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산다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신선해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열두살 기드온 크루는 눈 앞에서 아버지가 인질을 앞세워 농성을 하다 경찰에게 사살되는 것을 본다. 그리고 8년 뒤, 그의 어머니는 죽어가는 병상에서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실제로 했던 프로젝트의 내용과 그로 인해 벌였던 인질극이 그의 '실수'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음모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에다 어머니는 유언으로 그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해달라고 말한다.

"복수해다오."

"뭐라고요?"

"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해. 터커 그 인간을 박살 내다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놈에게 똑똑히 알려줘 그놈이 그렇게 된 이유를. 누가 그랬는지를."

"맙소사,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당황한 기드온은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며 숨죽여 속삭였다. "엄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요?"

다시 10년이 흐르고, 기드온은 눈부신 변장술과 남다른 두뇌 회전력으로 아버지의 결백을 밝혀내어 멋지게 복수에 성공한다. 엄청난 복수극이 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시작 후 70여페이지 만에 간단히 마무리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아버지의 복수극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기드온은 복수극으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부의 협력업체로부터 첩보원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다. 최첨단 신무기 설계도를 미국으로 가져오고 있는 중국인 과학자의 뒤를 밟아, 가능한 빨리 설계도를 빼돌리라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그것도 중국인 과학자가 공항에 도착하기 단 네 시간 전에 받은 임무이다. 당연히 기드온은 그 임무를 거절한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말도 안 되는 미션이라며, 자신은 이런 일을 해본 적도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공교롭게도 이 일의 적임자가 기드온 밖에 없다며 그의 화려했던 과거 이력에 대해 샅샅이 밝히고, 마지막으로 그가 시한부 신세라는 병원 자료를 내민다. 기드온 자신도 몰랐던 병명을 밝히면서. 아버지의 복수극을 벌이며 칼에 맞았던 상처를 치료한 병원에서 우연히 검사 과정에서 알아낸 병명은 동적맥기형으로 앞으로 길어야 1년을 살 수 있는, 누구도 손쓸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말이다.

남은 1년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이번 일만 끝내면 엄청난 돈을 가지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으리라는 그들의 제안은 유혹적이었고, 기드온은 얼결에 임무를 맡게 된다. 사실,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것만큼 강한 무기가 또 어디있겠는가. 애초에 천재적인 실력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기드온이었지만, 위험천만한 임무에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만큼 위험을 불사하게 만드는 동기도 없을 테니 그에겐 지금 세상 그 어떤 것도 무서울 게 없다. 게다가 이건 FBI, CIA, 정부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세계 경제 구도와 인류 전체의 명운을 바꿀만한 미션이 아닌가. 그렇게 음모는 점점 복잡해지고, 얽혀 있는 관련 인물들은 점점 늘어나고, 남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미션이 거대해질 수록 기드온의 활약은 점점 더 화려하고 멋들어 진다. 속도감은 그 어떤 작품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시원시원하고, 스토리는 긴장감 넘치고, 캐릭터 또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괴짜 매력남이고, 이 작품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다.

노딩 크레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놈은 애써 감추었지만, 기드온은 분명 놈의 두려움을 감지했다. 놀랄 일은 아니다. 놈도 인간이라는 증거일 뿐. 반면 기드온 자신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여기가 막바지다. 이 굴뚝에서 살아 나갈 방법은 없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그 생각이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노딩 크레인이 절대 알지 못하는 비밀무기를 손에 쥔 셈이었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펜더개스트' 시리즈의 콤비 작가 더글러스 프레스턴 & 링컨 차일드가 만들어낸 새로운 주인공 기드온 크루는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또 다른 임무를 부여 받는다. 과연 이 시리즈가 또 이어져서 그에게 남아 있는 시한부 인생 또한 그의 또 다른 활약을 볼 수 있을 지도 기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그들의 작품 목록에 Gideon's Sword 이후에 Gideon's Corpse 라는 작품도 있었으니 아마도 다음 임무까지는 이어질 테고, 그의 새로운 활약도 매우 궁금해진다.

사실 펜더개스트라는 캐릭터는 스릴러 역사상 정말 보다 보다 처음 보는 말도 안 되는 인물이었다. 외모는 순정만화 뺨치고, 키도 크고 날렵, 우아한데 강인한 체력까지 갖췄으며 부자에 매너는 기본인데다 변장과 임기응변에 능하고 상대를 끄는 능력마저 겸비한데다, 뛰어난 통찰력과 박식함까지 갖추었으니,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완벽한 캐릭터가 아닌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기드온 크루 역시 조금 색깔만 달리 했을 뿐 펜더개스트 못지 않다. 그래서 그가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서 이리 저리 빠져 나가고, 목적을 이루는 것을 보고 있자면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거나, 너무 쉽게 가는 것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더글러스 프레스턴 & 링컨 차일드 콤비 만의 매력인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나치게 완벽해서 현실에서 있을 법하진 않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이끌고 갈 수는 없다 싶은 만큼의 캐릭터를 우리가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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