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아이들 1부 : 동굴곰족 1 대지의 아이들 1
진 M. 아우얼 지음, 정서진 옮김 / 검은숲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라는 존재가 원래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를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소유자이긴 하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아주 오랜만에 그 한계를 넘어선 것 같은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안 그래도 꽤 많은 양의 다양한 책들을 읽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언제 선사시대에 관련된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있던가 자문해봤다. 사람들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선사시대 자체를 고증해서 재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인지, 그에 관한 소설은 여지껏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라니. 네안데르탈인이 유인원에 가까운 미개한 원시인이었던 걸로만 알았던 나에게 이 소설은 굉장히 놀랍고도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의 발걸음을 내딛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진정한 '상상력의 끝판왕'이라고나 할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구축하고 만들었을까 내내 감탄하면서 말이다. 배경은 무려 3 5천년 전의 빙하기이다. 크로마뇽인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서서히 사라지던, 두 인간 종족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작가의 상상력은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석기시대의 생활상에 대한 어마어마한 고증은 우리에게 실제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혹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고 나서 목우르는 그의 커다란 두뇌가 가진 힘을 활용했다. 그들은 전두엽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고 미숙한 발성기관으로 인해 언어 사용도 제한된 원시인이긴 했지만, 독특하게도 커다란 두뇌를 가졌다...........또한 그들의 기억이야말로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본능이란 이름으로, 조상의 습성에서 유래한 무의식적 지식이 발달되어 있었다. 커다란 두뇌 뒤쪽에 저장된 기억은 단지 그들 자신의 기억일 뿐 아니라 선조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들은 조상에게서 배운 지식을 불러올 수 있었고,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 멀리 나아갔다. 종족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진화과정까지 기억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저 아득한 과거까지 더듬어 돌이켜보면 텔레파시가 통하듯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간직된 기억들이 결합되면서 하나가 된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물가에서 놀던 다섯 살 소녀 에일라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의해 세상에 홀로 남게 된다. 엄청난 진동 속에 땅이 갈라지고 점점 커지는 틈 속으로 흙과 바위와 나무들이 떨어져 내린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 역시 흔들리다 쓰러져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소녀는 춥고 두려웠으며 날이 갈수록 허기까지 더해져 무섭기만 했다.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해 오로지 장애물을 지나고 지류를 건너고, 눈앞에 닥친 순간을 살며 개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다 동물의 공격을 받고 홀로 죽어가던 중, 새로운 동굴을 찾아 길을 나선 동굴곰족의 주술 치료사 이자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된다. 현생인류에 속하는 크로마뇽인 에일라는 고대인류 네안데르탈인인 이자와는 외모부터 다르다. 푸른 눈과 금발머리, 곧은 다리에 큰 키, 손이 아닌 언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에일라는 높은 이마에 작은 코, 이상할 정도로 평평한 얼굴이었고, 네안데르탈인들은 부리 모양의 커다란 코, 입은 동물의 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고, 낮게 경사진 이마와 크고 길쭉한 머리통에, 목은 짧고 굵고, 뒤통수는 후두골이 툭 튀어나와 있다. 활처럼 휜 다리는 근육이 발달했고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발상부터 신선했지만, 그 상상을 매우 리얼하게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야기에 훅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씨족 내 강력한 주술사인 크렙과 주술 치료사인 이자의 보호 아래 에일라는 점차 동굴곰족 일원으로 인정받게 되지만, 족장의 아들인 브라우드는 여자인 에일라의 토템이 동굴사자로 정해지자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느껴 그녀를 증오한다. 당시 이들 사이의 불문율이란, 남자의 명령에 여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여자는 사냥은커녕 무기를 만들 때 쓰이는 연장조차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다소 억압적이고 남성우월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에일라는 그런 체제가 가진 불합리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하는 캐릭터이고, 당연히 기존 종족의 우두머리는 그것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브라우드의 그런 증오는 일상적인 구타와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걸로도 에일라를 굴복시킬 수 없게 되자 결국 그녀를 강제로 범하게 된다. 당시 동굴곰족에서는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든, 성행위를 요구할 수 있었고 여자가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사이에서 태어난 에일라의 아들 두르크다는 소설 발표 당시 저명한 고고학자로부터 신빙성 없는 가설을 소설에 담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유전적으로 전혀 다른 두 인류 간의 짝짓기는 불가능하며 서로 접점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 두 인류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혼혈인의 유골이 발견되어, 기존 이론이 뒤집히며 작가의 남다른 혜안이 다시금 주목 받기도 했단다. 상상력이란 정말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에일라는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른 불미스러운 생각을 쫓아내려고 했다. 난 여자야, 나는 사냥을 하면 안 돼, 무기조차 만져서는 안 되는 걸. 하지만 나는 줄팔매를 사용할 줄 알아! 무기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해도. 아이의 생각은 대담해졌다. 도움이 될지 몰라. 오소리나 여우 같은 것들을 죽이면 더 이상 우리가 잡은 고기를 훔쳐갈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그 흉측한 하이에나들도. 그런 것들을 잡으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봐. 에일라는 교활한 포식자들의 뒤를 쫓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M. 아우얼의 <대지의 아이들> 시리즈는 십여 년 전에 국내에 발간된 적이 있다. 물론 엄청난 분량 덕분에 6부까지 모두 출간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모두 절판이 되어 재미있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전설의 대작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다는 소식에 굉장히 설레었었다. 1부의 이야기 두 권만 해도 무려 천 페이지에 다다르는 분량이다. 전체는 그만큼의 이야기가 6부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스케일이 된다. 총 집필 기간만 해도 30년이라고 하니, 고스란히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을 이 시리즈만의 묵직한 감동이 시리즈를 모두 만나기 전부터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다.

 

 

시작은 구석기 시대의 미이라 한 구가 발견되는 것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 미이라는 의과적인 수술을 통해 한쪽 팔을 절단한 흔적이 있었고 반신불수였던 걸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미이라가 상당히 나이를 먹은 후 늙어서 죽었다는 것이었는데, 생존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구석기 시대에 어떻게 '늙어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었을까.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출발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이미 읽은 사람들은 모티브가 된 이 미이라가 <대지의 아이들>에서 주술사 크렙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M. 아우얼은 엄청난 상상력의 소유자이지만, 그것을 단지 머릿속에서 진행된 이야기로 그리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느끼고 체험해 사실적인 부분들을 구축했다. 3년에 걸쳐 선사시대에 관련된 수많은 책을 모두 섭렵한 것은 물론 고고학자들의 발굴 현장도 직접 답사했고, 인류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실제 구석기인들의 방식을 체험해보면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3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을 오로지 한 작품에만 매달린 작가의 삶이란 어떤 걸까. 스물 다섯에 이미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된 한 여자가 육아와 직장 샐활을 병행하다 마흔 살이 되어 이 작품을 구상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해 이렇게 어마어마한 대작을 쓰게 되었다고 하니, 작품만큼이나 그녀의 삶도 드라마틱하기 그지 없다. 나도 그 엄청난 여정에 한 걸음 내딛게 되어 매우 설레 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