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그널 2
이인희 지음, 김은희 소설 / 클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그널> 소설판 2부는 홍원동 연쇄살인사건부터 시작해, 극중 박해영 경위 형의 죽음과도 연관되어 가장 큰 비중이었던 마지막 사건 인주 여고생 성폭행사건, 그리고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재한 형사 실종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 무전기가 내게 들어온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해영은 무전기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며 트럭 안에서 자신을 찾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박해영 경위님, 박해영 경위님." 한밤중 폐기물 더미 안 낡은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던 자신의 이름.

' 11 23분이지? ? 왜 하필 나였던 거야, . 아까 안치수 계장은 이 무전기가 15년 전 실종된 이재한 형사님 차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래, 이재한 형사님 실종사건, 그 안에 비밀이 숨겨져 있어. 왜 나인지, 왜 이 무전이 시작됐는지.'

극중 인주 여고생 성폭행사건으로 보여지는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실제 현실에서도 매우 끔찍하고 분노에 떨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고등학생 44명이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여자 중학생들을 집단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가해자들은 1년 가까이 피해자들을 성폭행하고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협박까지 했다. 경찰 조사 당시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 학생 부모들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등, 오히려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유발하고 책임을 묻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었고, 피해자들에게는 경미한 처벌만이 내려져 공분을 산 사건이다. 이것을 소재로 영화 '한공주', '돈 크라이 마미'가 만들어졌고, 이재익 작가의 소설 '41'도 있었다.

김은희 작가는 극중 주인공인 박해영 경위의 형을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게 만들어, 주인공이 이 사건을 반드시 파헤치게 만드는 동기로 부여하면서 피해자가 아니라 만들어진 가해자와 그것을 방조하는 경찰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같은 사건도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각도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만큼 당시 사건의 처참함을 드라마적인 부분을 극대화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돈이 많건, 빽이 있건, 거기에 맞는 죗값을 받게 하는 것이 경찰이 해야 되는 일 아니냐는, 지나치게 강직한 성격의 이재한 형사를 통해 사법부의 비리와 없는 자들이 가져야 했던 억울함과 있는 자들을 향한 분노를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죽어서 돌아왔어요. 15년을 기다렸는데.... 선배님 죽는다고요!"

미래에 있다는 수현에게 무전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 재한은 허탈했다. 죽는다는 말에,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잠깐 무너졌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내가 바꾸면 된다."

타임 슬립이라는 다소 평범한 소재로 드라마 <시그널>은 시간의 비틀림에 대한 정교함과 다른 시간 속을 사는 인물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 치밀한 이야기 구조로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시그널>이 끝나서 아쉬웠던 수많은 사람들, 그래서 속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소설판 <시그널>은 대체 불가능한 선물과도 같다.

<시그널>은 그것이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다고 믿고 싶게 만드는 위대한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극중 수현의 입을 빌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범인이 누군지 동기가 뭔지 밝혀진 사건은, 내 가족이 왜 어떻게 무 슨 이유로 죽었는지 알았으니까 힘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가슴에 묻을 수 있지만, 미제사건은 내 가족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니까 잊을 수가 없다고.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그래서 그들에게는 시간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그날 그 순간에서 영원히 멈춰버리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수많은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수사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다행이 이 드라마의 성공으로 인해 현실 속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지난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일명 '태완이법' 국회 통과와 더불어 최근 경찰에서 전담 수사팀 직제화와 수사인력 확충을 실시하는 등 미제사건 해결에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미제 전담팀 수사 인력도 증원됐다고 하니 말이다. 실제로 몇몇 대표적인 미제사건이 원점부터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으며, 전담팀이 검찰로부터 수사, 재판 기록을 넘겨받아 재검토 하고 있다고 하니, 부디 현실에서도 드라마 속에서와 같이 한번쯤은 해결이 되어 남겨진 유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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