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굳이 따지자면 미니멀리스트보다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삶을 살아왔다. 물론 잡동사니를 마구잡이로 쌓아 놓거나, 버려야 할 물건들까지 쥐고 사는 건 아니었지만, 서재에는 언제나 책이 가득 차서 책꽂이 바깥으로 나오기 일쑤였고, 거실은 아이를 위한 장난감과 미끄럼틀, 놀이기구 등등으로 꽉 찬 상태였으니 말이다. 물건이 많긴 해도 언제나 정리 정돈과 청소는 놓치지 않으며 살아 왔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보니 먼지가 쌓일 만큼 청소를 하지 못하는 부분도 생겼고, 부지런히 치운다고 해도 언제나 뭔가 어질러진 상태였다. 문제는 그런 부분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해졌고, 아이 때문에 시간에 쫓겨 보내면서 놓치는 집안일 때문에 늘 피곤했고, 그 와중에도 챙겨야 하는 수많은 삶의 방식들을 따라다니느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졌다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것들을 다 놓아버리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워내고, 물건을 줄이고, 시간을 더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은 쇼퍼홀릭이자 워커홀릭으로 20대를 보낸 저자가 마음이 많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하고 난 뒤, 하나씩 비워내면서 조금씩 가벼워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란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을 두고 살아가는 삶을 일컫는 말인데, 사실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적게 소비하는 삶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데도 깔끔하고 심플하게 집안을 정리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한참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미니멀라이프, 심플라이프가 주목을 받아,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뉴스 기사도 꽤 많이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그저 지나가듯 보면서 몰랐던 것은, 미니멀 라이프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것만 남기는 거라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나는 그걸 이 책을 잃으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명품백 대신 만능 에코백을 활용하고, 이것저것 가득 넣어 다니던 무거운 가방에서 벗어나 가벼운 클러치백 하나만 들고 다녀 보기도 하고, 하이힐의 강박에서 벗어나 내 발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신발로 바꿔보고, 다이어트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많이 움직이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해보고, 혼자서 먹을 때는 대충 때우던 식사도 제대로 차려서 먹어보고, 억지로 소식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느리게 먹어 포만감을 주는 식사도 해보고... 저자가 일러주는 미니멀 라이프의 방법들은 너무 사소하고, 간단하게, 일상적인 것들이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한번쯤 바꿔볼 수 있는 것들이다.
옷차림, 미용, 건강, 사는 환경, 먹는 것, 생활철학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제안하는 것들을 따라서 차근차근, 하나씩 비워내다보면 어느 덧 내 삶도 그녀처럼 심플하고, 우아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저자의 제안 중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바로 <무료하게 보내는 휴가>였다. 언제나 여행을 가면 하루종일 발품을 팔아 값비싼 제품을 저렴하게 득템하거나, 세일 시즌에 맞춰 쇼핑을 하거나, 관광 명소에 방문해 사진을 찍고, 맛집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당연히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서, 밤 늦게 지친 걸음으로 다시 호텔로 돌아가 쓰러지듯 자는 것이 매일의 반복이었고 말이다. 사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느긋하고 그 순간의 풍광을 즐기며 낯선 여행자와 현지인 중간쯤 되는 기분으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휴가, 마음이 끌리는 데로 발길을 옮기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기분에 관심을 가지는 그런 여행을 나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졌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호텔 침대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고, 전혀 계획에 없던 곳을 찾아가 현지 음식을 그들처럼 느끼면서 맛보고 싶다. 왜냐하면 서울에서의 일상이 너무 바쁘고 치열하고 계획에 쌓여 있으니 말이다. 여행지에서는 한번쯤 그런 걸 놓아도 될텐데, 나는 여태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저자의 말처럼' 여백이 많은 삶이 우아하다'는 이야기에 나도 어느새 공감하게 되어 버린 것 같다. 하루에 하나씩 불필요한 소지품과 생각을 비워내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남기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마음속으로부터 하고 싶은 일들을 상기하게 되는, 기적의 방법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이다. 물론 생활과 관계 모두에서 내게 불편함을 주는 것들과의 헤어짐이 쉬운 일은 아니기에, 단 번에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올해는 나도, 심플해서 더 우아한 삶에 도전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