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보다 따뜻한
와일리 캐시 지음, 홍지로 옮김 / 네버모어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저희는 그런 건 안 믿어서요. 저희는 기독교 가정을 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라일 아주머니. 그런 옛날 방식은 믿지 않아서요. 옳지 않아 보이네요."

 

"옳지 않아 보인다고? 너 태어났을 때 네 궁둥이 때려준 게 누군데?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떠하냐'가 중요한 거야. 나 같으면 내가 스토브에 물 끓이는 동안 저기 눈밭에 구멍이나 파겠다."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마을, 마셜의 외곽, 그곳은 목사 챔블리스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믿음만 있으면 뱀을 집어 올리고 독을 마시고 불을 얼굴 앞에 들어 올려 화상을 입는지 시험하는 등 무모한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중 많은 수가 화상을 입고 중독되었지만, 아프거나 다치더라도 의사를 찾아가겠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성경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극단적 기독교 근본주의 교회에서 신처럼 행세하는 목사와 맹목적으로 믿는 신도들. 그곳에서는 오래 전 그 말도 안 되는 예배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11년 뒤, 또 한 소년이 교회에서 진행된 예배 과정에서 죽게 되고 그것은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마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마을의 비극이 시작된다.

이야기는 세 명의 각기 다른 화자를 통해 들려진다. 노부인 애들레이드 라일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목사 챔블리스 맞섰던 사람이다. 그녀는 챔블리스가 마을에 온 뒤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챔블리스에게 그가 하는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교회를 나왔고, 그로 인해 거의 평생을 간직해온 친구들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시는 교회에 발을 들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챔블리스를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 채, 다만 그를 더 용감하고 무모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마약에 매달리듯 종교에 매달리곤 하며, 한 번 붙잡은 종교는 놓으려 들지 않으며 살아왔다. 마치 종교가 그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 같아서, 종교를 가진 뒤에는 이 산간벽지의 작은 교회들이 시키는 짓은 무엇이든 하려 들었고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완전히 달라져 신앙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자기 아이들을 내다 버리고, 남편과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이루었을 때만큼이나 빠르게 가정을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결백하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죽인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야, 그 애가 있어서는 안 될 장소에 있었으니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가 된단다." 고모할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교회 안에서 크리스토퍼에게 일어난 일을 떠올리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한다.

두 번째 화자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아홉 살 소년 제스이다. 어느 날 자폐증을 앓으며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제스의 형 스텀프를 치료하겠다며 엄마가 교회로 데려가면서 그 모든 일이 시작된다. 제스는 어른들이 엿보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에 단짝 친구인 조 빌과 함께 교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엿보러 간다. 그곳에서는 말 못하는 스텀프를 신앙의 힘으로 치유하겠다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무서운 광경에 겁이 나 숲으로 도망치고 만다. 그리고 얼마 뒤, 형 스텀프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세 번째 화자는 마을의 보안관 클렘 베어필드이다. 그는 목사 챔블리스를 오랫동안 주시해왔지만, 그 동안은 애써 무시해왔다. 하지만 스텀프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챔블리스와 정면으로 대립하게 된다. 아들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목사에게 의지하는 엄마 줄리, 슬픔과 분노로 폭발하기 직전의 아빠 벤 그리고 오랜만에 마셜로 돌아온 할아버지 지미의 위태로운 관계,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만 제스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잘못된 신앙이란 무지와도 같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사이코패스 살인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보통 사람들의 광기가 아닐까. 집단이 휘두르는 신앙에의 맹목적인 믿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광기의 일종이다. 와일리 캐시는 이 비극을 소년의 성장담을 통해 그려내면서, 아름답고, 담백하게 그려낸다. 코맥 매카시가 다시 쓴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 것 같다는 엄청난 평이 자연스레 수긍이 될 수밖에 없는, 대단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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