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페이지를 여는 순간 찬바람이 부는 겨울로 순간이동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들어 준다. 왜냐하면 스토리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날씨와 관련된 묘사들이기 때문이다. 북극광이 용처럼 꿈틀거리며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한겨울 퍼런 어스름 속에서 뽀드득뽀드득 눈밭을 걷는 날씨. 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쳐 뺨이 에는 듯이 아리고, 입으로 숨을 들이쉬면 목구멍과 허파까지 얼얼할 정도로 추운 계절. 눈 덮인 숲에 달빛이 내리비치고, 길가를 따라 눈 더미가 벽처럼 쌓여 있는 그곳. 스웨덴의 스톡홀름과 키루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곳의 날씨와 매우 밀접하게 닮아 있다. 특히 오로라라고도 불리는 북극광은 그 신비로운 풍광만큼이나 이야기의 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극광은 여전히 하늘 위로 하얗고 푸르스름한 베일을 드리우고 있었다.
안나마리아는 고개를 뒤로 쳐들며 물었다. "도저히 믿기질 않아. 올겨울 내내 오로라가 보여.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어?"
"아니. 태양 폭풍 때문이야. 멋지게 보이긴 해도 발암물질을 뿜어내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지. 방사능을 막으려면 은색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할지도 모를 일이야." 스벤에리크가 답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 지도자 빅토르는 생애 두 번째로 죽음을 맞는다. 첫 번째 죽음은 9년전 열일곱 살 때 있었는데, 그는 사고로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난 후 종교적 계시를 받고 지역 종교 공동체의 간판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그때와 달리 누군가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걸로 젊은 그의 생은 그렇게 끝이 나 버린다. 그것도 바로 교회의 제단 아래에서 말이다. 빅토르의 누나 산나와 과거 절친한 사이였던 친구 레베카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무려 7년 만에 자신의 고향 키루나를 찾게 된다.
현재 스톡홀름에서 세무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레베카는 오래 전 고향을 떠날 때,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로부터 교회를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했었고, 살인 사건 덕분에 본의 아니게 키루나를 찾게 되지만, 어쩐지 친구였던 산나와의 사이도 마냥 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대체 그녀에게 7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산나와 빅토르와 그녀와의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더 있었던 걸까. 교회에 적이 없어 보일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던 빅토르는 대체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다시 찾은 고향에서 레베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고, 빅토르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산나가 용의자로 체포되자 레베카는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는 여성 형사인 안나마리아는 임신 중이라 내근직이지만 여전히 남자 동료들의 도움 요청으로 현장을 다니며, 빅토르의 사건 수사를 함께 하기 시작한다.
"경치가 좋네요.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내리는 눈으로 된 커튼뿐이었다.
"뭐 어때서? 어쩌면 지금이 최고의 경치일지도 몰라. 아름답지. 겨울과 눈은. 모든 게 더 단순해지니까. 받아들일 게 줄어들어. 색도 적어지고, 냄새도 적어지고, 낮도 짧아지고. 머리도 쉴 수 있게 되지."
오로라는 태양 표면의 폭발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니 태양 폭풍이 강해질수록 오로라는 더욱 밝게 빛난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지구를 둘러싼 전리층에 갇힌 플라스마는 붉은색, 녹색, 푸른색과 보라색으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동안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을 수사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들이 뒤엉키는 내내 하얗고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오로라가 그 배경에 존재한다. 그 모습은 잊어 버리고 싶었던 과거의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고, 끔찍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면서 더욱 강하고 단단해지는 캐릭터 레베카의 모습과 오로라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아 있어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오사 라르손은 레베카 시리즈의 두 번째, 다섯 번째 작품으로 최고의 스웨덴 범죄소설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시리즈 전체는 스웨덴에서만 20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전 세계 23개국에서 출간되어 누적 판매량이 550만 부를 돌파했고, 내년에는 드라마로도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엄청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여성이 읽어야 할 최고의 미스터리’에 선정되었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매우 이상하기도 하고, 그만큼 매력적이기도 하고, 좀 특별하다.
"씹할, 입 닥쳐요!" 냅다 쏘아붙인 상소리에 자매들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그 덕분에 다시 욕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당연히 씹할, 복수하고 싶지. 하지만 내가 온 이유는 그게 아니야.
주요 여성 캐릭터들은 세 명인데, 우선 세법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참 변호사인 레베카 마르틴손, 그리고 수사팀 팀장인 안나마리아 멜라 형사, 살해된 빅터의 누나이자 레베카의 옛 친구인 산나 스트란드고르드이다. 산나와 레베카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어딘가 이상한 관계이다. 홀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산나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의존형 인물인데, 자신이 위기에 처하자 레베카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녀를 고향으로 돌아오게 만들지만, 사실 그녀에게 딱히 고마워하지 않는다. 레베카 역시 산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그녀의 곁에서 도움을 주려 하지만, 시종일관 속마음은 산나에게 좋지 않은 소리만 해대고 있으며, 그녀를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 대체 속으로 '우린 친구가 아냐.'라고 외치면서 왜 그 먼 곳까지 달려가서 그녀를 돕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말이다. 안나마리아 형사는 현재 임신 중이라 출산 전까지는 내근만 해야 되어 주로 사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해야 하지만, 동료들의 부름에 종종 현장으로 불려 나간다. 게다가 태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잔인한 시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분석하며 사건을 조사한다.
이렇게만 정리하고 보니 긍정적인 캐릭터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들 세 명의 여성 캐릭터는 좀 이상하고, 색깔이 강하다. 게다가 나는 '씹할'이라고 욕을 해대는 여주인공을 만난 기억이 없기에, 더욱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더 그녀를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도 현실적인 캐릭터이기에,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더라도, 사실 그것이 진실에 가깝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하고 나니, 책을 덮었는데도 눈 앞에 영롱한 초록빛의 오로라가 펼쳐지는 것 같은 기시감에 잠시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공간과 계절, 그리고 날씨가 엄청난 역할을 하는 독특한 스릴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