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존재는 불가사의해서 전혀 흥미도 없었고 나중에 후회한 적 조차 없는데도 문득문득 그때 일을 떠올릴 때가 있다.
아키라는 공상 속에서 이 가게를 이어받는다. 아유미가 아닌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지역 상점가의 임원 같은 것을 맡고 있다. 속 썩이는 아들이 있을 때도 있다. 입은 험하지만, 주변에서 미인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딸이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바보 같은 공상을, 예를 들면, 출퇴근 시간 중에 전철 같은 데서 한다. 딱히 현실 생활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일도 없는, 정말로 평상시와 똑같은 날에 왜 그런지 또 하나의 자기를 공상한다.
맥주 회사 영업 과장 아키라는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는 아내 아유미와 조카 고타로와 함께 살고 있다. 고타로의 아빠가 싱가포르로 전근이 결정 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키라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아유미는 도쿄의 주요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화가 지망생 때문에 스트레스이고, 아키라는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집 앞에 보낸 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배달되기 시작하는 게 신경 쓰인다. 꼼꼼하게 포장된 상자에 들어 있던 건 선물용 술과 쌀. 물건 자체는 딱히 수상쩍다고 할 게 없었지만, 누가 무슨 목적으로 배달을 시킨 건지 알 수 없어 찜찜하기만 하다.
한편 뉴스에서는 도쿄 도의회에서 여성 비하, 성희롱 발언을 한 의원을 조사하는 것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야유는 확인되지 않았고, 자신이 발언했다고 나서는 의원도 없어 답보상태 였다. 그런데 독신인 여성 도의원에게 "당신부터 빨리 결혼해" "아이를 못 낳나"라는 성희롱 같은 야유를 한 당사자가 아무래도 남편인 히로키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아쓰코다. 집안 살림을 하고, 아들을 키우며 평범하게, 만족스런 삶을 살던 그녀였는데, 그 야유 문제가 계속 보도되고, 남편의 몇몇 행동으로 유추해 그가 의심되기 시작하자 이런 저런 일들이 계속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모두 남편의 얘기를 하는 것 같고 말이다. 그러다 슈퍼에서 장을 보다 분명 자신이 고르지 않은 물건이 함께 계산되는 걸 두 번이나 발견하자, 분명 누군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악의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넌 옳다는 거야. 올바른 녀석은 설령 자기가 잘못된 일을 해도 그게 옳다고 굳게 믿어버린다고."
다큐멘터리 감독 겐이치로는 가부키초에 사는 아이들을 취재하며 가난 속에서 꿈을 키우는 그들의 모습을 응원하고, 홍콩 우산혁명을 취재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혈액세포에서 만들어낸 특정 세포를 정자와 난자로 만들어내는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사야마 교수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취재를 타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두 달 뒤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상대는 취미 생활을 하던 북 동아리에서 만났던 가오루코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동아리 리더였던 유부남 유키 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동료들은 그녀가 겐이치로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놀라워한다. 가오루코는 요즘 일을 핑계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미심쩍은 행동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 설마 하는 생각에 유키가 일하는 회사 근처 카페로 갔는데, 그곳에서 겐이치로는 그녀가 유키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항상 옳은 것의 가치를 믿고, 자신이 하는 행동 또한 그게 정답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불륜이라는 행위는 너무도 옳지 않은 것이었다. 과연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결혼이란 게 어디서나 이런 모양이야" 라며 히비키가 웃어 보였다. 린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싶었다.
"......상대가 나 같은 사인이 아니라도 오랜 세월 같이 살다 보면, 아내란 존재는 남편이 짜증스러워지는 모양이야. 집에서 재채기만 크게 해도 살기가 느껴진다나......... 결국 결혼 생활이란 어느 쪽인가가 인내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현대 인간에게는 인내가 가장 서투르니 가능할 리가 없을 테고, 결과적으로 현재 상황에서는 인내할 수 있는 사인이 상대로 선택되지만, 앞으로 로봇의 성능이 좀 더 좋아지면 그 역할도 로봇이 맡게 될지 모르지."
이야기는 사계절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수상쩍은 물건이 배달되어 무료한 삶이 흔들리는 아키라의 봄, 도의회 의원이 성회롱 발언의 주인공일까봐 조바심 내며 전전긍긍하는 아쓰코의 여름, 곧 결혼 예정인 연인이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겐이치로의 가을, 그리고 겨울. 평범한 일상들이 별다른 클라이막스 없이 소소하게 펼쳐진다. 도쿄라는 같은 시공간에 살지만, 전혀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이들 세 인물의 이야기는 마지막 겨울이라는 계절에서야 비로소 복선들이 서로 선을 그으면서 퍼즐을 맞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봄, 여름, 가을은 2015년이고, 겨울은 그로부터 70년 후의 시점이라는 거다. 갑작스럽게 이야기는 '미래'로 시공간을 이동해버린다. 현실의 소소한 드라마가 이어지다 갑작스레 미래사회가 등장하는 판타지가 펼쳐지자 처음에는 대체 이게 뭔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전혀 다른 시대에서, 완전히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이어져 있었다. 우리가 매일 같이 보내는 일상의 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사소한 선택과 결정들이 미래의 우리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지, 삶은 누구에게나 불확실하지만 그것 조차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은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야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그러나 각자의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들을 계기로, 자신이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관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는 세 인물들이 겪는 드라마는 소소하면서도 사실은 세상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때 바꿨으면 좋았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는 이 작품을 관통하는 극중 인물의 말처럼,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하지 않았던 그것, 하려다 말았던 것, 말하려다 만 것, 보고도 못 본 척 했던 것, 하고 싶었지만 미루었던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당신의 미래를 만들고, 삶을 구성하고, 세계를 변화시킨다. 살면서 그때 그랬으면 하면서 후회하는 일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요시다 슈이치는 지금 이 순간이 만들어 내는 미래를 보여주며, 오늘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아름답게 포착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