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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갱스터 작품으로는 최고라 칭해지는 마리오 푸조의 소설 <대부>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 <대부> 역시 액션 보다는 가족드라마를 통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었다. 아버지와 아들, 남자와 여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테마를 갱들의 권위로 그려내며 가족의 질서를 패밀리의 질서로 확장한 것이다.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고 배신과 밀고는 덤인 갱스터 작품에서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는 것은 사실 참 아이러니하다. 하긴 뭐 세상에서 평생 정직하게 돈을 벌어본 적은 없고, 가장 나쁜 짓만 골라서 하며,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도 자신의 가족만큼은 끔찍하게 챙길 테니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누군한테 무릎을 꿇을 필요도 없고 줄을 설 필요도 없으며, 직접 규칙을 만들고 삶을 만들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 시스템에 엿 먹일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바로 갱이라지만, 사실 집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과 자상한 아버지가 되는 것 또한 그들이다.
데니스 루헤인의 이 작품 역시 '가족'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더욱 애처롭고 쓸쓸한 여운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올해 만났던 책 중에서 가장 애잔하고 마음이 아픈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악명 높은 은퇴한 갱, 조 커글린을 만난 얘기는 거의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다. 아내한테 말해 볼까도 했지만 그저 버벅거리기만 했다. 도저히 번잡해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만남은 짧았으나, 전후를 막론하고 그렇게 슬픔과 애정과 권력과 카리스마는 물론, 악행의 가능성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아내한테 조 커글린을 한마디로 설명하고자 했을 때 나온 단어는 '무한한 능력'이었다.
은퇴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영향력이 대단한 조 커글린은 어느 날 자신이 살인청부의 타깃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특별히 누군가를 엿 먹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합리적으로 볼 때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는 현재 꽤 많은 사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그가 없다면 금전적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수많은 거물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갱으로 활동하던 과거에도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적이 있었으나 그때는 그래도 타당한 이유라도 있었으니까. 조 덕분에 떼돈을 벌게 된 수많은 거물들은 앞으로도 그가 잘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체 '왜 나지?' 하지만 이 소문이 아무리 막연하고 비현실적이고 근거가 빈약하더라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는 아무리 해도 살인청부에 대해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혹시라도 죽게 되면 홀로 남겨질 아들 토머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는 자신을 죽여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가며 자신의 살인청부 의뢰자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이주 동안이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살도 빠지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고 머리카락까지 빠질 정도로 고민하는데, 그는 살인청부 전날까지 답을 찾지 못한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죽기를 원치 않는다며, 살인청부는 농간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조는 마음 속 불안을 억누를 수가 없다. 조는 누구든 살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냉철한 전직 갱이자 사업가지만, 아들 토머스를 고아로 남겨줄 수는 없다는 아버지로서의 절박함에 미련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필요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살해할 수도 있는 '나쁜 사람'이지만, 아들에게만은 그저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닐 뿐'이라고 자신의 일을 설명하고 싶은 평범한 아버지였으니 말이다.
"아들을 사랑하나?"
"세상에서 제일."
"그럼 당신 생각은 때려치우고 엄마를 선물하게."
"아들은 언젠가 떠나. 늘 그래. 평생 같은 방에 앉아 있다 해도 아버지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니까."
"나도 아버지한테 그랬소. 당신은?"
"비슷해. 그렇게 어른이 되잖아? 아이들은 매달리고 사나이는 떠나고."
이 작품은 데니스 루헤인의 <운명의 날>,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 이은 커글린 가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운명의 날>에선 인종, 남녀 갈등의 정점이던 1919년 미국의 최대 경찰 파업을 다루었고,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서는 술이 마약처럼 밀거래 되던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화려한 갱들의 시대를 그렸었다. 이번 <무너진 세상에서>는 커글린 가문의 막내아들 조 커글린의 마지막 이야기가 묵직하게 펼쳐진다. 수십 년 동안 친구였던, 마치 형제와도 같았던 사람에게도 등을 돌릴 수 있는 비정함이 작품 전반에 흐르지만,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만나게 되면 너무도 인간적으로 마음이 아파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죽은 자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인도를 메우는 그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하는 감정에 채 취해보기도 전에 작가는 독자들의 등을 떠민다. 매정하게도. 이게 현실이라고. 그래 나도 안다. 결국 이렇게 끝나버릴 거라는 걸.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독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환상을 매몰차게 걷어 내버리는 데니 루헤인의 솜씨는 가히 역대 급이다.
스티븐 킹이 이 작품을 일컬어 '대부 이후 최고의 갱스터 소설'이라고 했으니, <대부>의 비토 코를레오네식으로 말해 보자면, 이 작품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과도 같다.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냥 하고 잊어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남자들만의 세계, 갱들의 세계이니 말이다. 당신은 이 책을 꼭 만나보아야 한다. 3부작이니 순서대로 읽으면 더 좋겠지만, 사실 이 작품부터 읽기 시작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진짜 남자들의 세계가 알고 싶다면, 가족을 사회적인 의미로 읽어 보고 싶다면, 그리고 끝장나게 애잔하고 쓸쓸한 마지막 장면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길.