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수플레는 재료가 매우 간단하다. 계란과 설탕, 바닐라 시럽과 크림 그리고 버터와 소금 조금이면 된다. 달걀을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하고, 노른자에는 바닐라 시럽과 크림을, 그리고 흰자를 따로 거품 내어 두 가지를 잘 섞은 뒤 오븐에 구우면 완성이다. 레시피 또한 재료만큼이나 간단한데, 사실 완벽하게 부풀어 오른 수플레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븐 안에서 멋지게 부풀어 오른 수플레라도 조금만 있으면 푹 꺼져 버리기 때문에 누군가에 대접하기 위해선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따뜻한 수플레를 내어 줘야 하는 까다로움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라니. 마치 구름을 떠먹는 것 같은 맛이다. 우리네 인생 또한 수플레와 닮아 있다. 한껏 부풀어 오른 듯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푹 가라앉아 바닥을 치게 만드는 게 삶이니 말이다.

여기, 완전히 다른 세 나라 세 도시의 전혀 다른 부엌에서 하나의 수플레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플레는 변덕스러운 미인과 같다. 아무도 그녀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 어떤 책에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없다. 그 어떤 사람도 수플레를 완벽하게 만드는 법을 말할 수 없다. 오븐에 넣고 25 30초가 됐을 때 꺼내야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 어떤 오븐을 써도 완벽한 온도를 맞출 수 없다. 모든 요리사는 수플레를 수없이 만들어보면서 자신만의 최선의 조리법을 찾아낸다. 그릇과 오븐을 수십 번도 넘게 써서 시도해본 후에야 최고의 수플레를 만들어낸다. 그릇과 오븐이 닳도록 만들어보고 마침내 아주 긴 전쟁 끝에 생긴 자제력을 얻고서야 그런 수플레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니와 릴리아는 3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이어오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다. 베트남에서 입양한 아이들 장과 덩에게 그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무한한 사랑을 주며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자식들은 자라면서 점점 부모가 소원해졌고, 정부에서 입양으로 보조금을 받으며 자신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다고 오해하고 비난했으며, 가끔 집에 놀러 와도 한 시간 이상 머무는 법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을 위해 장만한 방 일곱 개와 무수한 벽장들과 욕실이 네 개나 딸린 거대한 집에 아니와 릴리아 단 둘만 남았다. 남편인 아니는 우아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자신의 습관과 시간을 존중하길 원했고, 릴리아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남편이 뇌혈관 이상으로 쓰러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크와 클라라는 22년 동안 결혼하고 줄곧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왔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클라라를 위한 널찍한 부엌 외에는 침실 하나에 매우 작은 아파트였지만, 그들은 너무도 행복하기만 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입양은 원하지 않았던 그들이었기에, 둘만의 생활에서 안정을 찾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둘이 공유하는 사소한 일상의 목록들이 늘어가는 만큼 행복은 커져만 갔다. 여느 때와 같았던 금요일, 마크는 화랑에서 일찍 퇴근해 집으로 가는 길에 케이크 가게에 들러 디저트를 몇 개 샀다. 하지만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평소처럼 커피 향이 나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자 클라라가 부엌 조리대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여전히 수플레 실험을 계속했다. 이제 웬만한 조리법은 다 외워서 특별한 종류의 수플레에 들어가는 재로를 볼 때만 그 책을 한 번씩 보면 됐다. 그렇게 만든 수플레 한가운데가 금방 꺼져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가끔은 꽤 오랫동안 부풀어 오른 채 있기도 했다. 릴리아는 수플레의 맛과 그 조리법에 완전히 빠져버렸다....수플레가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 흥분된 순간과 그에 따른 실망이나 행복한 감정은 그녀의 의미 없는 일상에서 가장 달콤한 부분이 됐다. 얼이 금요일 밤마다 해가 지기 18분 전에 촛불을 켜는 것처럼, 카노가 해가 뜰 무렵에 기도를 하고 울라가 가부좌를 틀고 무릎에 손을 얹은 채 명상을 하는 것처럼 릴리아는 그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

페르다는 파리에 사는 딸 오이쿠와 매주 금요일 아침에 긴 통화를 하는 걸 낙으로 살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파리에 살아온 딸과의 통화로 마치 한집에 살면서 같은 문제를 공유하는 것처럼 느꼈고, 덕분에 막내딸이 그리워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았던 아침, 딸에게 온 전화라는 생각에 설레며 전화를 받은 그녀에게 어머니의 이웃에게서 연락이 온다. 어머니가 넘어지면서 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최대한 빨리 오라고 말이다. 페르다의 어머니인 네시베 부인은 여든 두 살 된 노인으로 엄살이 아주 심하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마침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부터 엄마를 모시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뉴욕, 파리, 이스탄불 세 도시에서 가정에 헌신해왔지만 남편과 자신들에게 소외된 고독한 릴리아와 삶의 전부였던 아내를 잃게 된 마크와 다치고 나서 점점 더 괴팍해지는 엄마를 모시면서 한 순간도 편히 살 수 없게 된 페르다, 세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펼쳐진다. 특히나 이들에게는 각각의 소울 푸드가 있는데, 음식이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 더 이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릴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불행하다고 느껴지거나 피곤해지면 항상 닐라가가 먹고 싶었다. 감자와 고기와 생선 소스를 넣은 양배추 수프가 바로 지금 그녀에게 필요했다. 그 친숙한 냄새가 그녀를 감싸고 위로해주며, 그 냄새가 그녀를 두 팔로 껴안고 잠시지만 모든 상처를 어루만져줬던 것이다. 페르다는 기운이 없거나 울적하거나 낙담할 때면 언제든지 살렙을 한 잔 만든다. 오이쿠는 야생 난초 뿌리로 만든 이 음료를 맛보고는 차이 라떼와 똑같은 맛이 난다고 했다. 페르다는 이 음료에 계피가루를 뿌려 마시면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마크가 아프거나 울적해할 때면 클라라가 몇몇 제철 채소를 알맞게 익혀 요리를 만들어주곤 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며, 몇 분만 있으면 자신의 따뜻한 품과 이 요리가 마법을 발휘할 거라며 그를 꼭 안아주곤 했었다. 그렇게 아내가 남긴 추억 속에는 항상 요리가 함께 했었기에,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게 되고 만다. 이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이유로 수플레를 만들면서 부엌에서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들은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 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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