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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어릴 때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항상 집이 비어 있던 게 불만이었다. 찌개만 데우고 밥솥에서 반만 퍼서 먹으면 되는, 엄마가 미리 식탁에 차려 놓은 밥을 동생과 챙겨 먹는 것도 항상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친구들도 대부분 부모들이 맞벌이를 해서 비슷한 처지였기에, 빈 집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빵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그 즈음이었을 거다.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있던 조그만 빵집에서 솔솔 풍겨오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가지고 있던 용돈을 털어 빵을 하나 사왔다. 그날 이후, 거의 습관처럼 그 빵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엄마가 비운 빈 자리를 허전하지 않게 든든히 지켜주는 건 언제나 빵이었다. 갓 구운 빵 하나만 들고 있으면, 밀린 숙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표도, 친구와의 다툼도 다 잊어 버리고 행복해졌으니 말이다. 퍽퍽하지만 담백한 스콘은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고, 진한 초코 향의 브라우니는 우울했던 기분마저 사라지게 만들어주었고, 특유의 향에 매혹되었던 시나몬 롤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고, 우유랑 함께 먹으면 너무 부드럽고 폭신폭신한 카스텔라는 친구랑 함께 먹으면 든든한 기분이었고, 살짝 얼렸다가 먹으면 마치 아이스크림 같은 베이비슈 역시 나의 단골 간식이 되어 주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빵을 즐겨 먹는다. 이제는 직접 계량을 하고 반죽을 해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전국의 유명한 빵집들은 죄다 한번씩 가 보기도 하지만, 사실 가장 맛이 있었던 건 소박한 동네 빵집에서 평범하게 구웠던 당시의 빵들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특별한 시기를 상징하는 음식은 시간이라는 틀을 거쳐 추억으로 박제가 되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의 영혼마저 감싸주는 소울 푸드가 된다. 이 책은 2001년작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에 새로 두 편의 글이 추가된 개정판이다. 황석영 작가가 그 동안 걸어온 모든 길에서 음식이 사람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음식이 그의 수많은 희로애락을 어떻게 함께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이 책은 마치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푸근함마저 안겨주는 에세이집이다. 게다가 그가 표현하는 음식 재료와 상세한 조리법들은 웬만한 요리책 못지 않은 풍부한 묘사로 작가의 미식 수준까지 감탄하게 되고 만다.
밥상에 함께 올라온 모시조개 넣고 된장 고추장에 끓인 '냉이토장국'은 옛날의 잊혀진 사진같이 정겨웠다. 겨울의 하얀 냉기 속에서 봄날의 풀꽃들을 찾아내는 기쁨 같은 것이다.
한겨울에까지 눈 속에 남아 있던 불미나리와 냉이무침의 싱그러운 맛은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옛 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 불미나리 무침과 파래김치 같은 맛들은, 묵은 김장김치며 기름진 육것으로 포위된 듯한 한겨울에 봄을 재촉하는 방안 화초의 물기 어린 방향과도 같다.
사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밥상은 작은 우주와 같다. 아니, 밥 먹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이리 거창한 비유를 할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음식만큼 일상에서 손쉽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또 있을까 잘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끼니를 때우거나, 시간에 쫓겨 대충 배만 채우거나, 단지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만 목적을 두며 살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인생을 되돌아보면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 음식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석영 작가가 펼쳐내는 음식 이야기는 작가의 전 생애를 거치며 바로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무궁무진하다. 나라의 경제가 신통치 않았던 육십 년대에 보낸 군 시절의 음식들, 유년시절 전쟁 직후의 음식들과 미군부대의 퓨전 요리들, 구치소와 감옥에서 보낸 다섯 해 동안의 음식들이며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과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었던 특별한 음식 등등 너무도 다양한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펼쳐진다.
출근길 지옥 철에서 시달리고,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 소리 듣고,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기획안은 풀리지 않고, 연인은 속을 썩이고, 그렇게 종일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극대화가 된다. 그러고 퇴근해봐야 어두운 집에서 나를 반기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대충 차려서 배를 채우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티비를 보고 있노라면 다음날 다가올 출근에 대한 압박으로 답답해지고 말이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아닐까. 이상하게 내 입맛에 꼭 맞는, 맵지도, 그렇게 짜지도,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가도 감칠맛이 돌고, 두 그릇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만 같은 포만감을 주는 그럼 엄마 표 밥상 말이다. 우리는 바로 그 밥 힘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책에 실린 여러 에피소드들을 읽는 내내 나는 따뜻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따스한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음식의 위대함과 기쁨을 이렇게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상도의 음식을 들라면 우선 짜고 맵고 투박하며 원색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것들이 더러 있다.
부산에 갔을 적에 이른 아침에 아낙네들이 '재칫국 사이소!'를 외치며 창 밖을 지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재첩조개를 넣고 소금으로 간하여 끓여낸 국은 개운하고 속풀이에 좋았다. 요즈음 점심참에 먹기 좋지만, 우뭇가사리묵을 채 썰어서 콩가루와 갖은 양념을 하고 식초 섞은 냉국을 부어서 먹는 우무냉국도 속이 시원해진다.
결혼을 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게 되고 나니,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기회가 사실 거의 없게 된다. 그래서 가끔 친정에 가게 되면 침대에서 뒹굴 거리면서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그렇게 따뜻하고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코끝을 자극하는 매콤한 향, 치익 소리를 내는 밥솥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밥 냄새, 혀끝에 맴도는 익숙한 감칠맛까지. 그 모든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부엌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나는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따뜻하고 푸근한 한끼 식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이 내 시린 마음마저 만져준다면, 그저 그런 생각만으로도 한 끼 식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또는 누군가를 위해서 요리를 하게 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것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에는 그만큼의 행복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요리는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기도 하니 말이다. 음식을 함께 나눠 먹고, 그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소소한 즐거움 때문에 나는 오늘도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