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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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공항의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 바에서 만난 두 남녀. 남자는 신생 인터넷 기업에 자금을 대고 조언하는 일을 하는 부유한 결혼 3년차였고, 여자는 여자 대학교에서 문서 보관 담당자로 일을 하는 미혼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평생 다시 볼 일도 없을 테니, 낯선 사람에게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인형 같고 동그란 얼굴은 나이를 먹으면서 둥실둥실해질 것이고, 핀업 사진 속 모델 같은 몸도 처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녀는 늙지 못할 것이다. 내가 죽일 거니까. 맞지? 난 그럴 계획이었다. 그녀를 죽이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굉장한 힘과 희열이 느껴졌지만 또한 두려움과 슬픔도 느껴졌다. 난 아내를 미워하지만 그 이유는 한때나마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해안가의 부지를 사들여 집을 짓는 중이었는데, 시공업자와 아내가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직접 눈 앞에서 확인한 그는 엄청나게 화가 났고, 아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불륜 장면을 목격한 일주일 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자문했던 질문, 아내를 죽이는 일에 대해 그녀에게 털어놓자, 놀랍게도 그녀가 이렇게 말을 한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에요."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런 생각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너무 괴롭고, 분하고,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 순간 곁에 있던 누군가가 그 생각은 당연한 거고, 전혀 나쁜 게 아니라며 도와주겠다고 나선다면 어떨까.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고, 당신이 하는 건 그 사람의 죽음을 앞당겨주는 행동일 뿐이라고 말이다. 당신에게 나쁜 짓을 한 그 사람이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드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이니, 사라져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그 행동이 이후에 그로 인해 상처받을 많은 사람들을 구해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글쎄, 장난처럼 웃어 넘길 수도 있겠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며 정색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정말 그래도 될까 싶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없다. 그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렀다 해도 말이다.

"계획대로만 한다면 잘못될 일은 없어요. 하나만 물을게요. 만약 오늘 케네윅에 지진이 나서 미란다와 브래드가 죽었다고 해 봐요. 기분이 어떻겠어요?"

"행복할 겁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대답했다.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그들은 죗값을 치르겠죠."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거예요. 지진을 만드는 거죠. 둘 다 매장할 정도의 지진. 제대로만 한다면 사건을 수사하게 될 경찰을 포함해 모두가 미란다는 브래드가 줄였고, 브래드는 도망갔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고는 브래드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일 테지만 영영 찾아내지 못하겠죠. 당신을 잠깐 의심할 수도 있어요. 의심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하지만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전혀 나오지 않을 테고, 당신의 알리바이는 절대 깨지지 않을 거예요."

, 그렇게 아내의 불륜을 용서하지 못한 남편의 복수극이 짜잔.하고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오산이다. 이야기는 살인을 계획하는 남편 테드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그를 돕는 릴리의 스토리와 과거 릴리의 행적이 교차 진행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1인칭 화자였던 우리의 주인공 테드는 1장을 끝으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시작된 2장은 릴리와 테드의 첫 만남 장면으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테드가 죽이려고 하던 아내 미란다와 살인 계획을 모의하다 혼자 남겨진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기 시작한다. 마지막 3장에선 그녀들 외에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킴볼과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릴리의 시점으로 교차 진행되며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릴리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그녀의 독특한 가정 환경과 어린 시절의 영향이 매우 컸지만, 사실 그녀를 그저 사이코 패스라고 치부하기에는 모자란 부분이 많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말 나쁜 것인지.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그 시기를 조금 앞당기는 것뿐이라는 합리화, 그리고 내가 만약 누군가를 죽이고,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의문이다. 나라면?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애초에 살인의 당위성을 믿는다면 말이 안 되겠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지점과 어느 순간 만나게 된다. 우리가 그 동안 옳다고 믿어 왔던 모든 것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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