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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6 - 너구리 잠든 체하기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평점 :

콩고양이 시리즈가 어느 새 여섯 번째 이야기로 찾아 왔다. 그동안은 항상 추운 겨울에 만나왔기에 으슬으슬한 추위에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 따뜻한 이불 속에서 킥킥거릴 수 있는 여유를 줬던 기억이 난다. 팥알이와 콩알이의 따뜻 발랄한 에피소드들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줘서 봄을 기다리는 겨울 날씨가 그리 춥지만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더운 여름에 새로운 시리즈로 찾아와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팥알이와 콩알이 외에도 세 번 째 이야기에서는 아기 참새,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시바견 두식이가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해서 많은 재미를 줬었는데, 이번에는 무려 너구리가 등장하면서 깨알 같은 재미를 주고 있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갑자기 어디선가 등장해 두식이의 밥을 가로채서 먹는 너구리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러다 마닥복슬과 안경남 등 이 집 식구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니까 갑자기 휘청휘청 하더니 풀썩 바닥에 드러눕는 장면은 정말 빵 터졌다. 일명 '너구리 잠든 체하기'인데, 적으로부터 습격 받았을 때 죽은 체해서 잡아 먹히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하는 거란다. 너구리나 주머니쥐 등이 그렇다는데, 안경남은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못 일어난다며, 너구리를 안아서 한 켠에 눕혀놓고, 식구들이 모두 숨어서 보게 한다. 그랬더니 너구리는 금방 번쩍 고개를 들고는 두리번거리다가 후다닥 사라져 버린다. 이후로도 너구리는 종종 나타나 밥을 함께 먹기도 하고, 너구리 잠든 체 하기 기술을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에게 전수해주기도 하는데, 실전에서 팥알이와 콩알이가 너구리 사부의 잠든 체하기를 해내는 모습은 정말 너무 너무 귀여웠다.
아이가 이제 네 살인데 작년 까지만 해도 개를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막 올라타려고 하고 꼬리를 잡거나, 다리를 잡아 당기려고 해서 그럴 때마다 토토가 놀라서 도망가곤 한다. 나름대로 애정의 표시이거나 함께 놀자는 의사일텐데... 아이가 익숙하지 않은 개도, 동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서로가 아직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아직은 아이는 개를, 개는 아이를,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앙숙처럼 평화롭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딱 이번 작품에서 손님으로 등장한 고양이 집사의 절친과 그녀의 아이들처럼 말이다. 어린 아이들 두 명을 데리고 셋째를 가져서 배가 불룩한 상태로 놀로온 그녀. 아이들은 팥알이와 콩알이를 보자마자 귀엽다면서 달려든다. 부드럽게 쓰담쓰담 만져줘야 한다고 알려주지만, 아직 힘 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이다보니 팥알이와 콩알이는 너구리 잠든 체 하기 기술을 이용해 빠져 나올 궁리만 한다. 게다가 두식이를 발견하고는 아이들 두 명이 한꺼번에 등에 올라타고, 두식이도 너구리 잠든 체하기 기술을 구사해보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정말 우리 아이와 토토와의 에피소드를 보는 것 같아 공감 백만 개가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거의 평생을 개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릴 적부터 그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과 함께 한 세월 동안 아마도 가장 익숙한 풍경 중 하나가 옷 방 한 켠에 미처 개지 못하고 흐트러져 있던 옷들이 한군데 쌓여서 그럴듯한 옷 무더기를 만들었고, 개가 그 속에 쏙 들어가서 자고 있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처음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는 대체 어떻게 이 옷들을 하나로 모아서 그 속에 쏙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어이가 없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시리즈에서 팥알이와 콩알이가 셔츠와 스웨터 위에서, 두식이가 원피스 위에서 부비거리면서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우리 개가 떠올랐다. 옷 위에서 자면 섬유에 털이 묻어서 세탁도 다시 해야 하고 여러가지 번거로움이 있기에 처음 볼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게 마련이다. 대체 왜 얘네들이 옷 위에서 잘까를 고민하는 딸에게 마담 복슬이 한 마디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장면 또한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깔깔대고 웃고 말았다.
방이 너저분하니까 그렇지. 좀 치우지 그래! 자, 문제 해결!
그러고 보니 방이 엉망진창이었던 거다. 그 속에서 푹신하고 따뜻한 옷들을 찾아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가 보금자리를 찾았던 거고 말이다. 이렇게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잔잔하고도 소소한 즐거움으로 남고는 하는데, 네코마키는 그런 일상들을 놓치지 않고 잘 포착해서 장면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집동자귀신 아저씨와 두식이가 산책을 다녀와서 씻지 않고 발만 닦아주는 모습이나, 강아지 훈련하기 책을 보면서 몇 번이고 단호하게 반복해서 지시를 하고, 말하는 대로 잘 따르면 아낌없는 칭찬을 줘야 한다고 쓰인 대로 두식이와 훈련을 하는 모습도 내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읽는 내내 자연스레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것 같다. 맞아, 맞아, 우리 토토랑 나도 그랬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말 뭉클했던 마지막 장면, 내복씨와 함께 자는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감정을 일깨워주었다고나 할까. 우리 집도 아주 어릴 때부터 개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기에, 항상 자다 일어나보면 드 뒤에 있거나 발치에 있거나, 거의 떨어져서 자는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은 아이 때문에 그렇게 함께 자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런 생활을 십 년 넘게 해왔기에 그 따뜻한 체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만화의 가장 좋은 점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여백이 많은 프레임에 둥둥 떠있는 짧은 대사와 간간이 미소 짓게 만들고, 또 그 틈틈이 뭉클하게 만들고, 그 와중에 지나간 추억도 떠오르게 만들고 말이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고,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도 없는 책 읽기란 퍽퍽한 현실에서 벗어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다. 반려동물과 체온을 나누며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반려동물에게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던 이들이라면, 팥알, 콩알, 두식이네 일상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분과 함께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