 한번 죽은 뒤의
이야기니까요. 우리는 아직
죽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사후의 세계는 상식의 틀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살아 있는 이상 상식의 틀을 벗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사기 같았어요. 왠지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딸을 도둑맞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제 눈에
비친 현실은 그것하고는 달랐어요. 유괴범에게 도둑맞은 딸이 아니었어요.
루리는 정말로 미스미 씨를 그리워하는 거예요."
아주 오래 전에 이순원의
<은비령>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윤회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하늘에 있는
행성들에게 일정한 공전주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렇게 일정한 주기가 있다.
윤회에 윤회를 계속하다 제자리로 돌아 오는데 2천5백만년이 걸린다. 그래서 지금부터 2천5백만년이 지나면 바로 이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고, 겪었던 일을 다시 겪게
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도 다 다시 겪게 된다는 거다. 죽은 친구의 아내에게서 연정을 느끼게 되는 남자의 감정이 사사로운 욕망의 차원을 뛰어넘어 2천 5백만 년이라는 시공과 연계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
덕분에 2천 5백만 년
전의 생애와 그 이후에 돌아오게 되는 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전생이니,
환생이니 하는 걸 믿긱에는 너무도 과학적인 세상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졌다. 당연히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 따위 해 본적 없이 항상 현재를 바쁘게 살아 왔다. 그런데 최근에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어쩌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으로 죽음을 너무 가까이서 겪어 보니 그 동안 살아왔던 세상 조차 내가 알던 그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말이다.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은유했다는 설정만으로 너무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죽음을 슬픔이나 연민이 아니라, 담백하게 풀어낸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건데, 이 작품은 죽음과
환상, 그리고 사랑과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쳐 드러내는 것보다,
꾹꾹 눌러서 쌓는 것이 오히려 더 폭발하게 만드는 여운을 남겨준다. 그리하여 결국 3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죽음과 환생을
거듭해, 결국 여자가 사랑하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면서 그저 먹먹해지고 만다. 아름답고도 신비한, 환상적이면서도 독특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