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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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탈옥을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그 남자는 감옥에서 10년을 보내고, 출소를 하루 앞 둔 상태였다. 하루만 더 있으면 자유의 몸이 되었을 텐데, 왜 마지막 날 밤에 그런 짓을 했을까? 그렇게 탈옥수가 된 그가 잡힌다면 재판을 받고 다시 감옥에 들어와야 할 것이다. 아마도 20년은 더 수감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탈옥을 감행했다. 여기서부터 이 작품이 특별해진다.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고, 특별한 스릴러의 주인공을 만나게 된다.

뭔가를 기대한다는 건 그런 식이지, 하고 오디는 생각한다. 단 하나의 사건이나 단 하나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모든 게 뒤집힐 수 있다. 타이어에 펑크가 나거나 잘못된 순간에 보도에서 내려서거나 하필이면 급조 폭발물 옆으로 차를 몰아가거나. 오디는 사람이 자기 운을 만든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또한 공정함 같은 건 생각지도 않는다. 피부색이나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가리킬 때만 빼고.

드라이퍼스 카운티의 무장 트럭 강도사건. 그날 네 사람이 죽었고, 한 명이 도망치고, 한 명이 잡혔다. 현금 700만 달러의 행방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범인으로 지목된 오디 파머 뿐이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 수감된 10년 동안 온갖 협박과 살해 위협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꾸역꾸역 살아남았다. 그가 감옥에 도착하고 몇 시간 안 되어 그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고, 사라진 7백만 달러에 대한 관심으로 오디는 매일같이 지독한 짓을 당해야 했다. 그는 첫날 열두 명의 남자와 싸워야 했고, 다음 날에는 새로 열두 명이 더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겁에 질려 하지도, 독방에 넣어달라고 애원하지도 않고, 그저 그 모든 것을 견뎌냈다. 그렇게 10년을 버티고, 출소 하루 전에 탈옥을 한다.

이 작품에서 감옥을 탈옥하는 과정의 드라마틱함이나 계획 따위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가 탈옥을 하고 나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탈옥이 아니라 그가 탈옥을 한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 전체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가 탈옥을 하고 난 뒤, 그의 옆방 동료였던 모스와 미해결 강도사건을 추적 중인 연방수사국 특수수사관 데지레, 10년 전 강도사건 현장에 있었던 보안관 발데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추적자들까지 모두 사라진 오디를 쫓기 시작한다.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된다는 게, 때로는 쉽지가 않단다."

오디를 찾기 위해 온 데지레에게 모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친구가 왜 탈옥했는지 알고 싶어 하시지만, 그건 잘못된 질문이라고. 왜 더 일찍 탈옥하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하는 거라고. 오디는 감옥에 있는 내내 칼에 찔리고 목을 졸리고 두들겨 맞고 유리에 베이고 불에 지져졌다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간수들이 두들겨 팼고, 낮에는 마피아나 깡패들이 오디를 덮치려고 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오디는 단 한번도 증오나 후회나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탈옥한 오디의 뒤를 쫓는 인물들과 감옥을 나온 오디의 의문스러운 여정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진행되지만, 우리는 이야기가 꽤 진행될 때까지 그의 의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다. 호흡이 짧고,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이런 느낌을 받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도로 위로 몸을 숙인 채 가슴을 들썩인다. 콧물이 흐르고 어딘지도 모를 곳들이 아파온다. 상실감과 당황 속에서 오디는 자신의 통제를 잃었다. 한때 품었던 모든 계획은 이제 더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짊어진 채 가고 있다. 통근객들, 쇼핑객들, 관광객들, 사업가들, 야구모자 쓴 소년들, 넝마를 입은 거지들. 자기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 오디는 그저 존재하고 싶을 뿐이다.

마이클 로보텀은 이 작품으로 작년 골드 대거상을 수상했다. 올해 에드거상과 배리상에도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고 말이다. 그의 대표작인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그 재미와는 별개로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느린 이야기 진행으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걸로 유명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 속도감이 대단하다. 그리고 550페이지를 앉은 자리에서 읽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은 주인공 오디 파머 때문이다. 실제 그가 행하는 말과 행동보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기억하고 평가하는 걸로 우리는 그를 먼저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과거 그의 모습과, 실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현재 그의 행동에 전혀 다른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고,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진짜 오디 파머의 모습을 알게 된다.

사랑은 남자를 그렇게 만든다. 남자를 미치게 만든다. 사랑은 남자를 장님이나 불사신으로 만들지 않는다. 약하게 만든다. 남자를 인간으로 만든다. 현실로 돌려놓는다.

단 하나의 사건이나 단 하나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정한 것이 아니며, 스스로 자기의 운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게다가 기대는 항상 현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삶은 가장 평범한 꿈도 짓밟고 꺽어 버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뭐 하나 마음먹은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이냐 싶을 수도 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 어떤 잘못을 저지르지도, 그 무슨 결정을 내리지도 않았음에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지게 된다면 당신이라면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기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누군 가에게는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누군 가에게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힘을 다해 버텨야 하는 일이라면 말이다. 글쎄, 나라면 오디 파머처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마이클 로보텀은 이 작품을 통해 책장에서 튀어나와 우리의 마음과 기억에 파고드는 인물을 창조했다는 것. 나는 그저 오디 파머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마치 그가 실제로 살아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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