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시그널 1
이인희 지음, 김은희 소설 / 클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7년 전 과거로부터 무전을 받는다면, 어떨까. 사실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는 더 이상 신선할 것이 없다. 그 동안 숱한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어떨까. 1989년의 경찰과 2015년의 경찰이 서로 무전으로 통신을 하며, 미제 사건을 풀어나간다면..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두 명의 경찰이 같은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부터 굉장히 흥미로워진다.

"박해영 경위님....나는 이게 마지막 무전일 것 같습니다."

"그게...무슨..."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무전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그땐 경위님이 날 설득해야 합니다. 1989년의 이재한을......"

해영이 의아한 얼굴로 듣고만 있었다.

"과거는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자체 최고 시청률 15%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이례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연일 화제에 오른 드라마 <시그널>이 소설 형식으로 다시 쓰여졌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탄탄한 구성과 명대사들로 유명했기에, 그 감동을 과연 소설 지문으로 옮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 작품 만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브라운관에서 느꼈던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결과 탄탄한 플롯의 치밀한 구성까지 고스란히 활자화되었고, 드라마에서는 그저 시청자로서 '짐작'만 해야 했던 인물들의 심리까지 직접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정도라면 드라마를 통해서 이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던 독자들이라도, 소설 자체만으로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실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사용했던 걸로 유명했다. 첫 번째 사건이었던 김윤정 유괴사건은 1997년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사건, 그리고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은 화성부녀자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대도사건은 대도 조세형 사건과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바탕으로 꾸며졌고, 홍원동 연쇄살인 사건은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2005년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가져왔다. 극중 마지막 사건인 인주여고생사건은 2004년 모두를 경악케 했던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소설로 만들어진 <시그널>은 두 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김윤정 유괴 사건,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과 대도 사건이 다루어지고, 나중에 이재한 살인 사건과도 연결된 신다혜 자살사건까지가 1부의 내용이다.

'과거는 바뀔 수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무전이 시작된 이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은 바꿔야 할 과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던 해영은 결심했다. 죽은 사람들을 살리고 범인을 잡겠다고.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은 해영은 정리해놓은 자신만의 수사 기록을 화이트보드에 반으로 나눠 적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과 변해버린 수사 기록을. 1차부터 10차까지 원래 기억하고 있던 무전 전의 범행들과 현재의 수사 기록을 확인하며 바로 옆에 바뀐 부분을 적어나갔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로 인해 경찰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프로파일러 박해영 경위, 그는 우연찮게 경찰서를 나오다 탑차에 실려 있는 폐기물 포대 안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무전을 듣게 된다.

"박해영 경위님, 박해영 경위님 거기 있습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무전기 너머의 목소리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해영은 그저 누군가의 장난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목소리로 인해 오랜 시간 미제로 남았던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두 남자 간의 무전 통신. 1989년 과거에 있는 이재한 형사와, 2015년 현재에 있는 박해영 경위.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두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보다, 과거에 벌어졌지만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을 그것을 통해서 해결한다는 부분이 굉장히 매혹적이다. 현재 박해영 경위의 상사인 터프하고 무뚝뚝한 차수현 팀장이 과거로 가면 이재한 형사를 짝사랑하던 수줍고 어리 버리한 신참이 되는 것도 흥미롭고 말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지속적으로 교차 진행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역시 변한다는 타임 패러독스에 부딪히게 되면서 복잡해진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도 반드시 바뀌는데, 과거의 미제 사건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바꿔야만 하니 말이다. 박해영, 이재한, 차수현.. 이들은 어떻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미제 사건들을 해결하게 될까. 대체 이 무전은 무엇 때문에 시작된 걸까. 그렇게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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