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 우울 법의학 교실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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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와 법의학자가 친해지는 건 상관없지만 상대를 잘 고르라고."

그 말은 역시 흘려 들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콤비란 건 말이지, 한쪽이 액셀러레이터라면 다른 한쪽은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해. 만약 둘이 동시에 액셀을 밟으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폭주가 펼쳐지는 거지. 정확히 지금 너랑 그 선생이 딱 그 꼴이고."

 

전편에서 독단적이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법의학계의 권위자 미쓰자키 교수와 자신은 시신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는 미국인 조교수 캐시와 함께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에 합류한 마코토는 법의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동안은 법의학을 죽은 자를 위한 학문, 범죄 수사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라고만 생각해왔었는데, 법의학이 살아 있는 이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죽은 자보다는 산 자, 부검보다는 치료라고 생각했던 사고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이후로는 사법해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출간된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정식 조교로 발령을 받게 된 마코토가 어엿한 법의학자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모든 죽음에 부검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건 나에게 잘된 일이다. 사이타마 현경은 앞으로 현에서 발생한 자연사, 사고사에 모종의 음모가 있는지 의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내 이름은 '커렉터', 즉 교정자다.

마코토가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날, 법의학 교실을 찾아온 건 현경 형사부 고테가와 가즈야 형사. 그는 무뚝뚝한 말투에 투박한 매력을 발산하며 전편에서도 변사체 사법해부를 의뢰하느라 법의학 교실을 자주 드나들었던 인물이다. 마코토와 고테가와 티격태격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게 될 스토리가 시작부터 기대되었다. 그는 현경 홈페이지 게시판에 커렉터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글에 대해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 글에 대해 경찰이나 법의학계 관계자가 벌인 장난 혹은 내부 고발쯤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차례로 올라오는 커렉터의 글은 모두 사인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이라 마냥 무시할 수가 없다. 변사체, 자연사, 병사한 시신 등 다양한 사건, 사고에 대한 커렉터의 문제 제기는 의도를 종잡을 수 없고, 경찰서와 법의학 교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죽은 자의 마음을 헤아려 원통함을 풀어 주고 싶은 고테가와의 심정에는 백 퍼센트 동감한다. 또 경제적인 이유로 의사의 도움을 받는 환자와 받지 못하는 환자로 나뉘는 상황에도 강한 반발심이 들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 오로지 환자의 이익만 생각하며 어떤 의도적인 비행이나 해악은 범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보지 않아도 줄줄 읊게 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속 구절을 다시 떠올렸다. 죽은 자든 산 자든 똑같은 환자다. 그리고 환자인 이상, 경제적 이유 따위 상관없이 공평하게 대처해야 한다.

 

혹시 커렉터의 목적이 우리의 과로사가 아닐까라고 생각할 만큼 마코토는 불만을 토로한다. 커렉터의 의미심장한 글들 덕분에 법의학 교실의 부검 횟수가 나날이 늘어갔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분명 사법해부가 필요한 건도 있었지만, 자연사와 사고사 등 검시만으로도 충분한 건까지 포함돼 부검 요청은 갑절이 되었지만, 법의학 교실 인원은 단 세 사람뿐이었으니 말이다. 커렉터와의 대결 속에서 경찰과 법의학자들이 기댈 수 있는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단서는 '죽은 자의 목소리'뿐이었다. 전편에서 미쓰자키 교수는 살아 있는 인간은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시신은 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부검을 통해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각각의 사연들이 마지막에 하나의 진실로 이어지는 구성은 커렉터라는 존재로 인해 전편보다 더욱 흥미롭게 진행된다.

콘서트 도중 수많은 관중 앞에서 사고로 죽은 아이돌, 때아닌 무더위로 열중증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에 베란다에서 놀다 죽은 어린 아이, 화재로 불타 죽은 신흥 종교의 교주, 산책하다 갑자기 쓰러져 죽은 노인 등 다양한 죽음이 등장하는 가운데 커렉터라는 미스터리한 존재에 대한 의문도 점차 커져간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좌충우돌 활약하는 마코토와 고테가와 콤비의 활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들의 관계가 시리즈 세 번째 정도 되면 또 어떻게 달라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영미권의 법의학 미스터리가 그 완성도나 재미적인 면을 제외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과 그 과정들 때문에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인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법의학 미스터리는 너무 술술 읽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우라와 의대 법의학 교실 시리즈' 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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