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
캐롤라인 타가트 지음, 앤디 튜이 그림, 정윤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위대한 현대미술가들 A to Z』, 『위대한 영화감독들 A to Z』에 이어 『위대한 현대작가들 A to Z』가 출간되었다. 앤디 튜이는 이 중에서 이번 책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한다. 52명을 고르느니 차라리 520명을 고르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20세기를 빛낸 작가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어려웠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1871년에 태어난 마르셀 프루스트이고, 가장 젊은 사람은 1954년에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다. 되도록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읽히는 작품을 쓴 작가들, 수십 년 이상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작가들을 선별하고자 했다고 한다.

앤디 튜이가 그린 작가들의 초상화는 매우 독특하다.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일러스트에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선이 단순하고, 색채도 심플해서 보자마자 바로 시선을 사로잡는 다고 할까. 작가의 모습 뒷면에 그린 배경 도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살려주고 있는 감각적인 이 초상화는 바로 다음 페이지에 실려 있는 작가들의 실제 모습 사진보다 더 그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 책은 그렇게 마야 안젤루를 시작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시몬 드보부아르, 가즈오 이시구로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까지 52명의 주요 현대작가들의 초상화와 그들의 작품 세계, 삶, 그리고 중요한 가십거리까지 실려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해준다.

사뮈엘 베케트는 어느 날 밤 파리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중 돈을 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걸인의 칼에 찔렸다. 이후 감옥에 있는 걸인을 찾아간 베케트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었다. 걸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누군가 인간 행동의 동기에 대해 묻는다면 베케트가 내놓을 답 또한 걸인의 말과 같을 것이다.

베게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기이한 모습에 대한 이유가 베게트 자신의 삶에서 있었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짚어내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작가들의 약력을 정리하고 대표작을 수록한 책이 아니라, 작가들의 삶에서 있었던 인상적인 에피소드와 작품 세계를 포인트만 잡아서 간결하게 설명하고, 그 중 꼭 읽어야 할 주요 작품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유별한 취미나 성향에 대한 팁도 실려 있어 아기자기한 재미도 주고 있는 책이다.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나. 나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인용되는 <이방인>의 첫 문장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을 간단히 압축해서 보여 준다. 인간은 고독 속에 갇혀 있고 나머지 인류와 동떨어진 채 소외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숨통을 조이는데, 만약 이런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은, 그가 자신의 애완 고양이를 '담배'라고 부를 정도로 소문난 애연가였다는 것. 그리고 축구를 아주 좋아했으나 결핵 판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만두어야 했으며, 그가 맡은 포지션은 골키퍼였다고. 그의 할머니는 축구화가 더러운 날에는 손자를 야단치곤 했다고 한다. 카뮈가 감정과 감각이 결여된 작가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실제로 그의 문장들이 무미건조하고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걸 생각해보면, 축구라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에서 의외의 면이 보이기도 한다. 독자들을 죽음과 절망 속으로 이끌고는 했던 그가 동료들과 축구를 하며 골을 막았을 때 환호성을 지르고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이란 어쩐지 상상이 잘 되지 않기도 하니 말이다.

그 밖에도 필립 K. 딕이 쌍둥이로 태어난 여동생을 생후 6주만에 잃은 경험 탓인지 '또 다른 자아'를 잃은 것 같은 감각이 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이나, 윌리엄 포크너가 군대에 자원했으나 키가 16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대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나, 헤밍웨이가 말년에 지독한 피해망상에 시달려 급기야 자신을 몰래 따라다니는 스파이가 있다고 믿었으며,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전기 충격 치료를 열다섯 차례나 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에 정말로 미국 내에서 헤밍웨이를 염탐하던 KGB요원이 있었음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이야기 등등.. 작가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작가들의 거의 모든 작품은 자전적인 것에서 출발하거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가 살아온 환경과 겪어온 경험들이 직, 간접적으로 작품에 투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작가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나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을 써왔던 작가라면 더욱 그들의 배경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을 테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오게 된 거구나. 라고 수긍을 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들의 삶을 전기 형식으로 연표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에서는 작품 속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장에서는 작가의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한 순간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작가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순간만 포착해서 간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보니, 한 마디로 지루할 틈이 없는 작가 입문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앤디 튜이의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일러스트 때문이다.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느낌이고, 작가들의 성격과 특징을 사진보다 더 예리하게 포착해내고 있는 그의 초상화들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완성도가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라면, 앤디 튜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해보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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