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살카 저주의 기록
에리카 스와일러 지음, 부희령 옮김 / 박하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기록 두 개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네 개의 기록이 일치한다면?

어쩐지 매우 불길하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흥미에 이끌려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나와 가족 관계인 여자들이 젊은 나이에 자살하는 병에 가까운 습성이 있을 뿐 아니라 모두 7 24일에 익사했다는 경악스러운 발견 덕분에, 책을 읽으면서 점점 어두운 무엇인가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도서관사서인 사이먼은 롱아일랜드의 해변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의 부모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에게 너무 큰 수리비를 감당해야 하는 문제를 유산으로 남겼다. 절벽 위에 있는 허물어져가는 그 집은 폭풍이 올때마다 무너질 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서커스와 카니발의 연기자, 점술가, 마술사의 조수였으며, 숨을 멈추고 살아가는 인어였다. 그녀는 아들에게 물고기처럼 수영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그의 나이 일곱 살에 물속으로 걸어가 바다에서 익사했다. 여동생 에놀라는 6년 전 집을 떠나 서커스단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타로 카드 점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책 한 권이 소포로 배달되어 온다. 얼핏 보기에도 최소한 1800년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퀴퀴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는 가죽 장정의 낡은 책이었다. 보낸 이는 중고서적과 고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서적상이었는데, 우연히 손에 넣었는데 책이 훼손되어 자신에게는 쓸모 없지만, 책 속에 있는 베로나 본이라는 이름으로 추적한 결과, 사이먼의 가족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서 보내게 되었다는 거다. 베로나 본은 사이먼의 어머니처럼 유랑극단의 공연자였던 할머니의 이름이었다. 물에 젖어 훼손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그 낡은 책 속에 숨겨진 비밀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책은 1700년대 유랑극단 단장의 일지였는데, 그 속에는 야생 소년, 타로 카드 점술사, 인어 등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사이먼은 처음에 일시적인 흥미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불길한 뭔가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의 외할머니가 바다에서 익사했으며, 그 날짜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가 익사한 날과 같다는 거였다. 그와 가족 관계인 여자들이 젊은 나이에 자살하는 병에 가까운 습성이 있을 뿐 아니라 모두 같은 날에 익사했다니.. 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발견이란 말인가. 마침 사이먼이 그 책을 읽고 있던 때는 7 14일이었고, 이제 7 24일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바로 여동생 에놀라 역시 같은 운명으로 익사하게 될까봐 불안해하며, 사이먼은 책에 관해, 그가 알지 못하는 먼 과거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마침 도서관 재정 문제로 사서직도 해고된 참이었고, 에놀라는 오랜 만에 집에 돌아와 있었다. 여동생에 대한 사이먼의 걱정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는데, 과연 그는 가족에게 내려진 저주의 비밀을 풀고 에놀라를 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계집애는 아름다워. 하지만 그 아이는 너와 같지 않고, 나와도 달라. 그 아이를 봐. 영혼이 반밖에 없어. 나머지는 굶주림으로 채워져 있어. 그 계집애와 함께 있으면." 그녀는 결국 그 말을 뱉어냈다. "그 아이 때문에 너는 익사하게 될 거야..........물론 그 아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그 아이는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지, 그 값을 치르려고 하지 않아. 자기가 원하는 것만 알아. 루살카는 그래. 물에 빠져 죽는 여자들."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들은 남자를 유혹해서 함께 놀고 함께 춤을 춰. 남자가 죽을 때까지. 남자를 파멸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남자가 죽으면 슬픔에 잠기지. 슬픔 속에서 다시 자신을 위로해줄 누군가를 찾아 떠나고. 그 아이를 다른 사람의 아들에게 보내. 내 아들에게 오게 하면 안 돼."

 

이야기는 사이먼이 낡은 책을 통해 과거의 비밀을 풀어가는 현재와 책 속의 유랑극단이 등장하는 과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책 속의 책, 액자 소설로 진행되는 과거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직접 그린 빈티지한 타로카드 일러스트도 삽입되어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다이앤 세터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와 같은 고딕풍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이 책 역시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을 것이다. 도서관, 사서, 낡은 책, 인어, 유랑극단, 저주... 이런 키워드들로 만들어진 이야기니 재미가 없을 래야 없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어느 문화에나 물의 요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루살카는 물의 정령이다. 반은 어린 아이, 그리고 반은 세계를 받지 않고 죽은 처녀의 영혼을 지닌 정령으로 남자들은 루살카에게 매혹된다. 루살카의 사랑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루살카의 후예들은 모두 7 24일에 익사한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어둡고 슬픈, 그러나 매혹적인 루살카 인어의 이야기는 세대를 건너 사이먼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과 연결되어 단단한 서사를 구축한다.

201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최고의 화제작으로, 전 세계 에이전트와 편집자들을 매혹시킨 이 소설은 에리카 스와일러의 무려 데뷔작이다. 도서관 사서, 낡고 수상한 책, 타로 카드를 보는 점성술사, 투명해지는 야생 소년, 신비스러운 인어, 기괴한 유랑극단 등... 판타지와 미스터리가 가미된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매혹적인 요소들을 그야말로 솜씨 좋게 직조해 아름다운 스토리로 탄생시켰다. 오래된 책의 힘과 대를 이어온 가족의 저주라는 고딕풍 소재 또한 빈티지한 책 표지와 너무도 잘 어울리고 말이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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