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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수리공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이제 장마도 끝나버리고,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로 정말 말도 못하게 푹푹 찌는 여름이다. 이런 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는 꼼짝도 안하고 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어디 그럴 수 있는 여건이 되야 말이지. 이럴 때 필요한 건 무조건 호러 물이다. 호러 영화든, 호러 소설이든, 오싹한 이야기야말로 무더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니 말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고바야시 야스키의 엄청난 데뷔작을 읽었다.
[죽은 고양이를 들고 어디 가?]
[아빠한테 졸라서 고양이를 샀는데, 얘가 나를 할퀴기에 콱 밟았거든. 그랬더니 움직이질 않네. 요그소토호스후한테 가서 고쳐 달라고 할 거야. 아빠한테 들키면 분명 야단맞을 테니까.]
어린아이에게 애완동물과 장난감은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물과 무생물이 어떻게 다른지조차 모를 것이다. 하지만 조금 크면 자연스레 그 차이를 깨닫게 된다.
"개는 죽은 고양이를 장난감 수리공의 오두막으로 끌고 갔어. 나는 국도 위의 육교를 건넜고."
-<장난감 수리공> 증에서-
무슨 장난감이든 공짜로 고쳐주는 장난감 수리공이 있었다. 새것이든, 헌것이든, 단순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아이들은 가리지 않고 장난감 수리공한테 가져갔다. 장난감을 망가뜨렸다는 걸 어른들이 알면 야단칠 테니 그건 아이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느 무더운 날 그녀는 어린 남동생을 돌보며 근처 가게에 심부름을 하러 가다가 육교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만다.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린 동생은 자신의 밑에 조용히 깔려 있었고, 미동도 없이 움직이질 않았다. 더 이상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행복했지만, 부모님이 이 일을 알면 무슨 벌을 내릴지 생각하자 그녀는 장난감 수리공을 떠올린다. 장난감뿐만 아니라 죽은 고양이도 고쳐준다는 장난감 수리공이라면, 죽은 동생도 장난감이라고 속이면 장난감 수리공이 고쳐줄 것 같았던 것이다.
장난감 수리공은 망가진 장난감을 일단 산산이 분해한다. 나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접착제가 사용된 부분도 전부 말끔하게 떼어 낸다. 장난감이 여러 개 일 때도 일단 분해부터 하고 나서 모두 한꺼번에 조립을 하기 때문에 간혹 부품이 뒤섞이는 경우도 생기지만, 어찌되었든 원래대로 멀쩡하게 고쳐 준다고 한다. 그에게 죽은 동생을 데려가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지, 그 뒤의 상황은 헉, 소리가 날만큼 놀랍고도 오싹하다.
나는 데고나가 사고를 당한 후로 어떻게 하면 데고나를 되찾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어. 그리하여 두 가지 방법을 찾아 냈지. 하나는 네게 부탁한 방법, 죽은 세포로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역행이야. 둘 다 현실과 동떨어진 방법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방법은 그것뿐이었지. 처음에는 복제 인간이 좀 더 가능성 있게 느껴졌어. 그래서 의학부에 들어가려고 했지. 너만 합격했지만.
몇 번이고 도전할 생각이었지만, 둘이서 한 가지 방법에 매달리기보다 각각 다른 연구를 하는 편이 확실할 것 같아서 나는 시간 역행을 연구하기로 했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중에서-
<장난감 수리공>과 함께 실려 있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는 고바야시 야스키가 기존에도 보여주었던 SF를 호러에 접목시킨 이야기로, 굉장히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퇴근길에 들른 술집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 주인공이 굉장히 기묘한 사연을 듣게 된다.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었는데, 남자는 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남자는 그들이 대학 시절 절친한 친구였다고 말하며, 그들만의 대학 시절 이야기에 대해 들려준다. 양자역학과 시간여행을 모티브로 한 이 스토리는 평범한 캠퍼스의 연인들과 친구들의 사연에다 매우 독특한 설정을 부여하고 있다. 전혀 호러스럽지 않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섬뜩해지는데, 그 재미란 고바야시 야스키만이 선사할 수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기존에 <앨리스 죽이기>랑 <조커가 사는 집>에서 고바야시 야스키의 작품을 만나봤었는데,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작가라 그의 전설적인 데뷔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장난감 수리공>은 정말 궁금했었다. 일본호러소설대상 수상 시 압도적인 만장일치를 받았고, 발표 당시 일본 독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걸로 유명한 작품은 과연 명성답게 무더운 여름 날씨를 한 번에 날려 줄만큼 오싹하고 무시무시하다. 유혈이 낭자한 것도 아니고, 연쇄 살인범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잔혹하고 끔찍하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 조차 작가의 어조가 너무도 태연자약해서 당황스럽기조차 하지만, 그래서 더욱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정한 호러의 끝판왕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