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그의 눈에서 조용한 혐오감이 드러났다.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을 꾹 억눌렀다. 이 공허함이 그의 분노보다 더 끔찍했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쌓아 올렸던 모든 것들이 정말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다시 술을 마신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가 뛰쳐나간 후에 내가 뭘 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서른 넷의 루이즈는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비서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바에서 데이비드라는 환상적인 남자에게 유혹 당해 키스까지 했지만, 이틀 뒤 그가 자신의 직장에 온 새로운 상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맙소사, 그 끔찍한 상황에 그녀는 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싱글맘으로, 정신과 의사의 시간제 비서로 근근이 살아가느라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든 그 어떤 남자든 만나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하고 살아 왔었다. 그저 아들인 애덤이 그녀 일상의 모든 것이자 전부였었는데, 바에서 만난 그 남자 덕에 여자로서 뭔가를 느끼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깨닫게 된 거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삶은 그녀에게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던 거다.

루이즈와 데이비드는 병원에서 서로 어색함을 묻어두고 일을 함께 하기 시작하고, 루이즈는 애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오다 길에서 우연히 아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조각처럼 아름다운 데이비드의 아내였고, 루이즈는 어쩌다 보니 그녀와 친구처럼 지내게 된다. 자신은 그녀의 남편과 키스한 사이이기에 절대 그녀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아델에게 점점 더 마음이 끌렸고, 그녀 역시 루이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만다. 그렇게 루이즈와 아델은 우정을 나누며 점차 가까워지고, 데이비드와 루이즈의 만남 역시 계속 지속되면서 루이즈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아델에겐 남편 데이비드와의 관계를 밝힐 수가 없고, 데이비드에겐 자신이 그의 아내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그 정도의 죄는 저지른다. 그녀가 그와 잤다는 건 정말 싫고, 거기에 내가 이렇게 상처받는다는 사실도 싫지만, 그래도 그녀를 탓할 수는 없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전에 그를 먼저 만났고, 욕망에 이미 불이 지펴진 상태니까. 그녀는 바에서의, 그 첫 번째 밤에 그 서글픈 인생살이 중에 오랜만에 특별해진 기분을 맛보았을 거다... 물론 그에게 홀딱 반했으리라. 내가 그를 이렇게 사랑하는 판국에 그녀가 그를 매력적이라고 느꼈다고 해서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이야기는 루이즈와 아델의 시점이 교차 진행되면서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이유는 이들의 불륜 관계와 아슬아슬한 우정 때문이 아니다. 바로 루이즈와 아델, 그리고 데이비드까지.. 세 인물 모두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를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만 보자면 아델과 데이비드는 아름다운 아내와 멋진 남편의 모습으로 의사라는 탄탄한 직장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뭔가 핀트가 어긋나 있는 것처럼 서걱대기만 한다. 데이비드는 아델에게 일정한 시간에 꼭 전화를 하고, 그녀에게 많은 양의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해 먹게 한다. 아델은 그의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할 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증에 걸린 것처럼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루이즈는 의아하기만 하다. 대체 왜 데이비드는 아내를 그렇게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며, 가끔 나타나는 고압적인 모습은 그의 진짜 성격인 것인지. 아델의 눈에 생긴 멍은 그녀의 말대로 단순히 부딪쳐서 생긴 것인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젊고 매력적인 정신과 의사, 그의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여자.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면서 그의 아내와는 친구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데이비드와 아델 사이에 숨겨진 비밀, 그리고 그들의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미스터리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후반부의 엄청난 반전이었다. 반전이 훌륭한 여러 작품을 읽어 왔지만, 이 작품의 그것은 그야말로 '충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웠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결말의 여운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한 동안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사라 핀보로가 스티븐 킹의 열혈 팬이자 공포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이력이 있어서인지, 그 어떤 심리 스릴러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결말을 만나게 되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당신도 스티븐 킹의 극찬처럼 이 책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재미와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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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8-30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가 보게 되는 사진에서 책보다 조각 케익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

피오나 2017-08-30 07:57   좋아요 1 | URL
하핫..저처럼 케이크를 좋아하시는군요! 책과 디저트와 커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ㅋㅋ

오거서 2017-08-31 08:22   좋아요 1 | URL
책에 풍미를 더하고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