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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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는 한 인터뷰에서 '주로 카페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곤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카페에서 잠시 마음을 놓아도 좋다고, 우리를 위로해 준다. 삶에서 '차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말이다.

"한 개 3,000엔짜리 쇼트케이크 같은 걸 먹으면,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요. 칼로리도 높을 것 같고, 마흔다섯이나 되어서 이런 걸 먹어도 될까요.......그래도 하루하루 늙어가니까, 가장 젊은 오늘 먹는 것이 베스트일지도요." 등등, 구차한 변명을 하면서, 3,000엔짜리 쇼트케이크를 주문했습니다.

누구나 가끔 이런 적 있지 않을까. 식사는 가장 저렴한 걸로 대충 때우고, 커피숍에 가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밥보다 더 비싼 케이크와 커피를 마셨던 경험 같은 것들.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싸다'는 것보다 그것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가치'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하루하루 늙어가니까 가장 젊은 오늘.... 무언가가 생선 가시처럼 걸렸습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면 내일은 뭐야? 내일은 오늘보다 늙은 날인가? 돌아본 과거만이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건가? ..... 인생을 역산하면 오늘이 가장 젊은 나. 그래서 오늘의 내가 가장 가치가 있다? 그런 건, 뭔가 딱 와 닿질 않네. 어떤 자신이건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니까, 오늘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말에는 사실 이런 의미도 담겨 있었다. 마스다 미리가 이렇게 말해주기 전까지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오늘의 나처럼 그렇게 여유롭게 시간의 가치를 즐길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산다. 마흔 다섯이라는 마스다 미리 역시 아직 그렇게 늙었다고는 볼 수 없는 나이지만, 이십 대 초반의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무도 먼 미래의 지점에 있는 거니까. 그런 그녀의 깊은 혜안은 종종 단순한 만화 컷들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 책 속에는 카페를 즐기는 마스다 미리만의 깜찍한 에피소드들이 가득한데, 사실 거의 백프로 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졌다. 맞아, 나도 그랬어. 다들 그러는 구나. 싶은 기분이 들어서 위로도 되었고 말이다.

매우 사소한 것들. 이를 테면 카페 안의 모든 테이블에 각자 한 사람씩만 앉아서 차를 마시다 보니, 얼핏 상대방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짝짓기 파티 같은 분위기로 보일 때가 있다거나. 아이스 카페오레가 커피와 우유 2단으로 나오면 섞기 전에 먼저 우유 부분만 살짝 마시고 싶어진다거나, 카페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옆 자리 사람들의 대화에 깊이 빠져 든다거나,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때 누군가 저기 빌 것 같다는 눈으로 보면 이유없이 일어서기 싫어진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너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누군가라면 나도 몰래 미소짓게 만들고야 마는 그런 순간들.

여행 방법은 사람마다 제각각. 공항에서 한두 시간 어슬렁거린 적이 있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전철을 타고 삿포로로 이동. 야마자키 도요코의 '지지 않는 태양'을 읽으면 내 인생은 마시멜로 처럼 달콤하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고개를 드니, 맑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물통을 들고) '잠시 차의 시간.'

 

차의 시간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꼭 유명한 카페에 가서 화려한 음료나 케이크를 먹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란 거다. 마스다 미리처럼 전철에서 책을 읽다 물통을 들고도 잠시 차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집에 가서 가족 모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차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직장 동료와 일 이야기를 나누며 차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어딘가에서 혼자 일을 하면서 차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차의 시간'이란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잠시 번잡함을 내려놓고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카페에서 마스다 미리가 하는 일 대부분은 '관찰' '멍 때리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그냥 문득 떠오른 뭔가를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냥 아무거나 생각하고 말해도 되는 것이 바로 차의 시간이 아닐까. 이 책은 마스다 미리 버전의작가로 산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자전적 만화가 기존에 출간된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에 이어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그녀가 작가로 살면서 생각하는 것들, 작가로 일하면서 겪었던 상황들이 모두 카페에서 벌어지는 버전이 바로 이번 작품이니 말이다.

일주일 중에 단 하루라도 카페에 가지 않는 여자들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어 그저 테이크 아웃을 하더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경우란 거의 없을 만큼, 우리들은 커피와 차와 카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빡빡한 일상 속에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건 커피를 마셔야, 잠시라도 티타임을 가져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바쁜 현대인들의 삶의 고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습관이기도 하다.

40대를 인생의 반환점이니, 뭐니 하지만 반환한 사람이 있나? 저들에게 보이는 내 쪽 풍경은 어떨까? 중년이 빵을 먹고 있다라는 '사실' 뿐일까.

 

가끔 카페에 혼자 있는 순간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된다. 노트북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도 있고, 친구와 열심히 수다를 떠는 사람도, 서로를 바라보며 애정을 표현하는 커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옆자리에서 유난히 큰 목소리로 떠드는 누군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도 하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생각한다. 저들이 둘러보는 풍경 속 내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하고

이번 작품을 만나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마스다 미리는 언제나 옳다!' 라는 것. 여자들의 마음을 콕콕 찝어 내어 그려주는 그녀의 작품들은 매번 마음을 움직이곤 했는데, 이번에는 매 페이지마다 맞아. 맞아.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했다. 거기다 카페에서의 이야기들이라 그만큼 디저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했는데, 일본의 유명한 카페와 디저트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어 더욱 흥미진진했다.

나처럼 카페에서의 시간을 좋아하고, 차와 커피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마스다 미리와 함께하는 티타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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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재밌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역시 마스다 미리 !

피오나 2017-06-28 11:55   좋아요 0 | URL
그죠? 마스다 미리책은 항상 대만족!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