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메르타, 우리 다섯 사람의 나이를 다 합하면, 거의 5백 년이야, 알기나 해? 지금 이게 우리 나이에 할 짓이야?" 그러게나 말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매우 우아하고 섬세하기까지 한 노인 판 로빈 후드를 만나게 된다.

은행 강도 연습을 하는 것과 실제로 은행 강도를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절대로 우리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돼. 다시 말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을 국가가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개입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해! 이 점을 잊지 마."

갈퀴는 속으로 생각했다. '21세기의 로빈 후드가 되겠다는 거야? 하지만 셔우드 숲속의 영웅이 할망구와 비교되는 것을 좋아할지 모르겠군..............'

전작인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에서 이들 노인들은 다이아몬드 요양소의 운영방식에 반발해 강도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강도 짓을 해서 현행범으로 잡히는 것이 목표이다. 피를 안 보고도 충분히 감옥에 갈 수 있는 금융 사건을 계획하는데, 세금도 안 내면서 돈만 모으는 부자 놈들의 돈은 훔쳐도 괜찮으니 그들의 것을 훔쳐보자는 것이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는 매력 만점의 이 캐릭터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계획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로 모의하는데, 상황은 매우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하고, 이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글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흥미로움이 가득하다. 특히나 메르타, 천재, 갈퀴, 스티나, 안나그레타까지 다섯 명의 캐릭터들만의 색깔도 뚜렷해서 앞으로 이야기가 시리즈로 전개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내가 이렇게 범죄자가 될지는 나도 몰랐는데, 여하튼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 국가가 먼저 나서서 조금 더 책임감 있게 일을 해주었다면 나 같은 힘없는 늙은이들이 이렇게 나서지는 않았을 거야....."

이번에는 스웨덴을 떠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 향해 대담하게도 카지노를 털기로 하는 노인 강도단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국에서 이미 지명 수배를 받고 있기에 그 동안은 이곳에서 모두들 조심하며 몸을 사려 왔지만, 다른 건 다 참아도 지루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이들이 제대로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부자들은 갈수록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들은 갈수록 더 가난해지는 세상에서, 노인 강도단은 가장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돈으로 노인과 청소년 시설, 문화 시설 등에 익명으로 기부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돈이 중간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우연히 획득했던 다이아몬드 마저 세관원과 실랑이를 하다 실수로 잃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새로 구한 그들의 빌라 이웃에는 폭주족 클럽의 두목들이 살고 있었으니, 수상한 노인들과 더 수상한 폭력 조직원들이 엮여서 스토리를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고 꼬여 재미를 더 해준다. 훔친 돈을 다시 도둑맞고, 실수로 잃어 버리고, 그것들이 더 나쁜 놈들의 손에 들어가 다시 찾아와야 하는 일련의 상황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메세지들이 곳곳에 등장해 웃으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현실과 극중 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이지. 어떻게 해서든 우리 기금에 돈을 집어넣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우리의 선행은 끝이야. 그런데 우린 단 하루도, 아무 잘못한 것이 없는 노인들이 형편없는 환경에서 사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볼 수가 없어. 노인들만이 아니잖아. 노숙자들도 있고 예산이 줄어들어서 쩔쩔매는 학교와 문화 시설들.... 무언가를 해야 돼, 우리가!"

"하지만, 메르타, 우리가 세상 사람 모두를 구할 수는 없잖아! 지구 전체를 구하겠다는 메르타의 갸륵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도로시 길먼의 <폴리팩스 부인> 시리즈, 그리고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까지 노인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작품들을 만나는 일이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아졌다. 백세의 알란, 쉰 아홉의 오베, 육십 대 초반의 폴리팩스 부인, 그리고 여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메르타 할머니까지.. 이들은 그 나이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을 만큼의 압도적인 추진력을 자랑하는데, 덕분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 팔지 않고 시원하게 달려나간다. 지루할 틈 없이 그야말로 유쾌하고 상큼 발랄하게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황당무계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설정이 바로 다섯 명의 노인 강도단이 등장하는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가 아닐까 싶은데,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의 이야기에 설득 당하고 만다. 회 양극화와 노인 문제로 차별을 겪은 적이 있었다면, 혹은 유사한 상황에서 분개한 적이 있다면, 그야말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만한 이야기인데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웃길까'를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는 말도 안 되는 전개가 이들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어우러져 진심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 일종의 범죄 소설 스토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소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쉽게만 진행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그런 부분 쯤은 눈감아 주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는 점이 아마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가만히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는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공포에 굴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무서워하지도 당차고 유쾌한 노인들의 모습은 언젠가 내가 나이를 먹어서 되고 싶은 이상향에 가깝기도 하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멋지게 나이를 먹는 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리고 노인이야 말로 그가 보내온 세월의 두께만큼 현명한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게다가 그 와중에 배꼽 빠지게 웃음 폭탄까지 선사하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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