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송나라, 당시의 유교는 사람의 신체에 칼을 대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수술을 기피했으며, 학자들조차 의학을 경멸했고, 행정가들은 수술을 미개한 학문으로 여기는 시절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시절에 과학적 수사 방법과 검시법을 체계화해서 역사상 최초의 법의학서인 <세원집록>을 집필한 인물, 송자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분은 당신이 생각하는 이유로 죽은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고인의 아버지가 말을 더듬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걸 처남이 봤어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누군가가 목을 졸랐습니다."
가족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는 목 양쪽으로 난 붉은 멍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송자가 법의학 저서를 집필하고 법관으로 있을 때의 과정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그가 어떻게 세상의 천대를 이겨내고 그곳에까지 도달하기의 스토리를 펼쳐내고 있는데, 그의 삶에 얼마나 장애물이 많고 첩첩 산중의 고난과 역경이 거듭하는지 매 순간이 클라이 막스인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새롭게 그의 삶에 등장하는 이들 역시 결국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혹은 그를 배신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들이 펼쳐지고, 매번 절벽 앞에 서 있는 사람 마냥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해야 하는 삶을 살아내는 송자라는 인물은 굳은 심지로 오로지 정의롭거나, 철두철미하고 완벽한 천재형이 아니라 사람들을 쉽게 믿고, 그만큼 속고 배신당하는 어리석음도 가지고 있으며, 가끔은 비겁한 모습도 서슴지 않고 보여주는 매우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렇게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서 더욱 감정 이입이 쉬워지는 부분도 있으며, 그만큼 그가 겪는 그 모든 부당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에 빠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 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 당시가 사람이 갑자기 죽으면 누군가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 믿고, 용의자를 잡으면 증거가 없어도 자백을 할 때까지 때리고 혀를 뽑아 고문하던 시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그런 시절에, 현대의 과학 수사법과도 유사한 방식으로 시체를 검시하고, 증거를 수집해서 범인을 찾아내고,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은 사람들에게 놀라움도 주었지만, 두려움이라는 감정도 함께 주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대적 배경은 모든 사건에 특별한 제한을 두게 만들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인물들을 둘러싼 상황들은 웬만한 대하 사극 못지 않은 스릴과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덕분에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모두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시체 판독가라고?" 형부 내상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시체를 읽는 사람입니다. 제 수제자입니다." 밍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를 가리켰다.
........ "당신과 같은 전문가가 놓친 것을 저자가 포착할 수 있다는 말이오?"
"아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칸 내상은 마치 자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밍 교수를 쳐다보았다.
중국 최초의 법의학 저서인 <세원집록>을 집필한 송자. 그는 법관으로 있을 때 청렴하게 법정을 펼쳐 간악한 자를 엄징하고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었던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저서에 기술된 법의학 검험에 관한 것은 근대 과학 원리와도 부합되는 점이 많아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시체 읽는 남자>는 이런 송자의 인생을 재구성한 팩션으로 스페인의 역사소설가인 안토니오 가리도의 작품이다. 중국의 역사 속 인물을 스페인의 작가가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독특했고, '세원집록'이라는 책 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송자라는 법의학자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작가 역시 자료조사 과정에서 송자의 일생이 수십 권의 책에서 발췌한 서른 개의 문단에 불과했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당시의 정치와 문화, 사회와 법, 경제와 종교, 군사와 성 영역을 총 망라한 자료 수집으로 인해 매우 리얼하게 현실에 충실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송나라로 시간 여행이라도 떠난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사' 위주인 작품보다는 작가 고유의 문체나 문장이 돋보이는 상징적인 작품이나 감정의 흐름과 인물의 정서에 치중하는 작품에 더 관심이 많지만, 이 작품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다. 그만큼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와 머리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역사적 배경과 정보, 그리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주는 매력이 굉장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