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 작가의 작품은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소년이 온다> 까지 읽었으나, 정작 맨 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된 <채식주의자>는 이제야 겨우 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채식주의자'라는 제목부터가 나에게 다소의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그들이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온갖 이미지로 점철된 이 작품은 과연 놀라울 만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여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 먹어?"

아이를 넷쯤 낳아 기른 중년의 여자처럼 방심한 목소리로 그녀가 물었다. 내가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삭아삭 소리를 내어 오랫동안 김칫대를 씹었다.

-'채식주의자' 중에서-

'채식주의자'에서 올해로 결혼 오 년 차에 접어드는 남자는, 아내인 영혜가 극도로 평범한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를 선택했었다고 추억한다.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던 그들의 일상은, 어느 날 새벽 아내가 잠옷바람으로 부엌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이후로 완전히 달라진다. 꼼짝 않고 서서 냉장고를 마주보고 있던 아내는 멍하니 서서 꿈을 꿨다는 소리만 반복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육식을 멀리하고 오로지 채식만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말라갔으며, 잠도 거의 자지 않았기에 사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남자는 처가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아내를 말려보려고 하지만, 언니 인혜의 집들이 자리에서 장인이 강제로 그녀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고 하면서, 아내는 손목을 긋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몽고반점'에서 비디오 아티스트인 남자는 어느 날 일 년여의 고갈상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만한 궁극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것은 무심코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키며 몽고반점 얘기를 꺼내면서, 처제인 영혜는 스무 살까지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었다고 말을 하면서부터이다. 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 꽃이 열리는 장면이 그 순간 그는 충격과도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백일몽처럼 자신이 그리는 이미지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궁리하다, 처제인 영혜에게 자신의 작품에서 모델이 되어 주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고 영혜와 비디오작품을 찍게 된다. 벌거벗은 영혜의 몸에 바디페인팅으로 꽃들을 그려놓고 비디오로 찍고, 후배에게 남자 모델을 제안해 남녀의 교합 장면을 찍으려다 실패한 뒤로, 자신의 몸에 꽃을 그리고 직접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그들의 모습을 촬영한 테이프를 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인혜는 아직 정신도 성치 않은 자신의 동생을 범한 남편을 용서할 수 없고, 그들을 위해 정신병원에 연락한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몽고반점' 중에서-

'나무 불꽃'에서 인혜는 삼 년여 전 동생인 영혜가 갑작스럽게 채식을 시작한 뒤로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본다. 현재 영혜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남편은 병원에서 정상으로 판명되어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수개월의 소송과 지루한 구명운동 끝에 풀려나고는 잠적해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는 더 이상 둘째 딸을 보려 하지 않았고, 짐승만도 못한 사위를 연상시키는 큰딸과도 연락을 끊었으며, 막내 동생 내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는 영혜를 버릴 수 없었기에, 입원비를 대고, 그녀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으며, 병원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동생 곁에서 삶을 겨우 버텨나간다. 영혜는 갈수록 육식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섭취하는 걸 거부하려 들고, 자신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 되고 싶다며 점점 죽어간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 불꽃' 이렇게 세 작품은 2002년 겨울부터 2005년 여름 사이에 씌어진 연작 중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영혜이지만, 각각 이야기의 화자는 모두 영혜가 아니다. 1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이, 2 '몽고반점'에서는 인혜의 남편이자 영혜의 형부가, 3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가 화자가 되어 그들 시점으로 영혜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어가는 개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점점 육식을 멀리하고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영혜'를 그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작중 화자는 서로 다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아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이, '몽고반점'에서는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진작가인 영혜의 형부가, '나무 불꽃'에서는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목격했으나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혜가 각각 화자로 등장한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나무 불꽃' 중에서-

영혜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세 인물, 남편과 형부, 그리고 언니의 시선으로 읽어내는 이야기는 다르면서도, 같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누구나 동일한 장면을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같은 상황도 다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 역시 그렇다. 어린 딸의 다리를 물었던 개를 죽이는 아버지의 목적은 그저 자신의 딸을 위함이었지만, 그 끔찍한 기억은 어른이 된 영혜에게 육식 거부로 이어지게 된다. 가족 모임에서 극단적으로 육식을 거부함을 손목을 긋는 것으로 증명한 영혜의 모습이 남편에게는 더 이상 이 여자와 살 수 없다는 그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고, 형부에게는 누군가 자신의 앞에서 목숨을 던져버리려고 한 것이 구역질 나고 삶에 넌더리 나도록 만들었고,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지켜봐 온 언니에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막을 수는 없었을까. 두고두고 자책으로 남게 된다.

2007 10월에 출간되었던 이 작품은 2016년 맨 부커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어, 벌써 초판 37쇄를 발행했다.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강 작가의 작품이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그다지 대중적인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고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그다지 쉽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도 전혀 아니다. 하지만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를 완성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10년 전 한강 작가는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채식주의자'는 그것의 변주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한다. 물론, 인간의 삶에 있어서 폭력적인 부분을 동물적인 것으로, 그 반대의 평화로운 부분을 식물적인 것으로 은유한 작품이 한강 작가가 처음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려내는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어찌되었든 완성도가 매우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 없다. 어디선가 이번 맨 부커상 수상관련 글을 읽다가, 이 작품을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작업한 방식이 '직역'보다는 '의역'에 충실했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미지로 구축되고, 완성되는 이야기라 데보라 스미스가 의역한 번역 작품 또한 어떻게 그려졌을지 매우 궁금해 기회가 된다면 한번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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