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퀸 : 유리의 검 1 레드 퀸
빅토리아 애비야드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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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피로 인해 신분이 결정되어 있는 세계이다. 붉은색 피로 태어나며 평범한 적혈과 은색 피로 태어나 초능력을 쓰며 적혈들의 위에 신처럼 군림하는 은혈로 이루어진 세계. '태어날 때부터 피로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의 피지배층 출신 소녀가 특별한 능력을 얻으면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라고 요약되는 이 작품은 얼핏 <헝거게임>과 유사한 전개가 상상되지만, 흥미로운 건 작가가 구축한 세계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헝거게임>의 성공 이후, 그와 유사한 판타지 작품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던가. 이제는 좀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날 때가 됐다. 그 시작이 바로 <레드퀸>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수백 명의 이름이 있어, 능력을 가진 적혈들 수백 명의 이름이. 더 강하고, 더 빠르고, 새벽처럼 불타오르는 피를 가진 적혈들이."

미래의 모서리에 서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턱 막힌다.

"메이븐이 그들을 죽이려고 할 거야,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먼저 닿을 수 있다면, 그들은....."

"이 세계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군대가 되겠지."

전편인 <적혈의 여왕>에서 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는 소매치기 밖에 없었던 소녀 메어는 우연히 궁에서 일을 하다가, 왕비를 선출하기 위해 초능력을 겨루는 퀸스트라이얼 도중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의 능력을 무심코 분출하게 되었다. 적혈이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왕의 계획으로 둘째 왕자인 메이븐과 약혼을 하게 된 메어는, 언제 들통날 지 모르는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왕궁에서의 위태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그러다 메이븐과 함께 반란 군단인 진홍의 군대 일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배려있는 모습의 메이븐에게는 메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계략이 있었고, 결국 왕세자 칼과 그녀는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번에 출간된 <유리의 검>에서는 칼과 메어를 구축한 진홍의 군대 일원들과 메이븐 일행으로 부터 도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편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고, 인물들을 설정하고 소개하느라 에필로그 식의 서두가 다소 길었다면, 이번에는 본격적인 두 세계의 대립과 전투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휘몰아쳐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 사이사이 메어의 고민과 고뇌 또한 계속 된다. 평범했던 열일곱 소녀가 온 나라가 주목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번개 소녀가 되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존재로 인해 핍박 받던 자신들의 세계를 다시 세울 수도 있을 거라고 희망을 가지게 되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인한 충격과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사랑에 대한 혼돈까지... 메어의 성장기는 계속 된다. 잃어버린 몇몇 것들은 잊기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죽은 이들의 얼굴들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앞을 향해 달려나간다.

이제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부분, 내가 가장 심하게 저항했던 부분이 닥친다. 하지만 칼은 확고했다. 우리는 찢어져야만 해. 더 많은 영역을 커버하고, 더 많은 죄수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우리 자신이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모여 있는 신혈들을 뚫고 흐름을 거슬러 가서 카메론의 옆에 선다. 그녀는 내 어깨 너머로 열쇠를 던지고, 킬런이 솜씨 좋게 그것을 받는다. 그는 우리가 가는 모습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지켜본다. 지금이 그가 나를 볼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메어가 궁을 나와서 다시 처음으로 메이븐을 만나게 된 순간, "내가 그대를 찾을 거라고 했잖아." 라고 말하며 그녀의 생명을 위협하는 마치 로맨스 같으면서도, 소름 끼치는 공포를 안겨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분명 남자 주인공은 칼인 것 같은데,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묘하게 메이븐이라는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인 킬런과의 관계도, 그리고 여전히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칼과의 관계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의 균형을 적절하게 배치해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더 이상 소년과 소녀가 아닌 그들, 나이만 보자면 어린 아이들에 불과해야겠지만, 이제 그런 아이들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군대를 모으고, 초능력을 사용해서 누군가를 죽이고, 지키며 그 와중에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아야 하고, 사랑도 놓치지 말아야 했으니 말이다.

이번 시리즈의 마지막 장면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메어가 메이븐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막이 내린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그것이 메어의 선택이었다는 거다.

"나머지 사람들을 보내 줘, 그러면 내가 너의 죄수가 될게. 내가 항복할게. 내가 돌아갈게."

그리고 그 엄청난 선택의 대가는 엄청나다. 마지막 장면에 드러나는 그것은, 우리가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준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소녀, 메어가 다음에는 또 어떤 상황을 겪게 될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게 될지, 그리고 그들이 결국 승리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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