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변호사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인간쓰레기를 변호할 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나는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라고 재빨리 대답하고 자리를 뜬다.
우리는 정말 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정의의 실현, 그것도 신속한 실현이다. 이때 정의란, 그때그때 우리가 정의로 여기는 것이다.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잠을 자는 서배스천 러드는 이름난 거리의 변호사이다. 그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무실을 운영하지도 않으며, 합법적으로 총기를 가지고 다닌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살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 악마 숭배자, 연쇄 살인범 등 그 누구라도 공정한 법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는 그이기에 극악무도한 피의자를 변호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전에 살던 아파트와 옛 사무실이 폭탄을 맞아, 그 이후로는 각종 살림살이와 비밀 총기 보관함이 내장된 특수 방탄 벤이 현재 그의 사무실이다. 그는 누구나 꺼리는 소송을 전담하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이타적인 사람이거나, 정의에 목매는 바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탈옥을 감행하는 희대의 범죄자의 편에도 있었다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선량한 시민을 죽이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경찰 조직에 맞서기도 한다. 한 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경찰과 사법 제도, 정부를 완벽한 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서배스천 러드가 매번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싸움에 그야말로 몸을 내던지는 것을 공감하거나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악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인군자도 아니고, 평범한 변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물 변호라고 할 수도 없는 캐릭터이니 말이다. 그가 굳이 왜 거리의 범죄자들을 변호하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판사와 검사를 비롯한 경찰들을 적으로 돌리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지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도 자신이 왜 실제로 끔찍한 짓을 저지른 인간들을 보호하는 데 인생을 바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가지는 장면도 등장하고 말이다. 게다가 아이러니한 것은 이 작품이 줄곧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거다.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스토리에서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없다는 건, 물론 명백하게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다소 어려운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벌이는 드라마는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어 준다. 단지 부당한 법과 체제에 부당한 방법으로 맞서는 것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가 정의의 수호자 쪽에 가까워야 말이 되지 않을까. 어쨌건 그가 변호하는 형사 피고인들은 누가 봐도 명백한 범죄자들이니 말이다. 뭔가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며, 부당한 법과 사법 체계를 비판하는 건 맞는데, 애초에 도덕적 기준이 없는 인물이 하는 거라 과연 누가 악당이고 아닌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나는 세 사람에게 내가 전형적인 변호사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내게는 마호가니와 가죽으로 채워진 근사한 사무실 따위는 없다. 유명한 회사건 아니건, 큰 로펌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다. 변호사협회를 통해 착한 일을 하는 인물도 아니다. 나는 외로운 총잡이, 체제와 싸우고 불의를 증오하는 불량배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당신들의 아버지에게, 또 당신들에게 일어날 일 때문이다.
내게 존 그리샴은 90년대의 스타 작가라는 느낌이었다. 물론 최근까지 계속 작품을 내고 있고,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잘 나가는 작가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법정 스릴러라는 장르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히트를 시킨 장본인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내게는 좀 오래 전 작가라 그의 작품도 굉장히 오랜 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대 로펌 소속의 거물 변호사 이야기가 아니라, 거리의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아웃사이더 변호사가 주인공이란다. 그는 괴짜 변호사를 통해 조각나고 일그러진 사법 제도의 치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로운 캐릭터 외에도 구성도 완전히 달라졌다. 하나의 커다란 흐름으로 이어지는 기승전결 구도가 아니라, 같은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지만 에피소드들이 달라지는 연작 단편집처럼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하나의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그 뒤에도 출연해 장편 소설처럼 호흡을 가져가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법의 부조리함과 어두운 면을 소개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의 나열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섯 개의 개별적인 사건들은 모두 정의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결론으로 달려간다. 유죄 평결을 받는 게 정의보다 훨씬 중요한 검사와 판사, 아무렇지 않게 부정행위를 하고, 범죄를 은폐하고, 윤리를 무시하는 법의 수호자들이란 사실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정말로 공정한 재판 뛰는 절대로 없고,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제 유죄 추정의 원칙으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완전히 달라진 존 그리샴의 작품에 적응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여전히 ‘재미’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