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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 라베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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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히키코모리 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집 안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그 누구와도 사회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은 너무도 치열하고, 무시무시해져 가니 나만의 공간에서 홀로 안전하게 숨어 있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는 것이 너무 비정상 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회가 비정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여기, 무려 십일 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는 소설가가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세상 밖으로 발을 내딛어야만 하는 일생 일대의 순간이 다가온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들어온 강타였다. 조피, 그 망가진 여성은 바로 나였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지금부터 시작될 대화는 꼭 해야만 하는 대화임을 마음속에 새겼다. 나는 고발자이자, 배심원이자, 또 판사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고발, 논증, 판결.

 

서른 여덟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린다 콘라츠, 그녀는 십일 년이 넘게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 십이 년 전에 여동생 안나가 살해당했고, 범인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이다. 그날 이후 부모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졌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지 벌써 몇 년째이다. 함께 살고 있는 개 부코스키와 가끔 들러 집안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샬로테, 그리고 출판사 사장인 노베르트 정도가 그녀가 현재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의 모든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뉴스에서 자신의 동생을 죽인 남자의 얼굴을 보고 만다. 십이 년 전 그날, 동생을 처음 발견한 것이 바로 린다였고, 그녀는 범인이 도망치는 걸 목격했던 것이다.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서고, 온몸에 닭살이 돋고, 분노의 감정이 목을 조여오는 그 순간, 그녀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를 반드시 붙잡고 말겠다고. 린다는 그때 그 사건을 범죄소설로 만들어 새 책을 쓰기로 한다. 범인을 유인하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치료제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그녀는 그날의 사건을 스릴러로 재 탄생시키고, 그 동안 기피하던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 바로 그녀의 동생을 죽인 살인자를 지목해서. 그는 문학 담당 기자는 아니었지만, 폐쇄적인 유명 작가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온다. 린다는 그가 자백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를 기다린다. 과연 그녀의 계획대로 그는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하게 될까. 혹시 범인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 어떤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던 건 아닐까. 그가 범인이라는 건 확실한 사실인 걸까. 이야기의 화자인 그녀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인 걸까.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를 다 믿어도 되는 걸까.

그래,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몇 달간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이 말일 것이다. '두려움은 어떤 일을 하지 않을 핑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진짜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십 일년 째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저명한 언론인이 된 살인범과의 대결이라는 플롯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은 읽기 전부터 기대감을 주었다. 이야기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스스로 함정이 되려고 하는 린다의 현재 이야기와 그녀가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피를 나눈 자매'가 교차로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진범을 잡으려고 하는 플롯에서 중반 이후 갑자기 살인 사건의 주용의자였던 사람이 당시의 살인 사건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플롯으로 바뀌면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전개로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거기서 커다란 망치와도 같은 반전에 이어 막판에 또 한번의 반전이 이어지며 독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다.

물론 심리 상태가 불안정한 주인공이 전체 이야기의 화자라는 점에서 '믿을 수 없는 화자'가 이끌어가는 반전 스릴러의 공식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될 수는 있겠다. 게다가 매력적인 설정의 함정에 비해, 그 장면을 이끌어가는 린다의 범인에 대한 취조 기술은 좀 허술해서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언니이자,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며,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베스트셀러 소설가라는 캐릭터는 그 어떤 이야기도 만들어낼 수 있는 독보적으로 매혹적인 인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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