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국내 첫 에세이가 동계 올림픽 관전기라는 게 사실 놀랍지는 않다. <마구>나 <백은의 잭>, <질풍론도>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추리 소설들을 그 동안 발표해왔었고, 스노보드 마니아답게 스키점프 등 동계 스포츠를 워낙 사랑하는 걸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관전기를 정말 유쾌 발랄하게 풀어낸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전에 얘기했지만 이 녀석은 원래 고양이야. 그래서 여권 같은 거 없는데 괜찮을까?"
아저씨는 무책임한 말을 했지만 구로코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에게 여권이 필요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소설이니까 괜찮겠죠."
"그렇겠지."
"예. 아무 문제없습니다. 자, 가시죠."
간단히 말이 정리돼버렸다. 뭐 이렇게 대충인 사람들이 있을까. 평소에도 늘 이런 식으로 "소설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라고 말하는 게 틀림없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이거다. 바로 그의 애묘인 유메키치가 이 책의 화자라는 것.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나이는 스무 살쯤 되었을까. 거울로 보기에는 상당한 미남이라고, 유메키치가 스스로를 바라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람이 된 유메키치에게 아저씨(히가시노 게이고)가 피겨스케이트 경기를 보며 말한다.
"너! 올림픽에 나가라. 금메달을 따서 나한테 은혜 갚으라고."

하계 올림픽에 비하면 동계 올림픽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지 않은 스포츠이다. 나만 해도 봅슬레이는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 도전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스키 점프는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서야 멋진 스포츠라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동계 올림픽의 스포츠 종목들에 대해 팬심을 자랑하며 열변을 토하는 귀여운 아저씨 히가시노 게이고와 얼렁 뚱땅 자신에게 올림픽 출전을 시키려는 주인이 어이없는 애묘 유메키치의 모습은 이우일의 일러스트와 너무도 잘 어우러져 읽는 내내 킥킥 거리며 배꼽잡고 웃게 만들어 주었다. 올림픽 마법으로 고양이가 사람이 되어 함께 올림픽 관람을 한다는 유쾌 발랄한 상상이 어처구니 없다기 보다 낯선 스포츠들을 친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고 할까. 암튼 이 책은 역대 가장 웃긴 올림픽 생중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가 자국의 동계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각 경기 별로 막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내년 우리의 평창 올림픽도 국내 소설가들이 평창 올림픽 관람기 같은 걸로 써주면 참 좋겠다 싶은 마음도 들고 말이다.
달력을 보고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아도, 일본 어딘가에서 눈이 내리고 때로 재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저씨에게 그걸 깨닫게 하는 게 스노보드이다. 스노보드에 빠지면서 아저씨는 설국을 알았다. 아저씨는 일기예보를 체크하며 훗카이도와 니가타의 기후를 예상하는 게 취미인데, 최근 들어 눈보라와 대설, 눈사태 피해를 걱정하게 되었다.
겨울과 싸우며 살아간다.........그 상징이 동계 스포츠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야생을 되찾는 일 아닐까. 겨울의 마법은 그것을 내게 알려주었는지 모른다.
다들 알다시피 2018년 동계 올림픽이 내년 2월에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나가노 동계 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3번째 개최이고,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이며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 이후 30년 만에 대한민국의 두 번째 올림픽이다. 이걸 계기로 국내에서도 동계 올림픽 종목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데,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 책은 그 가이드로 제 역할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동계 스포츠 자체에 대해 관심이 생겨야, 선수에게도 호기심이 생기고, 관람을 할 때 포인트도 생길 테니 말이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일본 내에서 위상이 낮은 편인 동계 올림픽의 부흥을 노려 이런 에세이를 쓰게 된 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하고 있을 땐 너무 힘들지만 골인했을 때의 그 커다란 성취감 때문에 계속 하게 된다는 동계 스포츠만의 매력은 엉뚱한 고양이 청년과 투덜대는 소설가에 의해 무심한듯 시크하게 보여지고 있다.
"아저씨, 진심으로 나한테 스키점프를 시킬 셈이야?"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진심이지. 자, 우물쭈물하지 말라고."
금메달을 따서 주인에게 은혜를 갚으라는 소설가와 언제까지 나를 고양이 취급할 거냐며, 아저씨한테 갚을 은혜 같은 건 없다는 고양이 청년의 우격다짐은 정말 만화처럼 유쾌하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동계 스포츠의 배경과 각 선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동계 올림픽 경기 분석까지 틈틈이 이어지며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중간중간 툭툭 던져진 이우일의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 또한 너무 재미있어서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이들마저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고 말이다. 작년에 만났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200년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가 동계 올림픽,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계 올림픽을 관전해서라기 보다, 각 작가 특유의 문체와 분위기가 자아내는 재미가 너무도 달라 비교해서 읽는 맛도 있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이우일의 일러스트가 함께 하는데, 그가 그려낸 히가시노 게이고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너무도 작가들의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어 놀랍다. 스포츠나 올림픽 따윈 관심 없다고? <시드니>와 <꿈은 토리노를 달리고>를 읽어보자. 아마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올림픽 스포츠에 빠져 들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