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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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 사건 이후 이십 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세상을 경악하게 만드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져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그 비극의 한 복판에서 무려 16년 동안 멈춰버린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은 피해자의 가족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책은 평범하고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를 묻고 또 물었던 가해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끔찍한 폭력이 벌어졌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나도 범인의 가족은 어떤 이들일까 생각했었다. 부모가 가엾은 아이에게 어떻게 했길래 저런 사람으로 자라났을까 생각했다. 따뜻한 환경에서 사랑으로 키운 아이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족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명을 언제나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부모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고, 어쩌면 학대했을지도 모른다고 확신했다. 엄마가 아주 신경질적인 사람이거나, 숨 막히게 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무기력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1999 4 20,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고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이 책은 사건의 주범이었던 두 학생 중 한명인 딜런의 엄마가 쓴 글이다. 그 끔찍한 날 뒤로 16년 동안, 여전히 자신이 알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보냈던 그녀는,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때 벌어졌던 학살을 속죄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이 책은 왜 필요한가? 가해자인 자신의 아들을 두둔하고 싶었던 한 부모의 목소리를 우리가 왜 들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던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떻게 한 순간 세기의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당시 누구라도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자신이 낳고 기른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썼던 저자도 처음에는 아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려고 애쓰면서도, 여전히 아들이 자의로 누군가를 죽였을 리 없다는 현실부정을 놓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나마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타협하자면, 어쩔 수 없이, 혹은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을 테니 말이다. 그저 딜런은 마지막 순간에 에릭에게 끌려간 무고한 희생자라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애초에 그 엄청난 학살을 미리 계획하고 사람들을 죽일 명백한 살해의도가 있었던 살인자라는 걸 받아들이기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사건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들은 부모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길의 끝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가해자의 부모든, 피해자의 부모든, 세상 모든 부모에게 자식이란 존재는 내 목숨과 바꿔도 아깝지 않을 만한 존재, 세상이 무너진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을 만한 존재이니 말이다. 언젠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침묵의 거리에서>를 읽는데, 피해자를 둘러싼 가해자 4명의 부모가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 위주로만 사건을 바라보는 모습이 기가 막혔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 사건의 진상 따위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내 아이가 사건과 연관되지 않기만을, 내 아이가 다치거나 상처받지 않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모습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것과도 같다. 그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부모란 존재의 본질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딜런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목숨을 죽은 사람들 대신 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천 개의 열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내 아들 때문에 망가지거나 스러진 삶을 기리며 살려고 애쓴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또 내가 아직도 딜런에게 느끼는 사랑에 매달리기 위해서 일한다. 아무리 끔찍한 일을 저질렀더라도, 딜런은 언제까지나 내 아이다.

실제로 그가 살아왔던 환경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고 방조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수많은 매체의 보도 속에서, 현실을 바탕으로 한 수많은 허구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말이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학대하고, 어떻게 낭떠러지로 내몰았는지 우리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서 보아 왔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가 제대로 된 인격 형성이 되기 전이라면, 아이가 하는 행동의 거의 대부분을 부모의 책임이라고 봐야 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말이다. 하지만 부모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자신의 아이를 품 안의 자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바라보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우뚝 서서 세상과 소통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시점에서 부모의 역할이란, 그저 아이가 원했을 때 고민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는 정도이니 이미 형성된 자아와 인격을 바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다르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사람은 가정에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십대의 경우에는 더군다나 그렇고 말이다. '양육'이란 한 사람이 접하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이 아는 방식 중에 최선의 방법으로 아이를 기른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아이는 부모가 알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딜런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그의 부모님이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딜런이 그런 엄청난 학살을 저지르게 된 것이 아니었을 거다. 딜런이 그런 상태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이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성숙하고 독립된 존재로 자라난 딜런이 자신의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던 것이다.

딜런을 키우는 일은 끝이 났다. 이 아이를 만들어내는 데 들였던 모든 사랑과 노력이 끝이 났다.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수많은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특히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란 사실 무시무시하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니,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부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가고,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한 내 아들이 누군가를 죽인 살인자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일 것이다. 그렇게 지옥과도 같았던 시간들을 겪어야 했던 가해자의 엄마이자 이 책의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날마다 딜런과 에릭이 죽인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 동안 자신이 아들에게 잘못했던 무수한 것들과 아들이 남긴 끔찍한 파괴 둘 다에 대해서, 단 하루도 격한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었다고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는 육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뒤집어, 아이가 괴물이 되고,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을 보아야 했던 한 부모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고. 육아의 책임은 가정뿐만 아니라 학교, 사회에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다 같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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