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전이의 살인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말썽꾸러기에 성적이 바닥인 남학생과 세침 떼기에 모범생인 여학생이 서로 몸이 바뀌게 되면서 벌어지는 헤프닝을 그렸던 영화 <체인지>, 그리고 무술감독을 꿈꾸는 스턴트 우먼 길라임과 '까칠한' 백만장자 백화점 사장 김주원의 영혼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까지..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작품에서 영혼 체인지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판타지' 였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성별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판이하게 다른 두 남녀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보는 것. 완전한 상대방이 되어 그가 매일 느끼는 고민과 생각과 환경을 전부 체험해보는 것.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타지를 통해서 영혼과 몸이 바뀌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두 사람을 세워 놓는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 사랑이란 이런 거라고.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이러한 판타지를 빌리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이렇게 로맨틱한 판타지로 읽어 낼 수도 있는 그것을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SF 미스터리, 본격 추리물로 그려내고 있다. 사실 몸을 놔두고 인격이 바뀐다는 것만 보자면, 무시무시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 사이에서 서로서로 교체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얼마나 섬뜩하겠는가. 아주 공포 영화가 따로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백인과 B라는 흑인이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이 동시에 문제의 '체임버'에 들어간다. 그러면 A B는 자기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동으로 '스플릿 스크린'이라 불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것에 막혀 방 안쪽과 입구 쪽으로 갈라진다.

갈라졌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의 인격이 바뀌어 있다. , A라는 백인 육체에는 B라는 흑인의 '정신'이 들어가 있고, 반대로 B라는 흑인의 몸에는 A라는 백인의 '정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인격이 육체를 떠나 전이하는 현상을 매우 과학적으로 설명하면서 배경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놓고는, 한정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이 서로의 인격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밀실 속 연쇄살인으로 매우 흥미로운 본격 미스터리를 선보이고 있다.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하나의 인격이 각각 다른 육체에 잇달아 옮겨지고, 인간이 이 기능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떨까. 좋은 방향으로 이용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겠지만, 악용한다면 그렇게 무시무시한 무기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매스커레이드' 현상이라고 이름 붙인 이것은 인격 교환 시작되면, 피험자 중에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 교환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게다가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지 그 주기와 법칙성 또한 밝혀지지 않았으니, 피험자들 사이에는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매스커레이드가 평생 따라다닌다는 말이다. 게다가 한쪽 피험자의 육체가 사망한 경우, 그와 동시에 사멸하는 것은 그쪽 육체에 들어 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정신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죽게 되면 남은 피험자는 평생 다른 사람인 채로 여생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인격이라는 게 일단 실체화되지 않는 한 그것을 교환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 하지만 자네의 말을 듣고 의문이 생겼지. 물론 실체화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의 그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를 수도 있어. 하지만 전이 과정으로 실체화되는 것이라면 눈에 보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자네의 지적으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났지. , 어쩌면 형이상학적인 상태로 인격이 전이될지도 모른다고. 아니, 애초에 '교환'이나 '전이'같은 발상 자체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실체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설마 교환이나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말은 아니겠죠? 실제로 이렇게....."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햄버거 가게에 우연히 손님으로 모이게 된 7명의 남녀는 갑작스런 지진으로 가게에 있던 셀터로 대피하게 되는데, 사실 그곳은 사람의 인격을 교체하는 매스커레이드 현상을 연구하는 연구 시설이었다. 성격도, 성별도, 국적도 너무도 다른 7명의 남녀. 헤어진 여자친구를 찾아 미국으로 날아온 일본인 토마 에리오, 할리우드 배우 지망생인 미모의 여성 재클린, 가게의 유일한 종업원인 우락부락한 흑인 바비, 프랑스와 일본인 남녀 커플 알랭과 아야, 대머리 마초 스타일의 미국인 랜디, 아랍계 외국인 유학생 하니. 그들의 인격은 서로에게 교체되고, 앉아 있는 순서대로 인격전이가 순차적으로 계속 교체된다. 치료 방법은 없고, 매스커레이드는 평생 반복되는데, 모두 살아 있는 한 아무도 이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물론 인격 전이가 끝없이 반복되다 육체와 정신이 일치하는 순간에, 나머지 6명이 그 상태 그대로 죽는다면 마지막 1명은 이 지옥에서 구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침 다른 사람들이 죽은 시점에서 자신의 마음이 원래 자기 몸에 들어가 있을 확률은 상당히 낮기 때문에, 그들이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란 없어 보인다.

탈출 할 수 없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체험을 강제적으로 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 이들 사이에서는 급기야 누군가 누군가를 죽이는 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그 누구도 범인을 섣불리 추리할 수 없는 것은 계속해서 인격전이 현상이 예고도 없이 뒤죽박죽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반 쯤 가면 누가 누구인지 독자들까지 막 헷갈리게 되는데, 그래서 인물들의 인격전이를 수첩에 정리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사은품으로 예쁜 수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잘 집중만 한다면 사실 메모를 하지 않고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해야만 하지만 말이다. 대체 누가 누구를 죽인 건지에 대한 반전의 추리 속에 마지막에 살아남게 되는 생존자와 드러나는 범인에 대한 추리만큼이나 로맨틱하기까지 해서 거짓말 같은 엔딩의 재미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역시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평범한 소재도 특별하게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영화 <체인지>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어렵지만, 그들에게선 만날 수 없었던 특별한 플롯과 뭉클한 엔딩이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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