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 살인 아르테 누아르
카밀라 그레베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은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사인은 목에 수업이 가해진 구타였고, 머리는 몸에서 잘려 현관을 향해 바닥에 세워진 상태였다. 피해자의 신원은 쉽게 밝혀지지 않고,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 또한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는 의류 회사의 논란 많은 CEO로 미디어가 사랑하고 증오하는 연예인과도 같은 유명인사이다. 여자가 끊이질 않았던 악명 높은 바람둥이인 그가 과연 범인이었을까. 게다가 이 사건은 10년 전에 있었던 살인 사건과 소름이 끼칠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스웨덴 범죄 역사상 가장 대대적으로 수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어떤 복수가 공정한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무언가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난 망가질 것이다. 내 몸 전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에스페르 오레와 같은 남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성공과 돈, 여자,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예스페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동일하게 보복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그가 내 집에 몰래 들어와 내 물건과 반려동물을 훔쳐갔다. 그는 내게서 직업과 돈, 아기를 빼앗아갔다. 하지만 올가가 옳을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그에게 같은 짓을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화자는 모두 세 명이다. 각각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교차 진행되는데, 두 명은 현재, 한 명은 두 달 전에서 시작해 점점 현재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현재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두 인물과 그 사건의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르겠지만 연관이 있어 보이는 누군가의 과거 행적이 함께 진행된다는 건데 덕분에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페이지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흘러간다.

우선 강력계 형사인 페데르, 그는 일반적인 형사 캐릭터에 비해 성격이 좀 특이하다. 15년 전 사랑했던 야네트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있지만, 그는 부모로서의 책임도, 남편으로서의 의무도 회피한 채 여전히 혼자 지내고 있다. 아이는 엄마와 살고 있고, 그와는 일년에 한 두 번 만나는 정도로, 그는 스스로 여전히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한네는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지배적인 남편 오베에게 질려서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심리학자였던 그녀는 10년 전만 해도 경찰들과 업무를 협조해서 범죄 수사를 함께 했었다. 한때 페데르와 사랑에 빠졌었고, 그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바로 10년 전에 그녀가 담당했던 사건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2개월 전, 클로즈 앤드 모어에서 점원으로 근무 중인 엠마는 회사 대표인 예스페르 오레와 비밀 연애를 하는 중이다. 그녀는 이모에게 물려받은 집과 재산으로 여유 있게 사는 편이었고, 알콜 중독이었던 엄마와의 불행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약혼 기념 식사를 하기로 한 어느 날 저녁,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예스페르가 그녀의 집에 오지 않는다. 그렇게 그에게서 갑작스럽게 소식이 끊기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집에서 중요한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그 소녀에게 벌어질지 알 것 같았다. 아이는 오늘밤 얼어 죽거나 어딘가에 숨겨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아이를 다시는 찾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엠마에게 다가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게 남은 목숨이란 게 어떤 건가? 이 수사가 끝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 남겠는가?

북유럽 스릴러 하면 그 독특한 분위기와 배경 때문인지 덮어놓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카밀라 그레베가 출판사의 소개 문구처럼 요 네스뵈와 헤닝 만켈을 뛰어넘는 작가인지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더 만나봐야 하겠지만, 이 작품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분명하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캐릭터와 구성인데, 중심 인물 세 명은 여타의 스릴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비해 굉장히 복잡하다. 그것도 심리학적으로, 그리고 내면적으로 말이다. 스릴러에서 '배경적'으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복잡한 인물을 선택하는 경우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범인이든, 형사든 대부분 환경적인 요소에서 현재의 수사나 성격에 영향을 받게끔 설정하는 것이 현재의 플롯을 진행시키는데 유리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사실 사건 수사 자체보다 각각의 인물의 내면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각 캐릭터들의 목소리가 매우 뚜렷하게 시선을 잡아 끌고 있다.

그리고 세 명의 인물에게 저마다의 시점과 목소리를 부여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간 속에서 어느 순간 교집합이 되며 마주하게 되는 극강의 충격과 반전의 힘이 대단하다. 사실 작가가 중간 중간 복선과 단서를 잘 설정해두었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대부분 짐작할 것이다. 화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뭔가 이상한데? 라고 말이다. 그렇게 조금씩 싹트는 의심들이 쌓여 산처럼 높아져서 직면하게 되는 현실은 매우 끔찍하기도 하고, 소름 끼치기도 한다. 내가 역대 급 캐릭터한테 홀딱 넘어가 속았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 이 작품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카밀라 그레베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