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동화의 결말은 여지 없이 해피 엔딩이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이 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뻔한 결말을 보자고, 우리는 왜 동화를 읽는 걸까. 바로 그 해피 엔딩이 안겨주는 위안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주인공이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거치고, 괴롭힘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라는 식의 이상한 희망 같은 거 말이다. 게다가 SF 장르의 세계관으로 시작해 과학과 마법이 난무하고, 거기다 오글거리는 소녀 풍의 로맨스까지 첨가된 동화라면, 일상의 지루함까지 날려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갖춘 시리즈가 바로 이 작품이다.
제이신이 걸음을 멈췄다. 윈터는 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제이신을 돌아보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여왕이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윈터는 몸서리를 쳤다. 그 말의 뜻보다도 표현 자체의 섬뜩함이 먼저 와 닿았다. 충격 받아야 마땅한 소식인데, 어쩐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레바나가 그녀의 얼굴에 흉터를 낸 이후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해온 것 같았다.
의붓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보다 제이신이 결국은 사랑을 고백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더 실망스러웠다.
대망의 시리즈 마지막 이야기는 왕실 근위병이자 시빌 미라 마법사의 직속 경호원이었던 제이신의 재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루나인 도망자인 신더를 체포하지 못했고, 그녀의 편에 서서 여왕에 대해 모반을 일으켰다는 죄목에 대해 제이신은 신더를 속여서 그녀의 신뢰를 사 레바나 여왕을 위한 정보를 캐낼 목적이었다고 항변한다. 신문 장면을 지켜보면서 윈터는 속이 타 들어간다. 제이신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무력감에 휩싸인다. 그들은 소꿉 친구이자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이였으니 말이다. 한편, 신더는 카이토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루나에 가서 레바나와 전쟁을 치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들 내일이라도 당장 떠나자고 보채지만, 신더는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누구의 목숨도 헛되이 희생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구의 신베이징 황궁을 공습한 루나의 늑대 병사들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드디어 그들의 계획이 시작된다.
카이토는 지구로 돌아가 레바나와 결혼식 장소에 대한 협정을 시작하고, 루나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신더 일행이 카이토와 함께 몰래 루나로 입국하지만,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레바나 여왕과 그의 수하들에 의해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크레스가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홀로 떨어지게 된다. 그 난리통에 윈터는 제이신과 함께 크레스를 숨겨주고, 신더 일행은 무사히 울프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레바나 여왕은 제이신에게 윈터를 죽이라 명하고, 제이신은 여왕을 속이고 윈터를 스칼렛과 함께 도망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윈터는 신더 일행과 만나게 되고, 스칼렛도 드디어 울프와 다시 재회하게 된다. 크레스가 위험에 처하는 과정에서 카스웰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게 되고, 신더는 루나의 시민들에게 자신이 루나 왕위의 정당한 계승자인 셀린이며, 레바나의 폭정을 끝내고 왕좌를 돌려받기 위해 왔다고 연설한다. 루나의 시민들에게 자신의 군대가 되어 달라고, 레바나와 그 추종자들에게 맞서 싸우자고 말이다. 윈터와 스칼렛을 비롯해 신더의 일행들은 각각 다른 곳에서 군대를 모으고, 그들은 점점 하나가 되어 레바나에게 맞서 싸울 힘을 모으게 된다.
윈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새콤한 사과맛 사탕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제과점 진열장 안에서 막 꺼낸 것처럼 매끈하고 예쁜 사탕이었다.
"어머나, 맛있게도 생겼네." 노파가 고개를 빼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먹어봤어요. 사과맛이지요?"
"맞아요." 윈터는 그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할머니도 하나 드세요. 이걸 제게 전해주셨으니 감사의 뜻으로 드리고 싶어요."
노파는 망설이는 눈치였다.
"정 그러시다면..... 한입 먹어도 죽지야 않겠지요. 그럼 저는 이걸 먹을게요. 봐요, 요건 껍질에 금이 가 있잖아요. 공주님께 이런 못난 걸 드릴 수야 없지요."
윈터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레바나는 수하들이 믿을 만 하지 않자 직접 나서기로 하고, 노파로 분해 윈터가 좋아하는 사과 맛 사탕을 건네 윈터가 레투모시스 병에 걸리도록 만든다. 윈터의 완벽한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피고름이 가득 찬 물집이 일어나고, 섬세한 손가락이 흉하게 쭈그러들 생각만해도 레바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한편, 신더 일행들은 그 소식을 듣고 전염병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연구실로 향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혁명을 성공할 수 있을까. 윈터는 돌연변이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루나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진 지구는 살아날 수 있을지... 신더와 윈터의 활약으로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이들의 모험 스토리는 끝이 날 줄 모르고 휘몰아치듯 전개된다.
루나 크로니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동화의 플롯으로 시작해서 SF 장르의 세계관으로 과학과 마법이라는 화려한 소재를 통해서 구축되고 있는 굉장히 방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시리즈만 네 편이며, 책으로는 다섯 권이나 되고, 주인공도 시리즈에 맞춰 네 명의 여주인공과 또 네 명의 남주인공과 악의 축에 서 있는 캐릭터도 레바나 여왕을 비롯해서 꽤나 많다. 하지만 그 수많은 인물들이 제각각 뚜렷하게 개성 있고,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그들의 관계 또한 억지스럽거나 유치하지 않게 설정되어 있다. 게다가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스토리 전개가 스펙타클 해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모험 플롯에 모범답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 외 인물들도 각 장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물들을 각기 자신의 파트너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와 부딪히는 장면들을 만들어주어 색다른 시너지 효과를 만들고, 그 효과는 시리즈 마지막 편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한마디로 '해리 포터를 누른 이 시대 최고의 판타지'라는 찬사가 전혀 아깝지 않은 시리즈이고, 거기 더불어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로맨스 또한 매우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