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엄청난 역사 속의 정보가 흘러 넘치는 기이한 가상현실 게임부터, 웬만한 스릴러 뺨치게 숨 막히는 군사 첩보전도 있고, 천체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우 리얼한 자료들에 현대사의 광기와 폭력, 그리고 격정이 휘몰아치는 시대적인 배경에다 너무도 설득력 있는 외계 문명 탐사에 이르기까지 스펙 타클하게 아울렀던 첫 번째 시리즈에 이어 삼체가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정말로 개인이 역사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까?"

"그건 옳고 그름을 증명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위인 몇 명을 죽인 뒤에 역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지 않는 이상 말이죠. 물론 그 위인들이 쌓은 둑과 파낸 물길이 정말로 역사의 방향을 결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 위인들이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헤엄치는 수영 선수에 불과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세계 신기록을 내고 갈채를 받고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기기는 했지만 물결이 흐르는 방향과는 전혀 무관한 거지요..... 하긴, 이렇게 된 마당에 이런 얘긴 해서 뭐하겠어요?"

이 작품은 1960년대 문화 대혁명부터 시작해 텐안먼 사태, 양탄 공정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거쳐 수백 년 후 외계 함대와의 마지막 전쟁까지 이어지는 '지구의 과거' 3부작, 그 두 번째 시리즈이다. 전작에서 삼체라는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었던 세 개의 태양이 존재하는 기이한 세계는 실재하고 있었던 외계 생명체였고, 인류 문명에 철저히 절망해 자신의 종을 증오하고 배반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 자손을 포함한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지구 삼체 운동이 활발해지는 중이었다. 그들은 인류가 이미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광기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특별한 존재의 힘을 빌려 인류 사회를 강제적으로 감독하고 개조해서 전혀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인 은퇴한 천체 물리학자 예원제가 두 번째 시리즈의 포문을 연다.

옛 친구의 어머니이자 천체 물리학자인 예원제와 만난 주인공 뤄지는 그녀로부터 우주사회학을 연구해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별볼일 없는 평범한 학자인 뤄지가 지구를 구원할 면벽자 중 한 명으로 선발되게 되는 이유와 연결 될 것이다. 그렇다면 면벽자란 무엇인가. 지구인들의 면벽 프로젝트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플롯이다. 삼체인들이 지구 문명을 멸망시키기 위해 태양계로 거대한 우주 함대를 파견한다는 소식에, 지구에서는 일명 도피주의가 만연했다. 삼체인들이 지구로 도착하게 되는 것은 400여년 뒤로 예상되지만, 그들에 의해 인류의 첨단 과학 기술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도록 멈춰진 상태였다. 당연히 450년 후 지구와 태양계를 지키기 위한 그 어떤 방어 계획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단 지구를 벗어나서 도피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에 정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면벽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시행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회의론이 나타났어요. 아무리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이렇게 심한 대가를 치러야 하느냔 말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아이가 품에서 굶어 죽는 것과 인류의 문명을 존속시키는 것,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할까요? 두 분은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상황에 놓인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미래가 어떻든 당장의 삶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죠. 처음에는 이런 말을 하면 인류의 적으로 몰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생각이 점점 퍼지더니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때 유행한 구호가 명언으로 역사에 남았죠."

뤄지가 창 밖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시간이 문명을 위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시간을 위해 흐르는 것이다."

삼체인들의 소통 방법은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것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속임수나 거짓은 존재할 수가 없었지만, 지구인들은 다르다. 그래서 삼체인들은 지구에 양자 크기의 인공지능 컴퓨터지자를 수없이 보내 지구인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게 된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지구에서는 네 명의 면벽자를 선발해, 그들 각자가 지구 구원을 위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시행하되, 지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하게 한다. 한마디로 면벽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최고의 사기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파악한 삼체인들은 지구인에게 반감을 품은 지구인들 중에서 파벽자를 선출해 면벽자의 속마음을 파헤쳐내려 한다. 무려 700페이지 분량의 이 묵직한 작품은 면벽 프로젝트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해 삼체 위기가 시작된 지 200여년 뒤 동면에서 깨어난 인물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색다른 미래의 풍경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전작에서부터 느꼈지만 작가의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천체 물리학과 수학이라는 학문의 매우 리얼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어 절대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이다. 삼체 함대와 태양계의 거리 4.21광년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약 200년 뒤, 삼체 함대와 태양계의 거리 2.10광년으로 점점 위기가 가까워진다. 네 명의 면벽자들이 등장해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반부는 스릴러 장르에 가깝고, 수십억 인구 중에 선택된 그들이 동면에 들어갔다 다시 깨어난 후반부의 이야기는 디스토피아 장르처럼 읽히지만 과학 소설로서의 매력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철학적인 메세지도 있고, 과학적인 정보고 많고, 스토리 자체로서의 볼륨감도 있어 끝까지 읽어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껏 만나왔던 그 어떤 SF 작품과도 다른 매력의 느낄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시리즈의 마지막 3부는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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