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기사에서 일본이 갈수록 늙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노인인구 비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노인인구 급증으로 인해 관련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의 사정은 역시나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차 가속화 되고 있는 고령화 시대, 건강 100세를 추구하는 노년시대이지만, 세계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어 보인다. 가와이 간지는 <데블 인 헤븐>에서 이런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짚어내며 매우 현실적인 미스터리를 그려내고 있다.

"스와 씨는 정말로 국가가 시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고 믿습니까?"

아오키 가스미는 조용한, 그러나 날카로운 투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전쟁은 왜 일어난 거죠? 아편, 각성제, 담배 같은 중독 물질을 팔 수 있게 허가해서 국민 건강과 이익을 맞바꾼 것은 누굽니까? 공해니 약해니 식품첨가물 피해니 하는 사태는 왜 일어나는 거죠? 시민이 타국에서 납치되면 국가가 구출하려고 진심으로 애쓰던가요? 유일한 원폭 피폭국이면서도 고집스레 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스와는 말문이 막혔다. 아오키 가스미는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오래된 음식점 건물들이 늘어선 번화가의 한 골목 쓰레기 더미 위에 노인의 사체가 발견된다. 누군가 싸운 흔적도 없고, 건물 사이 좁은 틈새는 일반적으로 투신 자살할 장소로 선택될 만한 곳도 아니다. 그저 심한 부식으로 망가진 비상계단을 내려가다 실수로 떨어져 죽은 것 일까. 경찰은 사건성이 없어 보인다고 자살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노인이 기요스의 이스트헤븐에 틀어박혀 도박에 빠져 지내다 통장을 깨고 주식과 국채를 팔고, 급기야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액의 빚을 가지고 보험금을 노린 자살이라고 보기에는, 새로 보험을 가입한 사실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현장에 검은 천사 그림이 인쇄된 트럼프 카드가 한 장 있었다. 스와는 의문을 묻어버리자니 영 찝찝했지만, 마침 이스트헤븐을 관할하는 기요스 경찰서로 전근 명령이 떨어지고, 사건은 평범한 자살로 마무리가 된다

이스트헤븐은 도교 올림픽 개최와 동시에 도쿄 만 매립지 기요스에 들어선 일본 최초의 카지노이다. 국가에서는 도박이 노인의 노망이나 칩거를 방지하는 데 좋다는 이유로 고령자 복리후생 차원에서 예산을 배정해놓고, 카지노를 찾는 노인들에게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며 카지노 놀이를 장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요스 서로 전근을 간 스와는 그곳에서 또 의문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의문의 추락사를 한 동료 형사,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이스트헤븐의 사설 경비 회사,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험조사원이라는 가스미가 그를 찾아와 노인의 추락사가 사고가 아니라 살인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알고 보니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 노인이 한 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험조사원과 형사, 그리고 기자가 함께 이시트헤븐을 둘러싼 일련의 의문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스트헤븐은 지상 최대의 낙원인가, 거대하고 추악한 욕망의 지옥인가. 돈이 모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욕망이 모여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곳에선 모든 범죄가 태어나고 모든 비극이 일어난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고스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버지가 생선 같은 눈빛으로 스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늙은이가 돈을 가지고 있어봐야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하지만 카지노에서 돈을 쓰면 그 돈이 나라에 들어가고 세상에 나돌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지. 그러니까 여기서 도박을 하면 늙은이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거야. 그러다가 빈손이 되었을 때 진짜 천국에 갈 수 있는 거다."

이야기의 배경은 2023, 먼 미래 같지만 사실 지금으로부터 겨우 7년 뒤의 이야기라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매우 현실적이다. '65세인 노인이 평균 수명인 83세까지 산다면 그 동안 일인당 5688만엔이 필요하고, 그 돈을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데, 역으로 고령자 한 사람이 죽으면 5688만 엔이 굳는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돈을 아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고령자 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국가와 지자체가 생각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대목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면서도 또한 매우 리얼하게 현실적이라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소비자금융, 보험 회사, 카지노, 도쿄 도, 국가, 이렇게 다섯이 결탁하여 죄 없는 노인들을 잇달아 살해하고 있는 이 작품의 설정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는 일 같아서 서글퍼지고, 무서워지기도 했다.

가와이 간지의 데뷔작인 <데드맨>에서도 독특한 플롯과 기발한 구성, 그리고 인간의 실존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들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인 <데블 인 헤븐> 역시 흥미로운 설정과 현실 풍자적인 예리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는 죽음의 천사, 야곱의 층계, 악마의 유혹, 지옥과 천국 등 성경을 모티프로 한 기독교적인 은유와 암시가 유독 많은데, 그것을 통해서 사회 정의와 선과 악에 대해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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