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목에 방울달기
코니 윌리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아작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내가 이 책을 만났을 당시의 상황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평일 내내 아기와 전쟁을 치르느라 에너지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토요일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울산에 내려가 결혼식에 참석하고 당일 밤 기차로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당연히 체력은 방전되고, 눈도 피곤하고, 졸리기 시작하는 즈음이었다. 옆에서 남편은 자기 시작했고,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왜냐하면 집에 도착하면 다시 육아 전쟁에 뛰어 들어야 하므로, 기차 안에서의 두 시간이 유일하게 책을 볼 수 있는 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눈꺼풀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고, 어깨는 뭉쳐 있었고, 피곤으로 두통도 약간씩 오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셈인데, 신기하게도 이 작품은 단 세 장 만에 내게서 잠과 피로를 확 가져가 버렸다. 그리고 삐딱하게 고개를 젖히고 최대한 허리를 눕히고 좌석에 기댄 상태로 책을 읽던 내가 자세를 다시 고쳐 앉고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궁금한가?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보시라.

이렌느 캐슬이 골프 클럽과 한 일이라고는 헤지테이션 왈츠뿐이었고, 나는 잠시 후에 불을 켜고 브라우닝의 책을 펼쳤다.

브라우닝은 플립을 알았던 게 분명했다. 플립에 대한 시라고밖에 볼 수 없는 '스페인 회랑의 독백'을 썼으니 말이다. 그는 확실히 플립이 시를 다 구겨버린 뒤에 나왔을 법한 "으아아, 이 골칫거리야"라는 구절을 썼고, "저기 내 심장의 혐오가 가네"라고도 썼다. 나는 다음에 플립이 계산서를 나에게 떠맡기면 그 구절을 읊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 작품의 대략적인 스토리라인은 이렇다. 하이텍의 연구 개발부에서 1920년대 미국의 단발머리 유행의 기원을 찾는 사회학자 샌드라 포스터는 부서간 연락 보조원 플립의 실수로 잘못 배달된 소포를 전해주러 생물학부로 내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혼돈이론을 전공한 생물학자 턴블 박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다 해진 코르덴 바지에 두꺼운 뿔테 안경, 발가락에 구멍이 난 캔버스 등... 도저히 무언가로 분류할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유행과 패션을 분석하며 보냈기에, 대부분 첫눈에 상대를 파악하는 편이었는데도, 유행과 전혀 무관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그의 스타일은 정의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샌드라는 유행에 대한 그의 면역능력이, 어쩌면 유행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풀어낼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플립이 턴블 박사의 연구비 신청서를 잃어버리는 덕분에 그를 도와주려는 샌드라의 제안으로 그들은 원숭이 대신 양으로 공동 연구를 진행해보기로 한다. 마침 그녀에겐 양 목장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커다란 플롯은 문서 작업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회사 내에서 단발머리 유행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와 혼돈 이론 학자가 만나 새로운 연구를 하게 과정이 전부이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는 주요한 플롯이 아니라 이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에 있다. 애초에 셜록 홈즈도 그러지 않았던가. '사소한 것이야말로 두말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일상사만큼이나 기이한 것도 또 없다고 말이다. 이들이 하고 있는 연구도, 매일같이 바뀌는 유행도, 문서 작업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회사 하이텍도,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게 만드는 엉뚱한 플립의 만행들도, 사실 그 내용만 보자면 그렇게 사소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작고,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데 모여서 한 개인에게 몰고 오는 '혼돈'은 절대 사소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사건이 다른 모든 사건에 영향을 주면서 반복과 재 반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란 사실 어마 어마(?)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코니 윌리스의 정신 없는 수다에 취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결론이 시종일관 떠들어대던 유행의 기원과 그 동기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으로 다다른 게 된다는 것 또한 독특한 재미를 더해 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내 말 잘 들어." 나는 암양의 턱을 잡은 채로 말했다. "난 하루에 감당할 만큼은 다 겪었어. 직장을 잃었고, 평생 만난 사람 중에 양처럼 행동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도 잃었고, 유행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모르겠고 영영 알아내지 못할 거고, 이젠 질렸어. 순순히 날 따라왔으면 좋겠다. 당장 날 따라왔으면 좋겠어." 나는 디스크 조각을 바닥에 던지고 돌아서서 내 연구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양이 방울양 이었다. 내 뒤를 따라 총총히 생물학부까지 두 층을 내려가고, 연구실을 통과해서 방목장까지 갔으니 말이다. 마치 메리와 메리의 작은 양처럼. 그리고 나머지 양떼도 꼬리를 흔들며 뒤따라왔다.

유행의 기원을 연구한다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는데, 사실 그것을 몸소 실행하고 있는 캐릭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샌드라 박사는 근무 시간 외에는 카페에서 디저트나 음료의 유행을 파악하거나, 도서관에 주기적으로 들러 베스트셀러와 도서관 운영 유행을 관찰한다. 그 주에는 어떤 예약 목록이 있는지 확인하고, 사서가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 체크하는데, 그 중에서도 그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도서관 운영 방침 중 하나에 온몸으로 대항한다는 점이다. 매년 출간되는 신간들로 인해 서가 자리가 언제나 부족하기에, 최근에 대출된 적이 없는 책들은 판매 전을 통해 숙청하게 된다. 작년 판매 전에서 그녀는 디킨스의 황폐한 집이 판매되는 것을 보고는 대체 왜 디킨스 책을 버리는 거냐며, 황폐한 집은 훌륭한 책이라고 소리쳤다. 그 후로는 그렇게 방출되는 책들을 막기 위해 책들을 직접 대출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어서 대출한 적이 없던 작품들이나, 모든 고전 작품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 읽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 낡은 책들 모두를 말이다. 그렇게 거의 1년 동안 대출이 없었던, 인기가 없는 책들이 그녀에 의해 구제된다.

다들 알다시피 찰스 디킨스는 '대놓고' 매우 장황한 작가이다. 그에 비해 코니 윌리스는 작품 전체의 페이지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특유의 수다 덕분에 '장황하게' 느껴지는 작가이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은 범죄 및 공포 장르의 모든 형태가 존재하고 있는 엄청난 대작이지 않은가. 사실 나는 디킨스를 대하는 샌드라의 태도 하나만으로도 이 작품을 마구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말 특이하고, 이상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이들 과학자들의 일상을 가장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등장인물인 바로 부서간 연락 보조원인 플립이다. 그녀는 코걸이를 하고 흰올빼미 문신을 새겼으며, 무슨 일이든 해달라고 하기만 하면 한숨을 내쉬고 눈을 굴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을 부탁하든 자신은 이런 일을 할 시간이 없다며 투덜대고, 정리하지 않아야 할 서류들은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쓰레기통으로 넣어 버리고, 헤어 스타일이며, 의상이며 기괴한 유행을 쫓고,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샌드라에게 자신의 계산서를 떠맡기고 가버리는, 기본적으로 무례하고, 배려심 없고, 무능력하고, 지극히 개인주의에 입각해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등장해, 지나치며 가는 곳마다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재능을 가진 이 인물은 극중 수많은 사람들의 골칫거리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돈으로 빠뜨리는,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었던 아주 엄청난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일상이라니, 평범할래야 평범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의미 있는 과학적 돌파구가 현저히 많이 나타날 테고, 늘 그렇듯 혼돈이 군림할 것이다. 나는 멋진 일들이 일어나리라 예측한다.

과학적인 돌파구는 대개 사소한 사건들이 촉발했다. 욕조 물이 넘치는 광경, 산들바람의 움직임, 계단 위에 놓인 발의 압력. 길고 고생스러운 연구만큼이나 행운과 우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기서 코니 윌리스는 우리에게 '이전에는 아무도 연관시킬 생각을 하지 못한 발상들을 합치고, 전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던 관련성을 보는 것'이 비단 과학적인 돌파구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의 진부한 일상, 그 속의 따분한 반복과 관습 너머에 있는 무의미해 보이는 변수들에게 선을 그어 연결해보자.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혼돈이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을 벗어나 당신의 삶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는가.

멋진 일들이 생기리라.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내게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코니 윌리스는 나의 평범한 일상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그냥 보는 대신 관찰하도록, 듣는 대신 경청하도록, 평범한 속에서 특별한 것을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이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냥 이 작품과 한 눈에 사랑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