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 헌터
존 더글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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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을 보지 말고 그의 그림을 보라." 나는 부하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왔다.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피카소를 이해했다거나 잘 알고 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간특한 연쇄 살인범은 화가가 캔버스를 구성하듯이 자신들의 살인행각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조직한다. 그들은 자신의 살인행위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회가 거듭될수록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에드 켐퍼를 직접 만나서 면담한 것은 연쇄 살인범을 평가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그의 작품(범죄행위)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나와야 한다.

세상에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이란 없다. 당연히 동기가 없는 범죄도 없다. 혹은 정말 이유가 없는 무차별 살인일 경우에는 반드시 징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동기 혹은 그 징조를 미리 알아낸다면 벌어질 수도 있었던 사건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바로 프로파일링의 시작일 것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모든 끔찍한 범죄에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절박한 질문이 제기된다. 도대체 어떤 유형의 인간이기에,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범죄 현장 분석과 범인에 대한 프로파일은 바로 그런 질문에 대답하려는 노력이다. 행동이란 인성의 반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살인범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또 절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해당 살인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되풀이 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그 일을 평생 해온 이 책의 저자 같은 범죄 수사를 하는 이들의 일상이 그렇다. 이 작품은 미국 FBI '살아 있는 전설'이자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의 제이슨 기디언의 실제 모델이자 영화 <양들의 침묵>에 등장하는 수사관들의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존 더글러스의 회고록이다. 현재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NETFLIX 드라마의 원작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CSI 같은 인기 드라마나 숱한 스릴러 영화들을 통해 누구나 과학수사, 프로파일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인 존 더글러스는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도, ‘연쇄 살인범이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FBI에 입사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신입요원과 경찰관 교육을 담당했고, 수감 중인 살인범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다니면서 인터뷰를 해 수많은 범죄 사례들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수사에 적용하게 만든다. 최초의 프로파일러인 셈이다. 물론 처음에는 사회와 FBI 모두 범죄심리학과 프로파일링 기법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어린이 유괴 살해사건을 비롯해 끔찍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하나의 수사 및 검거 기법으로 인정받게 되고,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이 나온 지 100, 그리고 셜록 홈즈가 명성을 떨친 지 50년이 지나서야 행동 프로파일링이 소설책에서 뛰쳐나와 현실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사건을 맡으면 관련 증거와 사건 보고서, 현장 사진과 설명, 피해자 진술서, 부검 소견서 등을 모두 수집한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숙독한 다음, 범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범인처럼 생각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범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구체적 과정을 설명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나도 잘 설명할 수가 없다. 가령 <양들의 침묵>을 쓴 토머스 해리스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범죄 사실과 관련해 나에게 많은 자문을 받았다. 물론 그런 자문이 소설을 쓰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리스 자신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소설 속의 인물들을 창조해냈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하면, 그도 우물쭈물 잘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아마도 쓰다 보니 작중 인물이 떠올랐다고 대답할 것이다.

워낙 추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들을 좋아하고 많이 읽다 보니, 실제 범죄 심리학이나 법의학, 수사 기법 등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어 많이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개론서 느낌이 강해 조금 가볍거나, 반대로 전문 용어가 난무해서 일반인들이 다가가긴 조금 어렵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지난해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가 집필한 프로파일링에 관련된 책이 흥미로웠는데, 그 책 마저도 <마인드헌터>에 비하면 굉장히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은 프로파일링에 관한 압도적으로 완벽한 책이 아닌가 싶다. 페이지 분량 자체가 많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담고 있는 내용 때문에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범죄 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묘사와 범인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만 페이지가 계속 지속된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그것도 거의 육백 페이지에 가까운 두툼한 분량으로 말이다. 거의 쉼표 없이 미국 최악의 범죄자들에 대한 실제 사례들이 계속 이어져서 잠시도 한 눈을 팔 겨를이 없는 빡빡한 책이지만, 그만큼 몰입도가 뛰어나 웬만한 스릴러 작품들만큼이나 굉장히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5년 동안 살인범의 마음속을 넘나들며 축적한 거의 모든 경험과 수사기법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온갖 잔혹한 살인사건의 면면과 검거에 실패한 범죄자들에 대한 기록, 최악의 흉악범들이 털어놓는 엄청난 살인 행각과 연쇄 살인과 강간 수사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기까지의 전 과정과 수사관들의 활약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들이 상세하고 리얼하게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범죄심리학, 수사기법, 프로파일링에 관련된 내용으로는 앞으로도 이 정도의 수준을 보여주는 그 어떤 책도 존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살인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혹은 범죄 소설을 즐겨 읽어 이제는 웬만한 작품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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