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젊은 여성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주로 혼자 사는 여성들이었고, 트윗을 통해서 자신의 근황을 종종 업데이트 했기에, 가족들 입장에서야 그녀들을 '실종'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애매한 상태이긴 하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여자들은 2~3년 후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특정 기간 동안 빛 한 점 없는 곳에 갇혀서 굶어 죽은 상태로 말이다. 범인의 유일한 흔적은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파랑새 문신이다. 대체 이 여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우샘프턴에 서서히 밤이 내려앉았다. 햇볕 속에서는 평범해 보이던 건물들이 이제는 한층 음산한 외양을 띠고 있었다. 다니엘 브리어스는 14층 높이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밤하늘을 수놓은 반짝이는 조명들을 보고 가슴 벅찬 희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그곳은 암흑천지일 뿐이었다. 그는 한밤의 어둠을 틈타 잔혹한 범죄를 숱하게 저지르는 살인자, 강간범, 절도범 등 온갖 타락한 인간들을 상상했다.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여타의 스릴러 작품과 비교해서 독특한 점이 주요 등장 인물들이 대부분 '여자'라는 점이다. 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의 주요 인물들 모두 여자 형사이고, 과학수사대 팀장도, 총경도, 거기다 헬렌과 대립 관계에 있는 지역신문기자 역시 여자이다. 작가가 남자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여성들의 내면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고, 형사 스릴러 작품에서 돋보이는 뚜렷한 여성 캐릭터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헬렌 그레이스는 꽤나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그다지 공감되지 않은 특별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만 빼고는, 그녀의 말투, 행동, 사고방식 모두 매우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문장이나 플롯 보다는 언제나 캐릭터가 기대되는 이야기인데, 덕분에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거의 무조건 따지지도 않고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인들의 실종 사건과 해변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시체와의 공통점을 찾아서 수사를 시작하는 헬렌 그레이스는 전작에 이어 역시나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다. 그녀가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에서의 엄청난 사건 해결로 인해 너무도 유명 인사가 되어 버리자, 하우드 총경은 사사건건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결국은 엄청난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그리고 전작에서 임신으로 인해 찰리가 수사팀에서 빠지게 되면서 거의 새로운 인물들로 다시 구성된 수사팀 내부의 갈등 또한 매우 리얼하게 그려진다.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여성들은 대부분 궁핍하고 외롭게 살아 왔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아직 '살아 잇는 듯이' 문자메시지나 트윗을 보내고 있는 상태이다. 사건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와 실종된 여성 루비가 범인과 함께 겪어내는 시간이 교차로 진행되어 이야기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해준다. 루비는 범인에게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지, 헬렌 그레이스는 이번에도 연쇄 살인범을 찾아내고 복잡한 이 사건을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인지, 하우드 총경이 놓은 덫을 헬렌이 무사히 피해갈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페이지는 쉴 틈 없이 넘어간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좀처럼 지루할 새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둘은 인형을 하나씩 골라 이름을 붙여주고 각자의 분신으로 여기며 갖고 놀았다. 그들이 아는 모든 왕과 왕비처럼 머나먼 곳에서 낯설고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들을 상상했다. 둘은 날마다 매력적인 환상에 빠진 채 지겨울 때까지 인형놀이를 했다. 그러면서 둘만의 특별한 세상을 창조했다. 하지만 그는 인형의 집에 닥친 슬픈 최후를 떠올릴 때마다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는 제 손으로 그것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그 인형의 집을 지금껏 간직했더라면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여형사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국내에 3권이, 영국에서는 5권이 출간되었고, 작가는 현재 6권을 집필 중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작가가 거의 일 년에 두 편씩 글을 써내는 속도에 맞추어 국내에 출간되는 것도 무려 반 년마다 새로운 시리즈가 하나씩 나오고 있어 너무 반갑기 그지 없다. 사실 시리즈 작품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들 경험해봤겠지만, 시리즈를 이렇게나 빨리 번역해서 출간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시리즈가 끝나고 나면 목이 빠지게 기다리다 지쳐 아예 원서를 사게 되는 경우도 생기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북플라자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는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급박하게 진행되는 전개와 수수께끼를 자아내는 플롯과 구성, 게다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개성의 캐릭터까지. 시리즈로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많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헬렌 그레이스는 스티그 라르손의 리스베트 살란데르 이후 가장 강렬하고 흥미로운 여주인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혹적인 캐릭터이다. 터프하지만 상처를 감추고 있고, 거침없고 냉소적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린 내면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수수께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강인하고 책임감 넘치며 웬만한 일에는 겁먹거나 충격도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진실과 동떨어진 정체성이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항상 진행되는 범죄의 한 가운데 서 있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사건을 추적하고 조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든 희생자든 그녀와 관계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 입장에서는 감정 이입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의 시리즈도 매우 기대가 된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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